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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Jun 21. 2022

수행 기록 27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거부해봐도 ‘나는 말을 못 한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말이 잘 나오지 않게 하는 특정 사람이 있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 똑똑하다는 것이다. 나는 강약약강의 인간은 절대로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말을 잘하는 똑똑한 사람과 대화를 하면 나 역시 권력의 가냘픈 손가락에도 바로 구부러지는 어쩔 수 없는 저급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들의 논리적 허점이나 어휘의 부 적확성으로 역습을 시도해도 무너지는 건 어김없이 나다. 그들은 확실히 나보다 똑똑하고 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지적하려는 순간 내 안에서 커다란 구멍이 생기면서 그 속에 내가 먼저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을 끔찍이 경멸하는 나는 대화가 좋으면서도 대화만큼 피곤한 일이 없다. 특히 똑똑하여 내 구멍을 족족 알아채는 그 또는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나는 삶의 의지마저 사라지는 느낌이다. 나는 바람과 손잡고 나무와 눈을 맞추고 꽃과 말하고 싶은 사람이다. 나 이외의 동물은 다 없어졌으면 싶다. 그러나 바람과 손을 잡으면 손가락이 시리고, 나무와 눈을 맞추면 곧 졸리고, 꽃과 말하면 꽃가루가 날린다. 찰나의 위안 따위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이런 점에서 자연으로 여행도 불편하다.     


아무 말이 난무할 때는 다들 입 좀 다물라고 속으로 소리를 지르다가 정작 아무 말도 없을 때는 숨이 막힌다. 결국 아무 말도 없는 상황을 내가 제일 불편해한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타인에게 들켜서는 안 되기에 죽을힘을 다해 말을 한다. 그러나 그럴 때 나오는 말이란 하나같이 또 저질이다. 진심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쭉정이 같은 것들만 우수수 쏟아진다. 나는 가식이 싫지만, 결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이 섞여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첫째가 가식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안다. 가식으로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듬어 준다. 그러나 내가 하는 가식은 가식을 향한 혐오가 여과 없이 드러나기에 나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간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싶지 않고, 그들 역시 내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란다. 전달은 글로도 충분하다. 나는 정제된 글이 훨씬 편하다. 날 것의 말은 태생적으로 비리고 폭력적이라 잘 듣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는 글이 힘들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선별적으로 담을 수 있는 글이 훨씬 편하다. 그러나 말은 원초적이라 그 폭력성이 정교하지 못하지만, 글은 상당히 교활해서 작아도 진하고 뚜렷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러나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에 글은 거부가 편하다.     


말로 다친 마음을 글로 달랜다. 글을 쓰고 읽다가 눈물이 터지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운다. 미치게 하는 글을 읽고 싶고, 글을 낳고 싶다. 그런 글은 내 염세를 유순하게 한다. 그래서 대화를 글로 하고 싶다. 표정을 보면서 글로 말하고 싶다. 너를 이해하고 싶은 나를 위하여 너의 글을 읽고 싶다.     


처음 글을 보면 나는 빨리 읽어버려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처음 보는 사람을 빤히 들여다볼 수는 없지 않은가. 좀 조용해지면 나는 크게 숨을 한번 쉬고는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는다. 단어의 뉘앙스, 종결어미와 말투 등 행간에 집중한다. 나는 글을 쓸 때 행간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면 싶어 짧고 간결하게 글을 쓰는데 사람들은 그런 내 글에서도 행간을 찾아내서 당황스럽다. 다른 사람의 글을 꼼꼼히 따져가며 읽으면 그의 생각을 꼭꼭 씹어먹는 재미가 있다. 글에서도 꼭꼭 씹히는 맛이 난다.     


글이 준비되지 않은 말하기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숙제라 경전 대학 나눔 수업을 위해 나는 철두철미하게 글을 준비한다. 내 글을 보고 읽어도 가끔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다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글을 읽다가 가끔 울컥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데 오늘 딱 그렇겠다는 예감이 들 땐 즉석에서 맨송맨송하게 즉석에서 수정해 버린다. 글 없이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존경스럽고 누군가의 글 없는 발언에도 생각이 꼭꼭 씹히는 맛이 날 땐 나는 속으로 엄청난 박수를 보낸다.     


글로 하는 대화가 편한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결혼생활이 좀 아름다웠을까 싶다가도 남편처럼 글로 하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라 오히려 낫지, 싶다. 대화를 위한 글의 가치에 대해 일절 논하지 않는 남편 덕분에 나는 글에 더 목마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그가 보냈던 19년 전의 글은 아직도 생생하게 나를 토닥토닥한다.      



글이 있어서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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