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섬에 가요

by 물지우개

“주말부부를 하지 그래. 시골에서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려고?”

남편과 함께 섬에 간다고 했을 때 양가 부모님들은 탐탁지 않아 하셨다. 시부모님은 우리가 대도시에 사는 것이 자랑인 분들이다. 따라서 가까운 시골도 아니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섬에 가는 것에 대해 당연히 반기지 않아 하셨다. 애들에게 사교육을 끊으면 혹시 공부가 뒤처질까 봐 많이 걱정하셨다.

친정 부모님은 나의 휴직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교대에 진학했고 교사가 되었다. 교사인 나는 부모님의 자부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시골에서 매우 가난하게 자란 분이라 두 분에게 학업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다. 주어진 숙명처럼 평생 일만 하고 자식을 키우는데 충실한 분들이다. 부모님을 보며 자연스럽게 배웠다. 돈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벌고 열심히 모아야 한다. 배우지 못한 서러움, 실직에 대한 두려움, 저학력에 대한 열등감, 대학 학비에 대한 부담감 이 모든 것이 응집되어 부모님은 나를 교대로 밀었다.

내가 처음 임용되어 진짜 교사가 된 날, 아버지는 우리 교실에 필요한 물건을 사주시겠다고 했다. 필요한 것도 없고, 있더라도 학교에서 준다고 해도 아버지는 기필코 사주고 싶어 하셔 하셨다. 아버지는 근검절약이 뼛속까지 베여있어도 내가 교대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필요한 것에는 최대한 지원해 주셨다. 어쩌면 부모님에게 강현정은 자부심을 넘어 자아실현이다.

내가 돈도 벌지 않고, 육아휴직 수당도 없고, 교사라는 직업마저 잠시 내려놓는다고 하니 아버지는 끝까지 표정이 어두웠다. 조심하라고, 아니다 싶으면 얼른 돌아오라고 하셨다.

순응을 넘어 순종하며 살았다.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결혼 전에는 효도라는 큰 테두리에서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한 적도 없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엄마라는 거대한 쇼크에 놀랐지만, 비명은커녕 현실에 순응했다. 마흔을 앞둔 지금에서야 절실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여유 있게 ‘생각’이라는 것도 하고 싶었다. 궤도를 벗어난 새로운, 진짜 내 모습을 절실하게 찾고 싶었다.


“그래, 인생에서 그렇게 한 번 살아보는 것도 좋지.”

양가 부모님 다 결국 이렇게 받아들이셨다. 익숙함이라는 관성에 의해 우리는 삶의 궤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진부한 삶에서 궤도이탈을 꿈꾸지만 어디까지나 꿈일 뿐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있으면 그것은 더욱 꿈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과감히 실천하지 못했던 길은 언제나 아쉽다. 이상하게 더 달콤해 보인다. 일흔 언저리에 선 부모님도 젊으셨을 때 한번은 달콤한 궤도 이탈을 꿈꾸지 않았을까? 궤도 이탈을 꿈만 꾸다가 언제부턴가 꿈조차 꾸지 않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결국 부모님도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내가 섬에 간다는 말이 부모님도 잊고 살아온 이탈을 떠오르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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