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적이 있었다. 신혼 때였다. 시가인 진주에서 추석을 보내고 친정인 창원으로 오는 길이었다. 남해고속도로는 전통적으로 교통체증이 심한 곳인데 추석 당일 오후에 출발한 덕분에 출발부터 고속도로는 주차장이었다. 빠르면 40분, 느긋하게 가도 한 시간이면 도착할 곳을 세 시간이 지나도 함안이라 우리는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듯한 시한폭탄이 되어 있었다. 그땐 지금처럼 네비가 흔하지 않을 때라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로 돌아간다 해도 순전히 길 감각이나 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친정에서 먹겠다는 계획은 찌그러진 지 오래. 밤이 되어도 우리는 길 위에 있었고 이 상황까지 오게 된 오만가지 원인을 서로에게 겨누는 지경까지 되었다.
“이러니까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고 했잖아!” “내가 빨리 가자고 말한 적 없거든.” “네가 빨리 가자고 눈치 줬잖아.” “무슨 소리야?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한 게 누군데? 그건 그렇고 일하느라 힘든 건 나지. 자기가 도대체 한 게 뭐가 있다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냐?” “그러는 너는 무슨 일을 많이 했다고? 엄마가 다하시더구먼.” “ 뭐라고? 형님은 진짜 제사만 지내고 친정 가셨지만 나는 점심까지 차리고 치웠거든. 그리고 음식이 어디 장보고 요리만 하면 단 줄 아나? 하긴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먹고 자고 누워서 티브이만 보는 자기가 뭘 알겠어?” “그렇게 불평할 거면 뭐하러 가냐? 그냥 안 가면 되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니? 그럼 자기는 지금 창원에 왜 가는데?” “그래. 말 잘했다. 창원 가지 말고 그냥 우리 집으로 가자.” “뭐라고? 말 다했어? ” “거봐, 내 말대로 그 길로 갔어야 하는데 네 말 듣다가 잘 못 들어왔잖아. 더 막힌다.” “운전대 내가 잡았니? 자기가 잡고 있잖아.” “이러다가 오늘 밤 안에 집에 갈 수 있기는 있겠나?” “야!!!!!!!!!!”
그 조그만 경차 속에서 나는 유리가 깨질 듯한 소리를 결국 지르고 말았다. 내 고함소리에 놀란 남편은 어이없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다음부터는 말없이 서로 째려보는 눈빛에서 마음을 읽었다. ‘아,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디서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저렇게 미치면 앞으로 못 살 것 같은데.’ ‘저 남자 막말 퍼레이드, 이혼사유 아닌가?’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교통체증. 짧은 시간 안에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 상승시켜 내재된 분노까지 끄집어내는 그런 놈(?)이다. 옆 사람과 싸움을 부추기고, 평소 안 하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유발하는 그런 놈. 교통체증에 잘못 대처하면 내 안의 그놈을 결국 만나고 만다.
그렇다면 교통체증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시간대를 최대한 피한다는 상투적인 대처법이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현실감 제로의 대처법 말고 창의적이면서 현실적인 대처법을 생각해 보자.
첫째, 착한 아이, 착한 엄마,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다. 교통 체증으로 서서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절대로 참지 말고 나쁜 말이나 행동을 과감히 표출한다. 어차피 밀폐된 차 안이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 과감한 분노 표출이 문제의 강박관념을 조금이라도 깰 수 있다.
둘째, 타인에게 정확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의외로 무서운 사람이다’는 사실로 경고를 줄 수 있다. 단, 타인이 배우자나 자녀라면 조심해야 하는데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 가족은 피하고, 자신에게 공격적이거나 부당했던 직장동료나 친구가 적절하다.
셋째, 평소 스트레스가 많지만 분출할 데가 없을 때 효과적이다. 평소 불만 많던 사람을 내 앞의 차주라 생각하고 막말을 실컷 지껄이다 보면 어느새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과 달리 돈이 전혀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각의 비난도 ‘차가 막혀서 늦었다’는 한마디로 민망한 상황을 깨끗하게 모면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넷째, 자기 단련의 기회로 삼는다. 일부러 교통 체증 속으로 차를 몰고 가서 내 마음속에 분노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확인한다. 이 때는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분노를 최대한 참아야 하는데 서서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수치화하면 큰 도움이 된다. 차가 막혀도 아무렇지 않은 0에서부터 출발해서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고 막말이 봇물 터지며 핸들을 세게 내려칠 때를 100으로 하여 걸리는 시간을 재어 본다. 자기 단련이 덜 되었다면 그 시간이 짧을 것이고 단련될수록 그 시간이 길어지니 자꾸 하다 보면 언젠가는 100에 도달하지 않게 된다. 이쯤 되면 인격 수양이 된 경지라 할 수 있으니, 그 어떤 스트레스에도 무던하게 넘어갈 수 있다.
다섯째, 자랑할만한 기록을 가질 수 있다. 일부러 교통 체증이 심할 때 그곳을 여러 번 지나가서 가장 오래 걸린 시간을 기록으로 보유한다. ‘평소 몇 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나는 *시간이나 걸려 도착해봤어!’라는 말은 타인을 놀라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곳이 차가 막힐 때는 *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지만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지금은 매우 다행이다.’라고 말한다면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덤으로 전달할 수 있다.
위의 방법은 모두 교통 체증으로 인한 분노를 건설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더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교통 체증이 내 앞에 닥쳐도 이는 괴로움이 아니라 도움이 되도록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대, 마음의 준비되었는가? 교통 체증으로 초조해지더라도 다 괜찮다. 어쨌든 차도 있고, 갈 데도 있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행복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