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떠 도는 말이 먼지 같다 해도 그 먼지에 기침하지 않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솔직히 나는 ‘쿨’해지는 게 어렵다. 뜨거운 것을 놓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손을 데고 만다.
친구 두 명과 2박 3일로 서울 여행을 갔다. 꼼꼼한 내 성격을 잘 아는 친구들은 일정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에 계획을 세웠다. 그래도 모든 책임을 지고 싶지는 않아 교통, 숙소, 여행 장소 등 중요한 결정에서는 친구들의 의견을 물었다. 내가 고른 몇 가지 안에 친구들은 동의했고 모든 결제는 일단 내가 했다.
일정대로 움직여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불편했다. 친구들의 표정을 살폈고 돈과 시간을 계산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특히 친구들이 가다가 힘들어하거나 불만족의 티를 내면 나는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고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장소에서는 그 정도가 심해져 나 혼자 다녔는데 오히려 그게 편했다. 마지막에 총여행비를 계산해서 친구들에게 돈을 받는 때는 악덕 채권자가 된 듯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결국 톡을 보내고 말았다. 다시는 내가 계획을 세우고 싶지 않다고. 2박 3일 내내 불편한 여행이었다고 고백했다. 친구들은 몹시 당황했다.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계획으로 2박 3일이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다음 여행도 같이 가자는 말까지 덧붙였다. 거기다 내 불편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나를 다독였다.
여행의 괴로움은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생각 없이 떠 도는 말에 어리석게 상처 받았다. 좋은 곳에 가도 좋은 줄 몰랐고 맛있는 음식도 맛있게 먹지 못했다. 뜨거운 걸 손에 쥐고 뜨겁다 뜨겁다 외치기만 하고 절대 놓지 않았다. 바보같이.
법륜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해요. 그러면 상대방도 꼭 나를 사랑해야 하나요? 내가 시험에 합격하려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능력이 부족해요. 합격하나요? 나는 바다를 사랑하지만 바다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나요? 운전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운전면허에 합격하면 그 합격은 옳은 일인가요? ”
최선을 다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실망하거나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준다고 해서 상대방도 나한테 줄 의무는 없다는 말이다. 즉, ‘내가 주니까 너도 나한테 주겠지’라는 기대가 괴로움의 출발이다.
얼마 전 오랜 친구와 연락을 끊었다. 기대 없이 주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말은 친구라고 하면서 어느새 계산을 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친구가 없어지는 일도 싫지만 친구로 지내는 일이 더 힘들다는 판단에 결국 연락을 끊고 말았다. 사실 그렇게 연락을 끊은 친구가 한둘이 아니다. 마흔이 되어도 만날 친구 하나 없어 쓸쓸하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기대하고 실망할 바에는 오히려 지금이 낫다. 생각해보면 나는 처음부터 친구가 없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가르쳐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훨씬 재밌다. 수업하는 동안 배움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만족한 수업에 어린이도 꼭 만족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수업을 끝내기 전에 아이들에게 꼭 물어본다.
“오늘 수업 중에 어떤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오늘 어떤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나요?”
과연 아이들을 위한 질문이었을까? 선생님이 줬으니 너희들한테도 꼭 받아내겠다는 내 계산 때문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거부감 없이 수업을 들어줘서 감사할 뿐이다.
마음껏 사랑하자. 계산하거나 기대하지 말자. 상대방도 나한테 주길 바랄 바에는 처음부터 주지말자.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이 내뱉는 가벼운 말에 상처 받지 말자. 어차피 먼지같이 떠 돌다 사라질 말이다. 행복은 웃고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그냥 괴로움이 없는 상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