국어영역 재수하겠습니다

나머지 영역은 못 칩니다

by 물지우개

최승필 작가의 [공부머리 독서법]을 읽다가 내 국어영역 실력이 궁금해졌다. 나는 가장 최근의 대학 수학능력시험 문제지를 찾아내 출력했다. 문제지를 보자 치열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오답 노트가 떠올라 살짝 마음이 아팠다. 그때보다는 세상을 더 알고, 책도 많이 읽었으니 시험을 보는 마음도 다르지 않을까. 그래, 이제는 시험지가 아프지 않다. 나는 연필을 잡고 시험에 집중했다.


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윤리 교과서를 공부하다 스스로 깨우친 방법인데 바로 물음표로 그림 그리기다. 치열하게 공부하던 시절, 이름도 외우기 벅찬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머리에 집어넣으려 애쓰다 찾아낸 해결법이다. 어떻게? 왜?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며 나만의 아이콘이나 클립아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 이제는 습관적으로 이 방법을 쓴다. 텍스트를 외워야 할 필요가 없으니 ‘어떻게’나 ‘왜’라는 질문은 자주 빼먹지만 그림을 그리는 건 여전하다. 나는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야만 글이 내 것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그림으로 이해하려 애썼지만,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확신 없는 답이 점점 많아지니 내 이해 에너지도 바닥이 났다. 문제 곤란도는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문제를 풀고 나는 축 처진 어깨로 답지를 펼쳤다. 마음은 십 대로 돌아가 있었다. 찍은 답이 제발 많이 맞기를.

교대에 입학한 건 순전히 아빠 때문이다, 아니 덕분이다. 나는 한 번도 초등학교 교사를 꿈꾼 적 없다. 나는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원서를 내고 싶었지만, 교대에 원서를 내라는 아빠의 간절한 눈빛에 졌다. 교대를 다니는 동안 아빠를 여러 번 원망했다. 지금은? 엄청 감사한다. 내 고등학교 성적에 비하면, 지금 교대는 나에게 과분한 학교다. 나는 후배 교사를 무조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들보다 경력이 많은 사실 말고는 나는 교사로서 내세울 만한 점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내 점수는 턱걸이 3등급이었다. 내가 읽은 책 중에 진짜 내 책은 몇 권이었는지 반성한다. 책은 곁에 두기만 해도 사랑스러울 정도로 완벽하고, 이해하든, 않든 책 읽는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책 보기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많은 책이 내 안에 들어와 노화를 멈추는 피와 살이 되기를. 유치하지만 다가올 수능에서는 1등급 점수를 받기를. 그리하여 내 전매특허 ‘그림 이해력’을 검증받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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