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예찬

그대, 지금 피곤한가요?

by 물지우개


점심 먹은 게 적당히 소화되었고 급한 일도 대충 마무리되어 편안한 상태.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본다면 백 퍼센트. 공부를 하거나 컴퓨터에 앉아 있다면 이 또한 뿌리치기 힘든 유혹. 춤을 추거나 사정 상 몸을 움직여야 해도 나도 모르게 힘이 빠져 어딘가에 몸무게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 봄과 가을처럼 좋은 시절은 물론이고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이라서 좋은.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 슬그머니 감기는 눈꺼풀. 짧게는 5분이고 길게는 한 시간 동안 정신을 쏙 빼앗아가는.

이불 깔고 아예 드러누우면 재미없고 책상에 엎드리거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목에 힘을 빼야 제 맛. 옆에 눈치 보이는 사람이 없다면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발목을 크로스 하면 금상첨화. 손수건이 있거나 읽던 책이 가볍다면 민망한 얼굴을 덮어도 좋은. 벗은 겉옷을 어깨에 걸치거나 가슴을 덮어도 도움이 된다. 음악을 듣고 있었다면 끄지 않는 것이 더 낫다. 티브이나 라디오도 마찬가지. ‘나는 지금 잠을 자려고 해요!’라는 광고 없이 조용히 일을 끝내고 싶은 속마음.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하다가 찔끔 눈물을 훔치고 그 횟수가 잦아지면 볼을 타고 흐르기도. 평소 비염이 있다면 콧물이 줄줄 흘러 휴지도 찾으니 누군가 이를 본다면 ‘감기가 심하구나’라고 측은한 시선을 받기도. 아무리 닦아도 멈추기는커녕 더 자주, 더 진한 하품이 찾아와 어느새 휴지는 쌓여가기 시작. 콧물 훌쩍이는 소리가 민망해질 무렵 눈을 감았다 뜨는 속도가 급격히 더디게 되는. 어느새 감은 눈이 중력의 힘을 거스르고 싶지 않으니 그냥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외칠 즈음.

빠져든다. 내가 눈을 감는지, 잠이 드는지도 모르게. 잠드는 순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멈춘다. 숨소리와 심장박동은 한결 편안해진다. 쏟아내던 하품, 눈물, 콧물도 멈춘다.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만지면 엄마가 곁에 있어 안전한 듯 더 깊숙하게. 흐르는 음악이나 바삐 돌아가는 화면도 멈춘 듯 간간히 움직여주니 이 역시 고맙다. 토닥토닥 가슴팍을 두드려 주시는 할머니 손바닥 같으니.

꿈을 꿀 여유도 없이, 꿔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바쁘다. 잠의 나라 올가미는 워낙 빠르고 강력해서 갇히는 순간 바로 백기다. 이미 이성을 놓은 지 오래. 몸을 당기는 올가미에 맥없이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올가미는 무섭지 않고 올가미에 저항하지 않는다. 나를 당기면 당기는 대로 몸을 맡긴다. 신나게 달리다가 예상치 못한 과속방지턱에 차가 덜컹 거리 듯 질주하던 몸도 덜컹! 움찔할 수 있다. 그 정도가 심하면 눈을 번쩍 뜨기도 하고 헉! 하는 소리가 실제로 터지기도 한다. 물론 주변의 시선은 감수해야 한다.

잠이 깊어지면 다문 입이 조금씩 벌어져 침이 흐르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눈꺼풀이 조금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사람들은 어차피 다 비슷하고, 당신에게 그다지 관심도 없다. 그런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다면 오히려 당신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준 사람이라 판단해도 좋다.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면 고개가 점점 옆으로 떨어져 허공에 꼬꾸라질 수 있다. 뻐근한 목쯤이야 손으로 한번 쓱 만지거나 다시 자리를 잡으면 이내 잠들 수 있으니 이도 문제가 아니다.

잠이 깨는 것도 한순간. 누가 깨우지 않아도 심봉사처럼 눈이 번쩍 떠진다. 예상치 못한 소음에 깨기도 하고 가끔은 타인이 깨우기도 한다. 그러나 깰지 잠들지는 순전히 당신이 결정하는데 잠의 올가미가 당기는지 당기지 않는지는 눈을 한번 더 감아보면 알 수 있다. 잠이 깼다면 너무나 말짱한 정신이라 잠들기 전에 비해 더없이 상쾌한데 두 팔과 양다리를 쭉 뻗을 수 있다면 그 쾌적함은 배가 된다.

어느새 소화는 완벽해져 되려 살짝 허기지니 집중력은 올라간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은 형광펜으로 중요한 부분을 찾아 칠할 수 있다. 컴퓨터로 일하던 직원은 화면 속 활자에 몰입하여 자판을 두드릴 수 있다. 음악을 듣거나 티브이를 보던 사람은 매체를 끄고 창조적인 일을 탐색할 수 있다. 몸을 움직이던 사람은 다시 몸에 열을 내기 시작하고, 운전을 멈췄던 사람은 기분 좋게 핸들을 잡을 수 있다. 아기와 같이 잠들었던 엄마는 기분 좋은 육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낮잠을 잤고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도 낮잠을 잤다. 세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낮잠을 즐겼으며 어느 나라에서는 ‘시에스타’라는 낮잠 시간을 정해 가게 문도 닫았다. 오늘도 낮잠을 즐기지 못하고 바쁘게 살고 있고 있는 그대여. 잠시 잠든다고 큰일 나지 않으니. 낮잠이 그대를 부르면 더 생각하지 말고 기쁘게 달려가라. 민망한 시선이나 부족한 어른의 잔소리도 순간이고 애정이니 그 또한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낮잠은 에너지가 부족한 그대에게 그득한 에너지니, 오늘 잠이 부족한 그대에게 낮잠을 선물하고 싶다.

이 글을 쓰다가 나도 모르게 낮잠이 들었나 보다. 어디서 들리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잠을 깨운다.


“야, 저기 봐봐. 우리 선생님 지금 자고 있어.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