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by 물지우개

저는 김민준이에요. 며칠 전부터 열 살이 되었어요. 새해니까요. 10이라는 숫자는 완벽해요. 손가락을 다 펼칠 수 있잖아요. 오늘은 일요일인데다가 눈 뜨자마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이 힘이 났어요. 손가락이 길어지듯 에너지도 더 생기는 것 같고요. 열 살 기념으로 엄마가 사주신 레고를 만드는 일은 밥 먹으라는 말이 안 들릴 정도로 재미있어요. 맞아요. 원래 엄마말, 잘 듣지 않아요.


엄마는 김치찌개와 밥을 주시네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김치찌개가 맛있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면 맛이 나기도 하고 매운 걸 잘 먹으면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누나는 저보다 매운 것을 못 먹어요. 어떻게 아냐고요? 오늘도 김치찌개를 먹으며 물을 두 컵이나 마셨으니까요. 이럴 때 “나보다 매운거 못먹네~” 라고 하고 놀리고 싶은데 참아야겠죠? 누나는 나랑 잘 놀아주지만 이건 엄청난 약점이라 건들이면 무서워지거든요. 그건 그렇고 저는 밥 먹다 말고 누나처럼 만화책을 가져왔어요. 엄마가 싫어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밥을 그냥 먹는 건 심심하니까요. 또 누나처럼 찌개에 밥을 말았어요. 역시...만화책을 보면서도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네요. 누나는 참 똑똑해요.


우리엄마는 사과껍질을 좋아해요. 사과는 꼭 껍질 째 네조각으로 잘라 두개는 누나를 주고 두 개는 저한테 갖다 주시죠. 친구 집에 가니 친구 엄마는 사과껍질을 칼로 벗겨서 노란 사과를 주셨어요. 껍질 없이 먹는 사과는 참 잘 씹혔어요. 그래도 엄마한테 그렇게 깎아 달라고 말하지 않을 거에요. 그때부터 10분간은 껍질의 좋은 점에 대해 설명을 들어야 하니까요. 잔소리를 들을 바에는 그냥 주는 대로 먹는 게 편해요. 외할머니를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할머니도 사과 껍질 안 깎고 엄마한테 줬어요?”


드디어 제일 싫은 시간이에요. 문제집을 풀 시간! 일요일에도 엄마는 누나랑 저한테 매일 문제집을 풀게 해요. 수학문제집은 어려워도 재미있는데 국어문제집은 힘들어요. 숫자는 생긴 것도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국어는 안그래요. 글자들을 그림도 없이 마구 모아 놓고 읽으라고 하고 거기다 문제까지 풀라고 하면 너무 한거 아닌가요? 영어도 그저 그래요. 가끔은 재밌기도 한데 엄마 목소리가 커질 때는 귀 아프고 거기다 침도 튀길 때는 진짜 별루에요. 차라리 학원에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 기분이 좋은가 봐요. 아니면 엄마가 밥하기 귀찮아 그러실까요? 점심으로 라면을 준데요. 야호! 라면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저는 두 그릇도 먹을 수 있죠. 엄마, 고마워요!


책을 읽던 엄마가 의자에서 잠이 들었어요. 엄마는 잘 때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어요. 고개는 뒤로 젖히고요. 이럴 때보면 엄마가 조금 웃기고 귀여워요. 정말 편안해 보이고요. 엄마는 어쩌면 저렇게 편안하게 잠들기 위해 책을 읽는 걸까요? 그런데 이 말은 비밀이에요. 엄마가 들으면 기분 나쁘실 수도 있으니까요.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요. 누나와 내가 마구 뛰어다니니 엄마는 한숨을 쉬며 밖에 나가자고 하시네요. 옷을 갈아입는 건 조금 귀찮지만 그래도 나가는 건 신나는 일이에요. 저는 엄마 몰래 내복을 벗었죠. 더운데 진짜 더운데, 엄마는 자꾸 내복을 껴입으라고 해요. 분명 점퍼 지퍼도 끝까지 올리라고 하실 게 분명하고요. 누나가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분명 일러 바칠테고 그럼 저는 다시 집으로 끌려와서 내복을 입을 지도 모르니 방문을 닫아야겠어요 “나, 옷 갈아 입으니까 들어오지 마세요!”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분식점으로 가요. 누나랑 나는 물떡을 제일 좋아하죠. 부들부들하고 쫄깃쫄깃한 하얀 물떡을 까만 간장에 콕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우리 동네 분식점은 아저씨들이 요리를 하시는데 정말 최고에요. 아저씨들이 만드는 튀김도 짱 맛있어요. 당연히 제가 제일 좋아하는 튀김은 떡튀김이죠. 떡을 물에 빠드리면 물떡이구요, 노란옷을 입고 튀기면 떡튀김이에요. 누나랑 나랑 두 개씩 사이좋게 먹었어요. 엄마는 아까 라면을 많이 먹어서 배부르데요. 오늘은 안 드시네요. 오늘 튀김은 특히 맛있는데 엄마, 참 아깝네요!


분식점을 나와서 우리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걷기로 했어요. 장난감가게까지 자전거를 타기에는 길이 너무 복잡하니까요. 나는 엄마 옆에 딱 붙어서 가고 싶은데 엄마는 너무 붙지 말래요. 길이 좁아서 사람들이 걷는데 불편하대나? 어릴 때는 내 손을 너무 꽉 잡아 아플 정도였는데...이럴 때 열 살이라 조금 싫어요. 그런데 설마 엄마는 내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겠죠?


