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갈 것, 가져가지 말아야 할 것

by 물지우개

한산도에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이사 준비에 돌입했다. 우리가 정한 이사 날은 2월 28일. 앞으로 일주일 남았다. 결혼 후 이사를 꽤 한 편인데 이런 이사는 처음이었다. 여기 집을 완벽히 비우는 것이 아니다. 한산도의 집도 원룸이라 많이 들고 갈 수도 없다. 어떻게 짐을 챙겨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했다. 나 자신에게 말하듯 가족에게도 일러두었다. 꼭 가져가야 할 것 먼저 챙겨보라고. 당장 없으면 안 되는 것부터.

어정쩡한 이사를 앞두고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이런 이사는 너무 이기적이었다. 이사란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할 것 정리해서 집을 아예 옮기는 것이다. 한데 우리가 지금 하려는 것은 베이스캠프를 도시에 두고, 평일을 보낼 세컨드 아지트를 위해 짐을 싸는 것이 아닌가. 내가 떠나고 싶은 이유가 과연 돌아오기 위해서였던가. 진정 베이스캠프의 중력에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권태로움에 발버둥 치다 잠시 피신할 돌파구를 찾는 것인가. 이런 내가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다시 마음을 잡기로 했다. 지금은 흘러가는 중이라고. 돌아오겠지만 그것 또한 흘러가는 거라고. 잠시의 이동이나 움직이고 있다고. 고작 1년의 월급과 경력을 놓았지만, 그 1년이 또 다른 새로움 삶으로 나를 이끌 수도 있다. 고여 있던 나를 자유롭게 흐를 수 있게끔 첫발을 떼는 중이라고 토닥였다.

물건들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놓고 가야 할 것과 들고 가야 할 것을 구분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이것은 낯설게 살기 위한 나름의 원칙이었다. 되도록 부피가 크고 무거운 들고 가지 않는다. 침대, 책상, 의자, 식탁 이런 것은 원룸 입구부터 어차피 출입 불가능이다. 가져가더라도 돌아올 때 기꺼이 두고 오거나 아니면 깔끔하게 버리고 올 수 있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옷도 딱 일주일 치만. 먹거리도 일주일 치. 그릇, 냄비, 수저, 컵 등도 최소한으로. 평소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최소한으로만 가져갈 것. 오히려 전혀 갖고 놀지 않던 장난감은 챙겨볼 것. 없으면 불안한 것은 챙겨보라고 했다. 각종 상비약을 넉넉히 챙겼고 저 깊숙한데 넣어두었던 내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넣었다. 아이들은 사놓고 거의 쓰지 못한 연날리기와 팽이치기, 인라인스케이트와 보호 장비, 잠자리채와 채집통, 바둑판과 장기도 넣었다. 남편은 구석에 얌전히 세워져 있던 낚싯대를 꺼냈다. 위험하다고 절대 사주지 않던 전동 휠을 서연이를 위해 과감히 샀다. 어린이용 등산화도 처음으로 샀다.

부피가 컸지만, 남편이 만든 원목 거실 테이블은 가져가는 데 모두 동의했다. 원룸에는 책상을 놓을 수도 식탁

을 놓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양말과 속옷, 아이들의 겉옷을 보관할 서랍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플라스틱으로 된 가벼운 것을 새로 사기로 했다. 그러다 갑자지 세탁기가 필요해졌다. 10살쯤 엄마가 화장실에서 빨래하시며 남들 다 있는 세탁기가 없다고 신세 한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최소한의 물건으로 산다고 해도 세탁기가 없는 장면은 아니었다. 테이블, 서랍장보다 세탁기가 1번이었다. 중고를 알아보니 중고가격이 그리 저렴하지 않았다. 섬에서 고장이라도 나면 완전히 난감하니 작지만, 새것으로 샀다. 그나저나 섬을 떠나올 때 세탁기를 과연 두고 올 수 있을까? 원칙을 깨고 꿋꿋이 집에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우리 집에 세탁기가 두 대나 필요하나?


견딜 때까지 견디는 것이 나았을까. 작은 걸 산다고 샀는데도 상자가 거대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가져갈 물건 중 가장 크다 싶으니 가족들 보기 미안했다. 그래도 이왕 사버린 세탁기, 내 번민의 거대한 결과물이니 최대한 열심히 쓰고 사랑해 주자. 세탁기 덕분에 아껴진 시간을 더 재밌게 써보자. 그게 저 거대한 세탁기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물욕은 미니멀을 추구한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욕구충족의 동물이기 때문에 사지 않아도 사고 싶은

마음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모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신중하고 현명하게 소비하고 소비 후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리라.

섬에 가져갈 물건들이 하나, 둘 거실에 모였다. 상자에 물건명을 쓰며 점검하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떠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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