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해수욕장의 벤치에 앉아있다. 일 년 중 최성수기라고 일컫는 지금 바다에 노는 사람이 50명이 채 안 되는 걸 보면 시골의 작은 해변임이 틀림없다. '물 반 사람반'은 어느 바다 이야기인지? 작은 데다가 놀 수 있는 영역에 노란 부표를 둘러 해수욕장은 한가하다. 드문드문 사람이 있는 바다는 마치 축복인 듯, 여러 겹으로 퍼지는 동심원이 예쁘다.
사람이 바닷물에 들어가는 과정은 험난한다. 일단 온갖 짐을 챙긴다. 빠진 것이 없는지 여러 번 확인한다. 주차를 하고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는다.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튜브에 바람을 넣는다. 소지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챙긴다. 간단하게 이 정도만 해도 이미 온몸은 땀범벅이다. 물놀이고 뭐고 이미 불쾌지수는 최고라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짜증이 폭발할 듯하다.
그러나 발 끝에 물이 닿는 순간 그 시원함은 상쾌함을 넘어 놀람이다. 지금껏 흘린 땀과 참아온 불쾌가 한순간에 날아간다. 바닷물에 피부를 점점 담글수록 입가는 미소가 번지고 표정은 편안해진다. 덥기는커녕 살짝 한기가 들고 끈적이던 바람마저 보송보송하다. 옆 사람도 좋아 보이고 슬그머니 장난기도 발동한다.
그래도 더울 땐 에어컨 틀어놓고 집에서 수박 먹고 영화나 보는 게 피서라고? 집 나가면 다 고생이라고? 바다에 온 사람은 진짜 고생만 했을까. 점점 더 더워지는 여름에 정말 집에서 나오지 않는 게 바람직한 피서법일까.
아스팔트 위에 달걀이 익을 정도의 열기를 보면 밖으로 나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에만 있는 게 살짝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도 나가서 육수를 쏟는 거보다 낫다. 더위라는 적과 굳이 싸울 필요 있나?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옳으니 이름도 '피서'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당당하게 바다를 즐기는 사람을 진정한 승자라고 말하고 싶다. 바다를 즐기는 사람은 더위를 회피하지 않을 만큼 정의롭고, 불쾌와 짜증도 기꺼이 감당할 만큼 책임감 있다. 더울수록 바다를 즐기는 긍정적인 사람이고 피부가 익어도 괴로움이 없는 행복한 사람이다.
튜브를 타고 파도에 몸을 맞긴 사람을 보라. 게임에 몰입하는 표정과는 다르다. 해변에서 모래찜질을 하거나 햇볕에 피부를 태우는 사람을 보라. 집에서 영화를 보다 잠드는 표정과는 다르다. 보트나 카약을 타거나 힘차게 수영을 하는 사람을 보라.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표정과는 다르다. 바다에서 아이와 공놀이를 하는 아빠, 아이와 마주 보며 모래성을 쌓는 엄마, 게나 조개를 찾는 어린이의 표정은 집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초록빛 생동감이 살아있다.
그래도 사람한테 치일까 봐 바다가 두렵다면 내가 지금 있는 한적한 해수욕장에 도전해 보라. 사람이 적으니 바가지요금도 없고 쓰레기도 덜하다. 아무 데나 앉거나 주차해도 돈 받으러 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물이 비교적 깨끗하다. 숙소도 저렴하고 구하기 쉽다.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관광객을 구경하러 오니 슬그머니 말을 걸어 맛집을 물어도 좋다
그럼에도 바다를 코앞에 두고 몸을 담글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나처럼 바다를 쳐다보며 바람만 쐐도 좋다. 더위의 승자들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행복해 지기 때문이다. 화면에서는 맡을 수 없는 짭짤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사진을 찍어도 실물보다 더 예쁘게 나오는 재미가 있다.
이제 슬그머니 마음이 움직이는가?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당장 들어가고 싶다. 그러나 아직 물이 무섭다. 일단 양산을 쓰고 발만 담가 봐야지. 그러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선에 살짝 앉아 엉덩이를 적셔야지. 발끝으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다가 손으로 물도 만져봐야지. 시원함이 온몸으로 퍼지면 양산을 접어 던지고 본격적으로 들어가야지. 넘실거리는 물살에 몸을 움직이면 내 주변도 축복의 바다동심원이 그려지겠지? 마지막으로 나는 승자의 미소를 짓고 더위는 굴복하겠지?
아직 더위가 겁나는 그대여. 당당히 맞서 보자. 일단 사람 적은 해수욕장부터 찾아보라. 하긴 사람이 많으면 어떠랴. 여름 바다는 더위에 당당히 맞설 그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