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불안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하루에 몇 번 문득 불안하다. 불안은 크고 깊은 호수처럼 꽤 오래 빠져 있기도 하고 곧 잊힐 듯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불안이 오면 불안해서 무섭고, 불안을 잊으면 안일하게 있다가 당할까 봐 무섭다. 이제 불안은 내 일상이 되었고, 오면 일상인 듯, 가면 잊은 듯 살고 있다.
제법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던 저녁, 나는 딸의 손을 잡고 공원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불안했다. 연아, 엄마는 불안해. 서울에 큰 병원 갈 일을 생각하니 엄마는 무섭다. 그랬더니 딸이 이런다. 엄마,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괜찮을 거예요. 내가 괜찮으니까 불안해하지 마. 맞다. 네가 괜찮다면 엄마도 괜찮아야지. 엄마가 못난 말을 했다. 그날 저녁 서늘한 바람이 우리 둘을 아무리 휘저어도 한번 시작한 내 불안은 그 열이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면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머리를 빗지 않고 거울을 보지 않는다. 뉴스를 듣지 않고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밥을 잘 먹지 않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고 책을 읽을 수 없다. 불안을 나를 정지시킨다. 멀쩡하다가 불안이 모락모락 내 안에서 불을 피우면 죄책감이라는 가마 속에 나를 억지로 구겨 넣고 질식할 만큼 나를 태운다.
요즘은 멍하니 산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출렁거린다. 마구 흔들어지다가 어느 딱 멈추는 순간을 기다린다. 꽉 낀 구두에서 발을 빼듯 피가 통하지 않다가 시원해지는 느낌처럼 내 고요가 크게 다가온다. 어느새 불안은 가라앉아있고 다시 나는 아무렇지 않다. 그렇게 나는 나무와 바람과 흔들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부디 무탈하세요.’라는 말은 덕담이 아니라 악담이라는 어느 역사가의 말이 떠오른다. 역사에서 무탈함은 권태와 쇠퇴와 멸망을 의미한단다. ‘위기가 곧 기회’이고 ‘적당한 스트레스는 약’이겠지만 시시때때로 불안한 나는 내 불안이 나에게 뼈와 살이 될지 알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절망적이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야 그 최악을 맞닥뜨리지 않는다는 나만의 결론만 자꾸 실천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하다. 딸의 병에 관한 책을 주문했지만, 막상 박스를 열고 책을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표지 글자부터 얼굴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단 한 페이지도 촘촘하게 읽기 힘들었다.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의 카페도 가입했지만, 화면에서 카페만 봐도 심장이 쪼그라든다. 게시 글 몇 개도 읽지 못하고 창을 닫는다. 이 모든 행동이 안일하다 싶어 다시 불안하다. 무섭고 떨린다. 그러다 문득 나는 운다.
불안의 바닥에는 무엇이 있는지, 결국 바닥이 나오기는 할지 불안하다. 지진이 느껴지면 방석을 머리에 얹고 탁자 밑으로 들어간다는 모두가 다 아는 체화된 정답처럼 불안도 정답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그저 산을 보고 나무를 보고 꽃을 보고 잎을 보고 바람을 맞을 뿐이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또 내쉬다가 눈물을 흘리다가, 많이 나면 닦을 뿐이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작은 거미 한 마리가 구석을 스믈스물 기어가는 다니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 휴지로 잡지는 못하고 빨리 눈앞에서 사라져라 속으로 응원만 할 뿐이다. 나는 내 불안을 그대로 맞이하고 인정할 뿐이다.
나는 문득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