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나에게 식욕이 사라졌다는 말은 정신이 피폐하다는 뜻이다. 나는 마음이 괴롭다. 죄책감에 미칠 것 같다. 너무 늦게 왔다는 의사의 말이 자꾸 귀에서 맴돈다. 인생 왜 그렇게 살았냐, 그 동안 헛살았네요 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 말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다.
걸었다. 그냥 운동장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교문을 나왔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또 걸었다. 산이 보이고 숲이 보였다. 그쪽으로 걷다보니 흙길이 나오고 시냇물도 흐른다. 숨이 좀 쉬어지는 것 같다. 숲속으로 더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숨이 헐떡일 때까지 산길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숲이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눈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저 바위가 떨어지면 분명 나를 덮칠 것이다. 정확히 나를 조준한 위치로 엉덩이를 옮겼다. 바위를 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또 크게 냈다.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숨을 쉬니 가슴이 좀 시원하다. 저 바위가 굴러 떨어져 나를 쳐도 괜찮을 것 같다. 아까 억지로 밀어 넣은 밥도 내려가는 것 같다. 그렇게 있다보니 또 눈물이 났다.
숨을 쉬는 것인지 눈물을 쏟아내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숨 쉬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맞먹는 것 같다. 나는 바위같이 내 속에 꽉 막힌 숨과 눈물을 그렇게 한참을 토해냈다.
정신없이 울던 나는 인기척에 뚝 그쳤다. 운동하러 온 아저씨가 기침소리를 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벌떡 일어났다. 기다리던 눈물도 억지로 밀어 넣고 다시 걸었다. 가장 후회되는 일은 글을 쓴 일이다. 나는 내 글 탓을 하고 있다. 내 딸 등이 굽었다는 글을 쓴 일이 가장 아프다. 그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병원을 데려 갔어야 했다. 나는 내 책을 다 불살라 버리고 싶다.
아이러니하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일 뿐이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닥친 슬픔이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갈 것 같다. 최악을 상상하는 버릇을 아직 버리지 말라는 뜻인가보다. 어느 정도의 고통을 상상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상상하던지 더한 고통이 닥칠까봐 나는 움트는 희망을 짓밟는다.
아이가 없을 땐 숨이 막혀 가슴을 두드리다가 아이가 있을 땐 재빨리 가면을 써야 한다. 나는 언제나 딸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의 상징이고 진심은 한 톨도 들어가지 않은 긍정의 말을 한다. 내 가면이 오래오래 멀쩡했으면 좋겠다.
널 갖고 싶어 얼마나 애태웠던지, 널 낳고 얼마나 감격했던지. 너로 인해 나는 세상을 알아가고, 어른이 되는지 모자란 엄마는 오늘도 너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