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팔경 중 하나인 홍룡폭포에 다녀왔다. 잔뜩 비가 올 듯한 흐린 날씨에 습기가 최고다. 작년보다는 더위가 덜하지만 이런 다습도 무더위 못지않게 불쾌감을 준다. 첫번째로 시원한 물회로 다습을 잊고 둘째로 물회집 근처의 홍룡폭포를 찾았다.
가지산 줄기, 천성산을 오르는 길은 포근했다. 더러 보이는 텃밭과 밭일을 하는 어르신들, 비가 온 덕분에 호수처럼 모인 계곡 물을 볼 수 있었다. 초록은 더 싱그러웠고 끈끈하고 무거웠던 바람도 한결 상쾌하고 가벼워졌다.
꼬불거리는 시멘트길을 지나 산 중턱쯤 키 큰 나무들이 만든 오두막 같은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최근 도색을 끝낸 ‘천성산홍룡사’라는 현판의 일주문을 지나니 더 큰 나무들이 양 옆으로 반겨준다. 푸르른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샛노란 전구 여럿을 매단 트럭이 보인다. 음료를 포함하여 기념품을 파는 가게인가보다. 더워보이는 남편에게 커피를 권했지만 이미 정취에 취한 듯 거절했다.
홍룡사를 앞두고 꽤 높은 정자가 보인다. 이름이 가홍정이다. 일제강점기에 어느 부자 어르신이 병고와 요양을 위해 세웠다가 허문 것을 다시 재건한 것이라 적혀있다. 일제강점기에 이 산속에 정자를 지을 정도면 꽤 많은 부과 권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분 나름의 일제에 대한 저항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홍룡사 입구로 들어가기 전 반야교를 건넜다. 반야교에는 초록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축축한 시멘트에 단단하고 터를 잡은 이끼는 꼭 사람사는 모습같다. 척박한 땅에서 밭을 일구고 가족을 만들고 마을을 이루는 신석기 시대 이후 지금의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 그래서 이끼는 따뜻하다.
다리를 지나면 계곡과 절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담장과 대나무숲이 보인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수많은 소망이 여러 형태로 담장과 대숲에 남아있었는데 담장과 대숲은 기꺼이 그 바람의 무게를 감당하는듯 서 있었다. 무거운 소원을 품고도 돌담과 대나무가 더없이 가벼울 수 있는 까닭은 홍룡사라는 절과 홍룡폭포 덕분이 아닌가 싶어 나는 더 기대했다.
경내를 살펴보기 전 이미 발걸음은 물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미 폭포수를 머금은 바람은 내 등을 밀어 올라가는 계단도 힘들지 않았다. 폭포의 외침은 이미 우리의 대화를 끊어놓았고 눈앞에 펼쳐지는 폭포의 모습은 우리의 움직임도 멈출 정도였다.
역시 이름 답다. 물보라 사이로 보이는 무지개가 보이고, 황룡이 승천하는 것 같다 하여 무지개 ‘홍’ 자와 용’ 용’자를 썼단다. 혹은 하늘의 사자인 천룡이 무지개를 타고 올라갔다는 전설로 이름지었단다. 정말 떨어지는 물은 위엄있는 하늘의 사자의 모습을 했다. 폭포아래 물은 선녀라면 몸을 담그고 싶었을터이다. 번지는 물보라에서 나는 무지개는 보지 못했지만 무지개가 있다면 충분히 승천의 수단이었을 법하다. 20미터 높이의 폭포는 그 곳 자연의 지배자인 듯 바위와 바람과 물과 나무와 심지어 바로 옆 관음전까지 영향을 주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은 세상만사 자연스럽게 살라는 호통같다. 낙수는 거대한 소리를 만들고 푸르게 고이는 물에서는 선을 향해 연대하여 당당히 나가라는 가르침이 들린다. 숭고한 모습으로 신비로운 자태의 홍룡폭포 앞에서는 내가 한없이 작아져도 괜찮았다. 어차피 스승앞에서는 어리광을 좀 피워도된다. 나는 턱없이 모자라고 털끝만큼이라도 닮기 위해 위대한 분 앞에 온 것이니. 폭포아래 약사여래불 앞에서 여인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기도를 한다. 어쩌면 인간의 겪은 여러 고통도 자연의 섭리일까. 폭포 아래 약사여래불은 고통을 멈추는 방법으로 고통에 초월하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폭포를 보고 내려와 홍룡사를 둘러보며 나는 산사의 향냄새가 몸에 베기를 기도했다. 이미 향기가 베인 백구는 무설전 옆에서 곤하게 잠이 들었다. 단잠을 깨울까봐 둘러보는 내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길을 걷다 노란 전구가 이정표처럼 달린 트럭을 다시 만났다. 거기서 나는 나무로 만든 소원종을 샀다. 오늘의 귀한 배움이 예쁘게 다듬은 이 나무종에 부디 담기기를 바라며 연신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