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장자수업] 읽고
소통(疏通)
모두가 잎을 떨구었을 때
당연히 붙잡고 있는 나무를 본 적이 있다
차마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찬 바람을 감내하던 나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연둣빛들을 위해 붓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어느 할아버지는
잠바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는
두 손을 모아 호호 불었다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이 분명한 듯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정녕
지루함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어느 초등학교 학생들의 해금 연주를 들으며
저렇게 어려운 악기를 저만큼 소리 내는 데
얼마나 힘겨웠을지 상상하다
슬며시 눈이 아파오다
힘겹다는 그 생각마저 불통(不通)이라 여겨져
아이 얼굴에 내 얼굴을 슬며시 포개기만 했다
내 책상 위의 석곡은
매년 노란빛의 꽃을 피워내는데
홀릴 향기 필요 없이
그저 연두 잎처럼, 입김처럼
제 기쁨을 걷는다
꽃잎이 해금처럼 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