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용재오닐 <섬집아기>
어슴푸레 비치는 햇빛에 아이는 잠이 깬다. 실눈을 뜨고 엄마를 보지만 옆에 있어야 하는 엄마가 없다. 아이는 놀라 발딱 일어난다.
“엄마! 어디있어? 엄마 어디갔어?”
아무리 둘러보아도 엄마는 없다.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확인한다. 역시 엄마신발이 안 보인다. 엄마는 아이를 두고 나갔나보다. 아이는 시무룩해지지만 울지 않는다. 달래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안다.
아이의 집은 5층 중 1층이다. 아이는 두 손으로 현관문 손잡이를 돌린다. 대문을 나오자마자 아이는 춥다. 아이는 옷을 혼자 입지 못한다. 잠잘 때 모습 그대로 내복이다. 엄마를 작게 불러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아이는 대문 앞 계단에 앉는다. 그래야 엄마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볼 수 있다 생각한다.
계단은 차갑고 코 끝에 부는 바람도 차갑다. 아이의 코에서 누런 콧물이 흐른다. 아이는 힘을 다해 끌어올려도 콧물은 풀린 도르레처럼 자꾸 흘러내린다.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끌어 올리지 않는다. 조금씩 빨아 먹으니 짭짤하니 맛있고 놀이만큼 재밌다고 느낀다. 시간도 잘 가는 것 같다. 아이는 코와 들숨의 줄다리기 놀이 중이다.
우유 수레를 끌며 1층에 들어온 엄마는 계단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깜짝 놀란다.
“아유, 추운데 왜 나와있어? 콧물이 줄줄 나잖아!”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맨발로 엄마에게 달려간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신발도 신지 않았다.
“엄마 기다리고 있었어. 엄마가 나 두고 갔잖아.”
“두고 간 거 아니야. 엄마 일하고 왔어.”
“무슨 일?”
“우유 배달. 자고 있으면 엄마 금방 오는데 그 새 깼어?”
우유배달이라는 말에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럼 엄마 지금 우유 많아? 나도 분홍색 딸기 우유 먹고 싶은데...”
엄마의 눈이 슬퍼진다. 엄마는 수레를 뒤적거려 딸기 우유를 찾아 입구를 벌려준다. 아이는 그림책에서 본 오리 입 모양 같은 우유 입구와 뽀뽀를 한다. 냉장고에서 꺼낸 듯 시원한 우유는 콧물보다 훨씬 맛있다. 아이는 배가 고프다. 우유 하나를 못 먹는 아이가 다 먹는다. 아이를 보는 엄마의 눈은 더 슬퍼진다.
아이는 엄마와 할머니 집에 간다. 돈을 벌어야 하는 엄마는 아이를 시골로 데려간다. 큰 가방이 불룩하다. 아이는 엄마가 모처럼 사준 커다란 사탕을 빤다. 사탕이 달콤해서 기분이 좋다. 엄마는 두 노인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아이를 향해 활짝 웃으며 키를 낮춘다.
“은지야,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있어.”
사탕을 빠는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는 조금 슬프다. 아무리 예쁘고 달콤해도 사탕보다 엄마가 좋다는 걸 아이는 안다. 엄마가 곧 떠난다는 것도. 엄마는 아이를 향해 몇 번 돌아보더니 어느새 사라진다. 아이는 갑자기 생각난 듯 엄마에게 뛰어가 소리 지른다.
“엄마, 몇 밤 자면 데리러 와?”
“열 밤, 열 밤만 자면 은지 데리러 올게.”
아이는 두 손바닥을 편다. 손가락만큼이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열밤’이라고 혼자 말한다. 아이는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든다. 엄마는 버스를 탄다. 아이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버스는 색종이만큼 작아지더니 지우개만큼, 다시 손톱만큼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조금 무섭다. 밥풀을 끝까지 긁어 먹지 않으면 화를 낸다. 쉬가 마려워 할머니를 불러도 화를 낸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인자한 눈빛이지만 할아버지는 아프다. 아랫방에서 누워 눈을 감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도 아이는 할아버지가 좋다. 심심하면 할아버지 방에 간다. 할아버지랑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도 하고, 일본말도 가르쳐준다. 전쟁 이야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아이와 간식을 나눠먹는다. 아이에게 하얀 곰팡이가 핀 곶감을 주고 가끔은 알사탕도 준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주신 곶감에서 꼬깃꼬깃한 할아버지가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다. 사탕도 혓바닥이 따끔거리는 할아버지 수염 같다. 어느새 아이는 엄마가 그립다.
아이는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을 열고 나와 먼 산을 본다. 아이는 산을 넘고 싶다. 산을 넘어가면 엄마가 있을 것 같다. 혼자 산에 가고 싶다. 그러다 곧 슬퍼진다. 어느 산을 넘어야 하는지 모른다. 어느 산 너머인지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겠다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방에 없다. 빈 방에 티비가 켜져 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뽀뽀뽀’가 나온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줄 때 뽀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땐 또 만나요, 뽀뽀뽀”
아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춘다. 아이는 춤을 추다가 멈추고 운다. 아이에게는 출근하는 아빠가 없다. 안아주는 엄마도 없다. 아이도 뽀뽀를 하고 싶다. 노래가 미워지고 티비가 싫다. 티비를 끈 아이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콧물도 흐른다. 방에 들어오던 할아버지가 소매로 눈물을 닦는 아이를 본다.
“은지, 우냐? 우리 은지 왜 우누?”
“할아버지 은지 안 울어.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래.”
할아버지 눈이 슬퍼진다. 밥상을 들고 오던 할머니는 우는 아이를 보고 화를 낸다. 자꾸 울면 엄마가 더 늦게 온다고 한다. 엄마가 안 올지도 모른다고 성질을 낸다. 아이는 상 밑으로 손가락을 폈다가 접는다. 몇 밤을 더 자야 하는지 새고 있다. 분명 손가락을 다 접었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아이는 다시 펴서 접는 중이다. 다시 주먹이 되면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올까?
아이는 무를 숭숭 썰어 넣은 할머니의 갈치국에 밥을 한 덩이 넣는다. 숟가락에 아이의 눈물이 떨어진다. 아이는 밥에서 콧물 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꼭꼭 씹으니 딸기 우유 맛도 난다. 아이는 산을 넘고야 말겠다 다짐하며 밥을 먹는다.
아이는 모든 순간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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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안 울려고 했는데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늘 그렇듯 엄마는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