역시나 구경만 했어요. 갖고 싶은 보드게임이 있었는데 엄마는 안 사주셨어요. 누나한테 sos를 치는 눈빛을 보냈는데 누나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보드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지난번 세계여행게임은 같이 재밌게 해놓고서는 왜 이 게임은 싫다고 하는지...누나가 같이 한다고 하면 엄마가 사주실지도 모르는데. 이럴 때는 누나도 엄마도 미워요. 다시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왔어요. 오다가 과일가게에서 엄마는 귤을 한 상자 샀는데 귤을 짐꾼아저씨처럼 자전거 뒤에 싣고 달리네요. 귤이 떨어질까 불안해서 저는 엄마 뒤에 바짝 붙어 달렸어요.


어느새 저녁이에요. 엄마가 채소를 듬뿍 넣은 볶음밥을 해주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케찹도 구불구불한 길 모양으로 뿌리고 달걀프라이도 얹어주셨어요. 채소가 많지만 괜찮아요. 나는 채소를 좋아하는 튼튼한 어린이니까요. 거기다가 열 살이잖아요. 케찹에 밥과 달걀을 비벼 입에 가득 넣었어요. 누나보다 빨리 먹을 자신 있어요.


샤워도 하고 양치도 하고나면 드디어 ‘부비부비’타임이에요. 엄마랑 침대에 누워 다리를 얹고 가슴을 끌어안아 얼굴을 비비고 뽀뽀도 하는 순간이에요. 가끔 엄마는 제 배를 꼬집기도 하고 똥침을 하기도 하는데요. 너무 속상할 때는 눈물이 날 때도 있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엄마처럼 엄마한테 해볼 생각이에요. 오늘은 다행히 그러지 않았어요. 대신 동영상을 봤어요. 제가 4살 때 번개맨 옷을 입고 번개파워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죠. 엄마는 핸드폰을 제 얼굴 옆에 두고 비교했어요. ‘다시 이렇게 귀여워질 수는 없겠니?’ 라고 하시지만 저를 바라보면 엄마눈빛은 ‘지금도 귀여워죽겠어’라고 하는 거 다 알아요. 누나는 질투하듯 팔짱을 끼고 우리를 째려봤어요. ‘나도 안아달라고!’ 라고 하네요. 우리 세 명은 침대에서 부둥켜 안고 부비부비를 했어요. 엄마냄새로 충전하니 이제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혼자서요!


혼자 자는 건 진짜 무서워요. 귀신이 나타나서 나를 덮칠 것 같아요. 그게 뭐가 무서워? 라고 말할지 몰라도 어쩔 수 없어요. 무서운 꿈을 꿀까봐 너무 걱정되요. 그래도 오늘은 도전해 보려고요. 엄마는 당연히 못오게 하시고 누나도 언제 그랬는지 방에 써 붙여놓았더라고요. ‘김민준은 밤에 절 때 출입금지!’ 라고. 진짜 치사해요. 나도 혼자 잘 거라고! 나, 열 살이라고!


엄마가 밖에서 글을 쓰나 봐요. 스탠드가 켜져 있고 음악도 들려요. 다행이에요. 안심하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 내가 잠들 때까지 거기 계세요! 내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엄마방으로 갈게요. 그때 만나요!


그런데요, 엄마, 미안해요. 아무래도 민준이가 먼저 하늘나라에 왔나 봐요. 나만 왜 이렇게 빨리 하늘나라에 왔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엄마랑 누나랑 즐거운 우리집에 있었는데 왜 지금은 하늘나라일까요? 여기가 오늘부터 즐거운 우리집인가요? 그나저나 엄마랑 누나도 곧 오는 거죠? 하늘나라라고 적혀 있지만 우리집이랑 비슷해요. 레고도 있고 문제집도 있어요. 밥, 김치찌개, 사과, 라면, 물떡, 떡튀김도 있고 장난감도 있어요. 내 침대도 있고 누나침대도 있고 엄마침대도 있어요. 아무도 안보여서 조금 무섭지만 여기서 그냥 엄마랑 누나를 기다리면 되는 거죠? 엄마랑 누나도 오고 있는 거죠? 알겠어요. 먼저 안 먹고 기다릴게요. 여기 만화책도 있으니까 책보면서 기다릴게요. 대신 빨리 오세요. 엄마, 어제처럼 책보다가 졸고 그럼 늦을 수 있으니까 책은 들고 오는 게 좋겠어요. 내복도 잘 입고 있어요. 걱정마세요. 부비부비를 충분히 해서 기다릴 수 있어요. 그래도 빨리 오셔야 해요! 알겠죠?


그나저나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제가 갑자기 없어져서 엄마, 우는 거 아니죠? 그리고 엄마도 누나도 곧 우리집에 올 거잖아요. 아! 아빠를 찾아볼게요. 아빠도 어디선가 저를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빠랑 같이 하늘나라 우리집에서 기다릴게요. 조심해서 누나랑 같이 오세요! 얼른 우리 네 명 다 같이 즐거운 우리집에서 부비부비해요. 사랑해요 엄마! 누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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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의 Home, sweet Home 을 들으면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느껴집니다. 그리고 차마 즐거울 수 없는 집도 생각납니다. 내 쉴 곳은 나의 집 내 집 뿐인데, 쉴 곳 없는 아니 쉴 수 없는 차마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음악에서 그려졌습니다. 글을 쓰다 조금 눈물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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