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눈물

by 물지우개

딸이 6학년이 되자 덩치가 나보다 커졌다. 발 사이즈는 이미 나를 넘어선 지 오래. 한 장 두 장 내 티셔츠를 가져가더니 이제는 나보다 큰 사이즈를 사줘야 할 판이다. 아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나는 조만간 이 집에서 ‘최소인’이 될 듯.


법륜스님은 19살까지만 자식을 품으라 하셨다. 20살이 되면 모든 지원을 칼같이 끊고 자식을 보내야 한다고. 그러지 못해 스님께 호소하는 고통과 번민의 사례들은 많았다. 나는 과연 내 아이들을 보낼 수 있을까. 보낸 아이를 찾거나 기대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성인이 된 아이가 부모의 도움을 원할 때 나는 냉정할 수 있을까.


내 기억 속 어머니의 통곡은 세 번이었다. ‘통곡’이라 표현한 건 어머니가 당당히 소리 내어 우셨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자는데 어머니가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소리가 점점 커져 결국 통곡까지 갔다.


처음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날이었다. 법륜 스님이 말씀하셨던, 바로 떠나보내라던 그 순간이다. 두 번째는 내가 직장인이 되어 자취를 시작하기 전날 밤이었고 세 번째는 예상대로 결혼식 전날이었다.


세 번 모두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기억하지만 가장 큰 통곡은 첫 번째다. 솔직히 그때는 여느 딸처럼 엄마가 우니까 나도 울었지만 그 눈물 상황이 이해가 안 된 것도 사실이다. ‘엄마가 왜 울지? 이렇게 큰 소리를 내며 울 일인가? 엄마는 많이 슬픈가? 주말이면 집에 올 텐데. 그러게, 엄마. 있을 때 좀 잘해주지. 아닌데. 나한테 말 안 한 다른 일이 있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기쁘면서도 슬프고,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을까. 믿지만 걱정이 많았고, 자연스럽지만 낯설기도 했으리라. 무엇보다 미안하면서 고맙지 않았을까. 아기 참새처럼 재잘대던 아이를 품에서 날려 보내야 하는, 법륜스님이 말씀하신 그 찰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중이었을까.


컴컴한 방에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엄마는 내 손등을 만지고 이마와 볼을 쓰다듬다가 등도 두드렸다. 엄마 얼굴을 가까이 보니 소리 없이 눈물만 흐르다가 조금씩 훌쩍거렸고 결국 흑흑, 엉엉 소리도 났다. 눈물을 참으려는 듯 침을 힘차게 삼키다가 내버려도라는 듯 베갯잇이 마구 젖기도 했다.


“엄마 왜 울어?”라고 물어볼 법하지만 어려도 이런 순간은 굳이 까닭을 묻지 않는 게 예의인 걸 안 모양이다. 나는 같이 울 뿐이었다.


두 번째는 어머니가 울면서도 말씀을 많이 하셨다. 기숙사에서는 주는 밥을 먹으면 되지만 자취는 다르니까(지금도 우리 집 주방에 있는 어머니가 쓰시던 주방용품이 이때 넘어왔다). 밥 차리는 요령, 열쇠 관리, 운전과 밤길 안전 등 울다가 당부하고 울다가 걱정하셨다. 세 번째 어머니의 눈물은 이전보다 담담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때는 엄마보다 내가 더 운 것 같다. 내 눈물을 보며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마주 보며 소리 내어 울던 울음은 우리 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아이가 자라는 것은 헤어질 순간도 가까이 온다는 뜻이다. 삶이 죽음과 가깝듯 내가 낳은 자식은 나를 떠난다. 떠나야만 한다. 기꺼이 당연하게 보내야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어야 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타인이어야 한다. 자식이 완벽하게 멀어지는 남이 되어야 나는 자식을 참 잘 키운 완벽한 어머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자식이 남이 되는 그 간극에 쏟아내는 축복의 노래였다. 처음부터 완벽한 어미가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어머니의 눈물은 불완전한 인간이 자식을 낳아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낸 자신에 대한 칭찬이었다.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당당한 눈물, 통곡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족한 어미 밑에서도 무사히 자라서 스스로 날아가는 아기 새를 향한 마지막 사랑 표현이었다. 통곡으로 마지막 에너지를 자식에게 불어넣는 중이었다. 잘 키워낸 나와 잘 자란 너를 위한 축복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인사를 드린 후 이제 신혼집으로 떠나는 순간 시어머님은 역시 통곡하셨다. 그땐 잘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시어머님의 통곡 또한 축복의 노래였다. 아들을 보내는 당당한 자화자찬이었고 떠나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내는 사랑의 에너지였다.

딸과 아들을 보낼 때 나도 통곡하고 싶다. 다가올 그 순간 당당히 눈물을 쏟아내기 위해 오늘도 조금씩 아이들과 멀어진다. 멀어진다는 것은 후회 없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당당히 눈물을 쏟아낼 자격은 아무 어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자라듯 어머니도 성장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안아주고 먹이고 품어야 한다. 또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런 어머니만이 자식과 이별하며 당당히 통곡할 수 있다.


성악가 조수미가 치매 걸린 어머니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거울 속에 자기 얼굴이 어머니와 꼭 닮아있더란다. 먼 나라로 딸 혼자 유학을 보내는 일은 자신은 차마 할 수 없을 거라며 어머니의 용기를 감탄했다. 어머니는 딸을 보냈고, 어머니를 꼭 닮은 딸은 언젠가 어머니를 영원히 보내리라.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고 떠나야만 사랑이 완성되는 그 사이사이에 맺히는 눈물, 통곡은 자연스럽다. 아니, 당연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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