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 Sonata No.14 C# minor 1st
소년은 숨 쉬기 힘들정도로 답답할 때면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달렸다. 달리는 소년에게 보름달은 한 줌 희망이었다. 소년이 사는 곳은 다른 마을과 연결된 길이 없는 섬마을이다. 고립으로 더 혹독한 섬마을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이 곳 추위는 육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외지인의 말을 들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니까짓 게 뭘 안다고, 여기서 살아봤냐고 고함지르고 싶었다.
바닷바람이 뺨을 때린다. 파도소리는 뒤통수를 친다. 그래도 소년은 계속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빌어먹을 이 마을은 벗어날 수 없다. 그래도 달을 보며 달리면 저 달에 빨려 들지도 모른다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태훈이 니 여게 있었나? 찾았다 아이가”
소년의 누나가 찾으러 나왔다.
“와? 아부지가 덜 때맀다고 가보라 카드나?”
“마이 아팠제? 아부지가 니 미바서 그라긋나? 술이 문제지.”
“몬 들었나? 내 나가라 카는 말 몬들었나?”
“아부지가 니 미바서 그카겄나? 니 좋아하는 괴기 만다 사 왔것노? 몬들었나? 외섬에 숙희아부지 괴기잡다 바다에 빠져죽은거 모리나? 우리는 아부지라도 있는기 오데고.”
“필요없다캐라.”
같은반 숙희는 며칠동안 안보이다가 오늘 등교했다. 시커먼 얼굴이 더 시커매져서 못 생겨졌다. 점심시간에는 밥도 산더미처럼 쌓아가던 숙희가 오늘은 많이 담지 않았다. 살 빼냐고 비아냥거리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오랜만에 등교한 오늘만큼은 소년도 차마 놀릴 수 없었다.
밖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부지는 저녁상 앞에서 수저를 들자마자 화를 냈다. 엄마는 얼굴에 겁이 질려 뜨거운 국그릇을 밥상에 놓으면서도 추운듯 덜덜 떨었다.
“안 치우나? 당장 치아라!”
“먹어보세요. 싱싱해서 사와가 끼맀어예.”
“안 치우나? 어데서 뭔 짓거리를 하다가 사왔다는 말이고? 내가 오늘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나? 재수없다, 빨리 치아라!”
소년의 엄마는 십년 넘게 한국에 살았지만 베트남사람이라 아직도 억양이 어색하다. 소년은 세상에 모든 엄마가 다 저렇게 말을 하는지 알았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른 엄마들을 보고 비로소 자기가 ‘다문화’임을 깨달았다. 소년은 엄마가 창피했다. 자기 속에도 베트남이 들어 있다 생각하니 탄생부터 불리한 현실에 화가 났다. 다문화를 숨기고 싶어도 사람들은 이미 다 알았다. 예쁜 엄마 때문이다. 말만 안하면 엄마는 괜찮았다. 그런데 젊고 예쁜 것도 문제였다. 어제 집에 오다가 옆집 할머니들이 말하는 걸 들었다.
“태훈이 어마이가 왠 사내랑 붙어있는거 봤드나?”
“돈번다고 맨날 육지에 나가사트만 알아봤지.”
“서방 늙었제, 성질 지랄같제, 것다가 말이 통하나? 육지가면 즈그나라에서 온 사내들 많을낀데 안 꼬이겄나?”
“하모, 그래도 도망안가고 꼬박꼬박 집에 오는기 어데고? 여게 새끼버리고 도망가는 기 한둘이가?”
“맞다, 저리 이뿌고 젊으면 벌씨로 도망갔을낀데 태훈이 어마이는 그래도 안 기특나?”
할머니들은 들으라는 듯 소년이 지나가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소년이 어린애같아 무시하는 것인지, 그나마 있는 엄마한테 고마워하라는 뜻인지 몰라도 태훈이는 짜증이 솟구쳤다. 책가방이 덜렁거리다 어깨에서 흘러내려도 미친듯 달렸다. 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결국 밥상을 엎었다. 그릇이 나뒹굴고 국이 쏟아져 구석에 쌓인 빨래에도 튀었다. 엄마는 어색한 억양으로 ‘아고고’하며 걸레를 들고 급하게 훔쳐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숨이 막힐듯 답답했다. 갑자기 소년도 모르게 뒹굴던 그릇을 발로 찼다.
