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by 물지우개

나는 공방 가는 수요일마다 김밥을 싼다. 공방 식구들과 점심으로 나눠 먹기 위해서다. 주말에 장을 볼 때 김밥재료부터 장바구니에 담는다. 햄, 단무지, 맛살, 어묵을 담고 시금치나 오이, 고추 중에서 하나를 산다. 예전에는 당근도 꼭 넣었는데 올해부터 묵은지를 씻어 넣으면서 당근은 생략했다. 김밥용 김은 열장 혹은 스무 장 포장된 상품이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한 톳씩 산다. 건어물가게의 김 조직이 더 치밀하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6~7가지 김밥 속 재료를 준비하고 김밥을 말아 썰어 담는 데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아침을 8시에 먹는다면 6시부터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음식이다. 그러나 두 시간 바짝 고생하면 그 날 세끼는 거뜬하다. 어떨 땐 다음날 아침까지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두 시간의 노동은 적당하다. 매 끼 식사를 준비할 때 40분정도 걸린다고 계산하면 세끼를 준비하는데 총 두 시간이므로 ‘김밥 노동 두 시간’과 같기 때문이다. 그 계산을 하고 나서부터는 두 시간이 그리 수고스럽지 않다.


김밥 재료를 준비할 때 핵심 양념은 매실청이다. 시어머님이 담근 매실청을 쓰는데 밥에 두세 숟가락 넣고 햄과 어묵을 졸일 때도 간장, 설탕과 함께 매실청을 넣는다. 매실청은 김밥을 잘 상하지 않게 한다. 강한 산성 덕분에 세균번식을 막기 때문이다. 거기다 매실청은 식초보다 덜 시큼하고 달콤해서 김밥 맛을 더한다. 김밥을 써는 칼에도 보통은 참기름만 바르지만 나는 매실청도 같이 바른다. 김밥을 썬 단면에 매실청이 묻으면서 그 효과가 더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김밥을 말 때 가장 어려운 기술은 밥이다. 김의 삼분의 이 정도로 아주 얇게 펼치는 것이 관건이다. 얇게 펴겠다는 생각에 너무 힘을 주면 김이 찢어져서 썰 때 붕괴한다. 두꺼우면 전체적으로 김밥이 뚱뚱해지고 알록달록한 속이 돋보이지 않는다. 더 문제는 간이 싱거워 김밥을 먹을 때 단무지나 김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김이 비칠 정도로 밥을 얇고 넓게 펴는 능력은 다년간의 내공이 필요한 고난이도 기술이다.

가족들은 김밥 꼬랑지를 좋아한다. 툭 튀어나온 속이 보기에 민망해도 맛은 더 좋다. 튀어나온 속이 달면서 짭짤하기에 더 맛있게 느낀다. 공장에서 생산된 단무지, 햄, 맛살은 알맞게 딱 떨어지지만 동그란 프라이팬에 구워진 지단의 지름 부분은 김밥길이보다 항상 길다. 시금치나 오이도 잘 튀어나온다. 꼬랑지 부분에는 사람 손 즉, 칼이 닿지 않아 야생미가 넘친다. 식구들은 자연 그대로의 매력을 발산하는 꼬랑지를 서로 먹겠다고 다툰다.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양쪽 모두 매실청으로 코팅된 반듯한 부분을 좋아한다.


김밥을 입에 넣는 순간 모든 재료가 입안에서 섞인다. 재료의 시너지가 폭발하며 뿜어대는 그 맛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좋다. 김밥재료를 모두 분해해서 하나씩 입에 넣어도 이 맛과 같지 않다고 본다. 각 재료들이 동그란 형태로 단단하게 말리는 순간 각 부분의 합보다 더 큰 힘을 갖기 때문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김밥은 엄마의 내공으로 뭉쳐지면서 더 큰 맛으로 탄생한다. 아이돌 그룹을 한명씩 볼 때는 잘 모르지만 칼군무를 보면 경이롭다. 특별하지 아닌 재료들이 단단한 김밥이 되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놀라운 맛을 보여준다.


김밥을 썰면서 옆구리가 터진 것을 내 입에 넣는다.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한다. 일찍 일어나 바삐 움직였더니 배가 고픈지 터져도 맛있다. 김밥 싸던 엄마는 옆에서 구경하던 어린 내 입에 김밥을 하나씩 넣어주셨다. 지금 내 김밥이 맛있어도 그때만큼은 아니다. 내가 만든 김밥을 먹으며 따뜻한 친정 엄마를 추억한다. 어느새 바짝 붙어 앉은 서연이 입에 김밥을 하나 넣어준다. 이다음에 내 딸에게 엄마 김밥을, 아니 엄마를 추억해 달라 조른다면 너무 계산적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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