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눈빛은?

눈빛의 색깔

by 물지우개


나는 카페에 앉아 밖을 보며 커피를 마신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고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 그러다 문득 지나가는 연인-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야 말았다. 폭염이라 누가 가까이만 와도 짜증이 날법한데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연인의 눈빛은 생크림처럼 부드럽고 카스텔라처럼 푹신푹신한, 당장 맛보고 싶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도발적이었다.


내 옆에서 책을 보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자기야, 나 좀 봐봐.”

“왜?”

“눈빛 좀 확인하게.”

“뭐?!”

“연애 중인 여자 친구라고 생각하고 한번 쳐다봐줄래?”

“......”


생각해보니 이렇게 집중해서 남편의 눈빛을 본지가 언제인지. 남편 목소리 만으로 기분이나 건강상태, 심지어 말하지 않은 상황마저 알아채는 지경이라 굳이 눈빛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확인해 본 남편의 눈빛은 아니나 다를까 방금 본 그 남자의 눈빛과 완벽하게 달랐다. 말하기 마음 아프지만 눈빛의 퀄리티가 비교불가였다. 순간 확인한 남편의 눈빛은,


1단계: 내가 너를 왜 쳐다봐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2 단계: 쳐다보라 하니 하기는 하는데 살짝 귀찮다.

3 단계: 그래도 쳐다보니 늘 보는 얼굴, 오늘도 똑같다.

4단계: 이왕 본거 네가 원하는 눈빛을 보내려고 일단 노력해 본다.

5단계: 그러나 너는 여자 친구가 아니라 마누라다.

6단계: 마누라는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볼 수 없다.

7단계: 그럼에도 그윽하게 보려는 내가 안됐다.

8단계: 진지하지 않으면 혼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노력한다.

9단계: 자세히 보니 화장 안 한 마누라 얼굴이 웃기게 생겼다.

10단계: 참으려 했는데 빵 터진다. 실패다.


내가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은 ‘여린 가지’라는 시에서


가장 여린 가지가 가장 푸르다

둥치가 굵어지면 나무껍질은 딱딱해진다

몸집이 커질수록 움직임은 둔해지고

줄기는 나날이 경직되어가는데

허공을 향해 제 스스로 뻗을 곳을 찾아야 하는

줄기 맨 끝 가지들은 한겨울에도 푸르다

라고 했다. 같이 산지 15년이 다 되어가는 딱딱한 나무 둥치가 여린 가지처럼 푸를 수 있으랴. 빵 터진 남편은 아무 죄가 없다. 젊음과 늙음의 기준은 항상 내 나이였다. 나보다 어리면 젊은 사람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늙은 사람이다. 초임 시절의 나를 보며 선배교사들은,


“화장 안 해도, 아무 거나 입어도 예쁜 나이. 젊음 그 자체가 무기다. ”


라고 하셨는데 요즘 내가 그 말을 실감한다. 나보다 젊은 사람을 보면 외모, 말투, 눈빛, 행동마저도 예뻐 보이고, 나도 그 풋풋한 기운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냥 나와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 꽁냥꽁냥 장난치는 학생,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연인, 손을 잡고 걷는 임신 중인 부부의 젊은 사랑은 특히 예쁘다.


일흔인 부모님이 마흔인 나를 귀엽게 보듯 젊음은 분명 ‘초록’이다. 그러나 젊음을 푸르게 볼 수 있는 권리는 지나온 자의 여유다. 그 여유는 ‘색상환’에서 연두, 초록, 하늘, 파랑을 지나 보라가 갖는 여유다. 조금씩 변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색이 되었지만 분명 자신도 지나온 아름다운 색깔을 보는 마음이다. 그래서 도종환 시인은 결국,


북풍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가지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엄동에도 초록이다

해마다 꽃망울은 그 가지에 잡힌다


라고 했다. 색상환의 맨 꼭대기이자 시작인 빨강이 초록의 끝에서 맺힌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모두 늙지만 그 모습은 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젊음을 아름답게 회상할 줄 알고 결국 가장 아름다운 꽃을 품은 꽃망울이 된다는 뜻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심지어 시인은,


모든 나무들이 자정에서 새벽까지 견디느라

눈비 품은 잿빛 하늘처럼

점점 어두운 얼굴로 변해가도


라고 그 과정을 처절하게 표현했다. 색이 변하는 과정, 젊음이 점점 늙어가는 세월은 굽이쳐도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워 잘 알아채지 못한다. 분명 우리도 노랑과 연두, 그리고 초록을 지나 파랑쯤으로 자연스럽게 지나왔기에 남편의 10단계의 눈빛도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당신의 눈빛은 어떤 색인가? 당신보다 젊은 사랑이 어떻게 보이는가? 자신이 늙었다 생각하더라도 아주 가끔은 젊은 사람의 눈빛을 흉내 내보는 건 어떨지? 젊음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 나름의 아름다운 눈빛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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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 가지


도종환


가장 여린 가지가 가장 푸르다

둥치가 굵어지면 나무껍질은 딱딱해진다

몸집이 커질수록 움직임은 둔해지고

줄기는 나날이 경직되어가는데

허공을 향해 제 스스로 뻗을 곳을 찾아야 하는

줄기 맨 끝 가지들은 한겨울에도 푸르다

모든 나무들이 자정에서 새벽까지 견디느라

눈비 품은 잿빛 하늘처럼

점점 어두운 얼굴로 변해가도

북풍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가지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엄동에도 초록이다

해마다 꽃망울은 그 가지에 잡힌다


시집 [부드러운 직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