“저 새끼가 미쳤나? 당장 안오나?”
“아부지도 하는데 나는 하면 안됩니꺼?”
“저 새끼가 어데 말대꾸고? 저리 안 가나?”
결국 손바닥으로 머리를 맞았다. 머리를 맞은 것보다 아버지에게 나는 술냄새가 더 싫었다. 소년은 아버지처럼 ‘에이씨!’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소년은 엄마의 어색한 말을 따라하지 않으려다 아버지의 거친말을 배웠다. 선생님의 고운 말을 배우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말이 더 유혹적이고 따라하기 쉬웠다. 소년의 거친 말에 친구들이 빠르게 반응하는 것도 좋았다. 소년이 사는 마을에는 친구가 없다. 학교에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소년이 친구들로부터 시선을 끌 수 있는 무기는 거친 말 뿐이었다. 교실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건덕지, 예를들면 국어, 수학, 발표, 노래, 만들기, 그리기 그 어떤 것도 잘하지 못했다. 오로지 소년이 아버지처럼 거친 말을 할 때 존재감이 느껴졌다. 공부도 잘하고 발표도 잘해 선생님도 친구들도 좋아하는 진영이를 사실 소년도 좋아했다. 진영이가 고운 치마를 입고 온 날, 소년의 입에서는 생각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니 치마가 그기 머고? 느그 엄마꺼 빼사 입었나?
“뭐라고? 니 말 다했나?”
“가시나를 가시나같다 말한기 잘몬한 기가?”
“니 선생님한테 다 말할거다!”
소년은 또 벌을 섰다. 선생님은 소년을 보고 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소년의 마음을 몰라주는 선생님이 미웠다. 어딜가도 천덕꾸러기에 밉상이니 거친 말은 소년의 정체성이 되어 가고 있었다.
소년의 누나는 엄마처럼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도 착했다. 말도 거칠지 않았다. 소년과 누나가 함께 있으면 다들 누나만 칭찬했다.
“태희는 참말로 참하제.”
“즈그엄마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한다 아이가.”
“말도 마라, 쪼께난게 밭에 나와가 고구마 순도 심구드라.”
소년은 이미 알고 있다. 누나는 소년보다 더 섬을 탈출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제도 텔레비전을 보며 걸그룹의 춤을 따라 췄다. 소년이 보기에도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누구 보여줄라꼬 연습하는데?”
“태훈아, 누나는 가수 뽑는 오디션 보러 갈끼다. 기다리바라. 누나 테레비에 나올끼다.”
“웃기고 있네, 누가 누나를 뽑아준다카드나?”
숨이 턱까지 찬다. 심장이 온몸에서 뛴다. 어느새 침이 썼다. 그래도 오늘은 보름달이다. 누나가 뒤쫓아 오며 부르지만 소년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벌써 다섯바퀴째다. 아무리 달려도 탈출할 수 없는 섬마을이지만 소년은 상상한다. 보름달이 제 살을 깎아 다시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커져 되려 더 밝아지는 장면을. 소년을 비추는 달빛이 해처럼 밝아져 뺨을 때리는 추위마저 사그라지는 모습을.
소년은 믿어본다. 그 달을 향해 죽을 듯이 달리다보면 결국 달이 소년을 흡수해 이 빌어먹을 마을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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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월광 1악장
사람은 누구나 잠재된 욕망이 있습니다. 일렁이는 달빛을 보고 있으면 잠재된 욕망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요. 월광의 선율에서 '눌러도 어쩔 수 없이 솟아오르는 사람의 욕망'을 보았습니다. 잔잔하게 있다가도 툭 하고 튀어오르고, 뾰족하다가도 뭉툭해지는, 달처럼 모습을 바꾸는 사람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아다지오’지만 ‘프레스토’ 못지 않는 속력으로 제 심장이 뛰었습니다. 달을 향해 달리는 소년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