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과 친해진지 1년이 넘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재봉틀, 핸드메이드 책을 보면 머릿속으로 구체적인 그림이 떠오를 정도가 되었다. 복직으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재봉틀을 멀리 하지 않았다.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 같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강한 제작 욕구가 생기는 날이면 어김없이 재봉틀을 만났다.
처음 배울 때는 하나의 패턴으로 원단을 달리하며 숙지할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 만들었다. 특히 옷은 수학처럼 그 과정이 복잡하고 방법이 여러 가지라 하나의 길을 완벽히 숙지하지 않으면 다음 과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복잡한 수학 문제의 풀이과정이 과학적이다 못해 예술성이 느껴지듯 옷을 만드는 바느질 과정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 중간에서 순서가 엉키거나 타당하지 못하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은 세상과 동떨어진다. 나는 재봉틀 전원을 켤 때 대부분 음악이나 라디오도 켜지만 정작 몰입할 때는 꺼야 한다. 특히 상침을 하거나 틀린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왔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 모든 감각은 바늘 끝을 향해 있고 그 순간만큼은 무념무상의 경지가 된다. 이 점이 재봉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심지어 배고픔도 잊게 만드는 재미, 그래서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장난감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만든 결과물은 더없이 소중하다.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귀하다. ‘내가 어떻게 널 만들었는데’라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수학처럼 답을 찾았다는 뿌듯함과 더불어 바느질은 그 결과가 아름다운 자태로 존재한다. 자식은 함부로 어디 보낼 수가 없다. 나만큼 사랑해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귀한 것이 천대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바로 여기가 이 취미의 결정적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집착 때문이다.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도 쉽게 버릴 수가 없다. 누굴 주지도 못하고 옷장 어딘가에 숨겨진다. 작품이 마음에 든다면 집착의 정도가 더하다. 다른 이를 생각하며 시작했더라도 내 것이 될 가능성이 많다. 반드시 선물해야 한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는 한 혹독한 바느질을 겪고 나면 첫 마음이 무너질 수 있다.
심지어 이 집착은 결과물뿐만 아니라 재료에도 생긴다. 더 좋은 재봉틀, 더 많은 원단과 부자재가 갖고 싶어 진다. 물론 재미를 위한 투자일 수 있다. 그러나 재봉틀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원단을 쌓는 속도가 작품을 만드는 속도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너무 마음에 드는 원단은 가위로 자르기도 아깝다. 나는 심지어 집착이 덕지덕지 붙은 원단은 평소보다 바느질도 안된다.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쌓아놓은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고, 미니멀리즘을 누구보다 동경하는 나도 재료가 많다. 자리만 차지하는 결과물-옷, 소품, 가방, 커튼도 많다. ‘안 사야지’ 하면서도 쇼핑몰을 둘러보고, ‘포장해야지’ 하면서도 내버려두는 내 모습이 싫어진다. 집착이 커졌다는 것을 체감할 때는 내 친한 친구-재봉틀에게 가까이 가기도 힘들다.
올해 복직을 하고 오랜만에 1학년 담임이 되었다. 3월 말쯤이었나? 어린이날 선물을 고민하다 나는 재미 넘치는 프로젝트를 생각해냈다. 마침 집착이 넘치는 원단 ‘산’이 눈에 보여 21명의 티셔츠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재미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먼저 종이에 아이 이름을 쓰고 사이즈를 적은 후 원단을 표시했다. 학교에서는 리스트와 아이를 보며 여러 번 수정했다. 리스트를 여러 번 수정한 후 사이즈와 원단 별로 구분해서 다시 목록을 만들었다. 샘플을 만들어 보니 21장을 모두 만드는 데 한 달 정도가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름 옆에 제작할 날짜를 기록했고 드디어 나는 실행에 돌입했다.
아이의 옷을 만드는 동안은 바느질도 집중했지만 오롯이 아이만 생각했다. 컴퓨터로 생활기록부를 서술하며 많은 예시문 속에서 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컴퓨터에서는 글자 속에서 아이를 찾았지만 바느질을 하는 동안은 옷을 입고 뛰어노는 아이를 떠올렸다. 컴퓨터에서는 과거의 아이를 떠올렸지만 재봉틀을 하는 동안은 과거, 현재, 미래의 아이가 그려졌다. 한 달 간의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실행했고 어린이날을 무려 일주일이나 앞두고 모두 완성했다.
선물하기 전 옷이 바뀌지 않도록 여러 번 확인했다. 정성껏 포장하고 아이의 이름표를 붙였다. 나누어 주기 전에 솔직히 고백했다.
“사실은 선생님이 만든 옷이에요. 선생님은 옷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서 산 것보다 부족해요. 어쩌면 마음에 안들 수도 있어. 그런데 이 옷을 만드는 동안 선생님은 정말 재밌었어요. 지금 이 티셔츠 주인만 생각했거든. 바느질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나중에는 정말 금방 완성했답니다. 너희들 덕분에 한 달만 정말 재밌었어요. 생각해보니 선생님이 선물을 줘야 하는데 내가 받는 것 같아요. 고마워! "
다음 날 예쁘게 입은 아이도 있고, 안 입고 온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 너무 예뻐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하며 지금까지 즐겨 입는 아이도 있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입고 오지 않은 아이도 있다. 21장이나 만들다 보니 집착이 조금 수련이 되었는지 안 입어도 그다지 서운하지 않고, 즐겨 입는다고 특별히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티셔츠를 만들던 그 시간이다. 오버록과 재봉틀로 바쁘게 움직이던 손, 음악도 들리지 않던 귀, 바늘 끝만 바라보던 눈, 힘 조절하며 페달을 눌렀던 내 발 그리고 오로지 아이만 떠올리던 머릿속, 내 주위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재미, 진정으로 즐긴 그 시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재봉틀은 내 인생 최고의 장난감이다. 재미와 집착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연인들 간의 밀당처럼 다 괜찮다.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완벽하지 않은 이 장난감이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