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너도 나도 잘하고 있어.
우리 반 아이, A의 어머니 전화가 왔다. A의 심리상담 결과가 나왔단다. 진단명은 ‘선택적 함구증’. 힐끗힐끗 늘 눈치를 보고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겁에 질린 눈빛을 보내며 가끔은 덜덜 떠는 아이다. 친구에게 말을 걸지 않고 친구가 말을 해도 답하지 않는다. 그 누구와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A는 점심 먹을 때만큼은 눈치 보지 않는 것처럼 친구들이 다 집에 갈 때까지 밥을 먹는데 식사가 끝나면 도망치듯이 집에 간다. 아, 어쩌면 왁자지껄한 하굣길에 친구들과 부딪히기 싫어서 일부러 천천히 먹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A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괜찮아.”이고, 그다음으로 많이 말은 ‘잘하고 있어.’다. 내 존재 자체가 A에게 공포인데 괴물 선생이 공포의 얼굴과 목소리로 ‘괜찮아’라고 말한다고 뭐가 그리 괜찮았을까. 이래저래 못난 선생이다. 최근에 A는 내 눈빛을 극도로 피했고, 눈을 깜박거리는 틱 비슷한 증상까지 보였다.
A의 어머니는 소아정신과에 진료 예약을 했다고 한다. 걱정이 많지만 치료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하셨다. 나는 학교에서의 A가 궁금하면 언제든지 수업을 보러 와도 좋다고 했고, 아직 1학년이라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겠다고 위로 같지도 않은 말을 했다.
말로 먹고사는 직업인데 나는 말이 싫다. 나는 말이 제일 무섭고 말이 제일 아프다(그래서인지 글이 훨씬 편하다). A의 어머니가 들으면 기가 차겠지만 나는 ‘선택적 함구’가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처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의 불같은 고함소리에 자주 노출되었었다. 그때마다 심장이 터질듯한 공포를 느껴 지금도 누군가의 고함소리를 들으면 내 얼굴을 할퀴는 고통이 느껴진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이 하루에 하는 말 중 정말 필요한 말, 나와 타인에게 긍정의 말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쓸데없이 떠드는 말이다. 내가 사람을 꺼리는 이유도 ‘말’이다. 나도 모르게 내뱉어지는 쓰레기 같은 말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인의 먼지 같은 말, 의도와 달리 상처가 되는 말을 듣는 일은 더 싫다. 사람을 만나 말없이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수 없으니 처음부터 안 만나는 게 낫다. 사실 나도 외롭지만, 밤에 이불 킥을 하거나 끙끙거리며 앓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선택적 함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터져 나오는 말을 꾸역꾸역 참을 필요도 없고, 실수로 쏟아진 물 같은 말을 질척거리며 닦을 필요도 없으니까. 다만 이런 나를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답답한 나를 싫어하겠지. 나는 나를 싫어하는 그 눈이 무섭고, 무서운 눈으로 둘러싸인 상황이 불안해서 나는 더 말을 안 하겠지? 그래. 딱 거기까지다.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입을 다문 나를 답답해하고 답답한 나를 싫어하는 거기까지. 거기서 나는 더 나가려는 마음을 멈추면 된다. 말은 너무 편해서 나도 싫거든. 꼭 필요하다면 글로 하겠지. 글로는 소통할게요!
B선생님이 관리자의 스파이 노릇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B선생님 앞에서는 각별히 말조심하란다. 분명 나를 걱정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관리자에게 하고 싶은 말, 차마 내 입으로 하지 못한 말을 B선생님 앞에서 꼭 지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아이들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대하라며 정작 자신은 가시 돋친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고, ‘민원 사전 철저 예방’이라던가, ‘공무원 행동강령 준수’라는 뜬구름 잡는 말을 힘없는 평교사에게 그리 하고 싶냐고 말이다. 우리의 스파이 선생님이 역할을 기대만큼 해준다면? 관리자에게 불려 가서 나는 뻔뻔하게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하지, 뭐. 아직 잘 모르시나 본데 저는 지금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내 선택은 바로 이 학교라고. 선생님들이 이런 나를 너무 싫어한다고 말이다.
내일 A를 만나면 안쓰러운 눈빛이 아니라 부러운 눈빛을 보내야겠다. 선생님은 말이다. 네 그 증상을 나에게 나눠주면 좋겠다. 사람들은 말을 넘치게 많이 하잖아. 너도 알다시피 괴물 같은 나부터 말이다. 학교에서는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은 네 마음, 그 방법 나한테도 좀 알려주지 않을래? 아, 말하기 싫다면 내가 조금씩 몰래 너를 배워볼게. 이런 나를 보다가 언젠가 네가 이 말을 나한테 해주면 좋겠다. ‘선생님 괜찮아요. 잘하고 있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