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외에도 더 많은 질문이 떠올라도 그중 많이 받은 질문 세가지만 써 보았다. 이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 감사하지만 나는 질문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명쾌한 답을 하지 못했다. 수학 문제의 정확한 풀이처럼 딱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15년간 일했으면 일반화할 수 있는 답이 생각날 법도 한데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명쾌한 답을 못하는지, 일반화할 수 있는 답을 왜 말하지 못했는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결론이 변명이라면 내 탓이니 반성하면 되고, 항변이라면 구조 탓이니 더 나은 의견을 내세우면 되리라. 사실 두 가지 결론 다 살짝 무섭기도 하지만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니 용기 내 보겠다. (참고로 나는 부산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만 근무했다. 다른 시도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부산광역시 교육청은 아래로 소속 교육청을 둔다. 이는 서부, 남부, 북부, 동래, 해운대 5개다. 소속 교육청은 그 지역의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의 업무를 지원한다. 초등교사는 소속 교육청 안에서만 우선 이동한다. 교사는 개인 사정에 따라 소속 교육청을 바꿀 수 있는데 이 또한 기준에 적합할 때 인원을 선별한다. 따라서 첫 발령이 원하는 소속 교육청에 나면 그 이후 다소 불편한(?) 청간 이동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 참고로 동래교육청과 해운대교육청이 선호하는 곳인데 감 잡았듯이 선호지역에서 비선호지역의 청간 이동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반대는 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나는 6년 차 때 해운대교육청에서 북부교육청으로 기다림 없이 청간 이동했다. 대도시의 인구집중현상처럼 교사도 마찬가지인데 나도 청간 신청을 할 때 주변의 만류가 많았다. ‘들어오기 힘든 곳인데 굳이 나가려고?’ 하는 애정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거기는 어려운 동네가 많아서 애들이나 학부모가 힘들 텐데.’라는 기우는 불편했다.
‘같은 급지라도 해운대랑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니까.’
‘자기 애도 해운대에서 키우는 게 낫지.’
얼른 가라고 내 등 떠미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이 뜯어말림이 좋지 않았다. ‘힘들다’는 기준과 동네의 수준 차이라는 기준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사가 드러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는 소도시에서 자랐고, 우리 부모님은 깡촌에서 자랐는데 선생님들의 해운대 예찬 근원이 무엇인지?
다시 돌아가서 좀 전에 잠시 언급했지만 학교마다 ‘급지’라는 것이 있다. 가부터 라까지 급지를 매기는데 급지의 기준은 교통과 인구다. 더 쉽게 말하면 교통이 좋은 아파트촌 안에 있는 큰 학교는 ‘가’ 급지가 되고 그 반대는 ‘라’ 급지가 된다. ‘가’와 ‘나’ 급지는 4년간 근무하고 ‘다’는 3년, ‘라’는 2년 동안 일한다. 만기가 되면 정기전보대상이 되어 이동한다. 만기를 채우지 않고 소속 교육청 안에서 이동하는 경우는 없다. 청간 이동이나 타 시도 이동은 만기 전에도 가능한데 흔하지 않다.
이동할 때는 자신의 이동 점수를 계산하게 되는데 이 점수가 이동의 기준이 된다. 예상했겠지만 ‘가’ 급지에서 근무했을 때 기본적으로 받는 이동 점수가 가장 낮다. 이 말은 곧 많은 교사가 선호하는 학교에서 4년간 일했으니 다음번에는 원하는 학교에 쉽게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라’ 급지에서 2년간 희생(?)했다면 기본점수가 월등히 높아져 다음번에는 원하는 학교에 가기 쉽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기본 점수가 다가 아니다. 다자녀, 노부모 봉양,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가족 부가점을 받기도 하고, 표창, 유공교원 등 개인적인 노력의 포상도 부가점이 된다. 거기다가 전담교사, 6학년 담임, 무료 방과 후 그 밖의 고강도 업무를 맡은 경우도 부가점을 받는다. 그리고 근무한 동안 근무평정점수도 받는데 이는 학교 관리자가 점수를 비공개로 부여한다. 기본점수에 이 모든 부가점을 합한 점수가 최종적인 이동 점수가 되고 1부터 10 지망까지 가고 싶은 학교를 제출하여 결과를 기다린다.
그런데 변수가 있다. 부부나 가족은 같은 학교에 근무할 수 없다. 징계를 받은 교사도 점수와 무관하게 이동해야 하고, 어떤 학교에서는 ‘초빙’이라는 또 다른 기준을 세워 원하는 교사를 미리 선점(?)한다. 영어전담교사나 남자 교사도 고루 배치해야 한다. 이러니 나의 최종 이동 점수 만으로는 도저히 다음 학교 발령을 예상할 수가 없다. 발령이 나도 내가 왜 이 학교에 발령 났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서 교사의 이동 점수는 커트라인이 없다. 아니 내 근무평정점수를 모르기 때문에 내 최종 이동 점수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다음 발령학교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나는 그동안 1~3 지망의 학교에 발령 난 적이 없는데 어떤 교사는 10 지망에 발령 난 사람도 있고 10 지망도 아닌 학교에 발령 난 사람도 있다.
어차피 내 뜻과 상관없는 발령이라면 이동 점수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학교 안에서 동료끼리는 왜 경쟁해야 하는지? 기피 학년이나 기피 업무를 맡는 희생, 이런 노력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니, 근무하는 학교는 교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영원한 직장도 아니고 길어야 4년 아닌가. 설령 원하는 학교에 간다 한들 내가 원하는 고객님만 딱 찍을 수도 없는데? 출퇴근이 좀 짧고 길어질 뿐. 이 또한 소속 교육청 안에서 움직이니 한 시간 안에 가능하지 않은가. 예상할 수 없는 결과에 나를 포함한 교사들은 왜 철(?)이 오면 새 학교를 향한 열병을 앓는지.
하긴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은가. 결론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냥 오늘을 사는 것.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주어진 환경도 감사하는 것. 경쟁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것. 이왕이면 선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아, 그러고 보니 학교를 이동하는 모습이 참으로 합리적이고 인간적이다. 여느 선생님들처럼 만족이든 불만족이든 발령장을 드는 순간 다 잊고 다소곳이 새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것.
1번 문제에 정확히 답할 수 없어 새삼 감사하네요. 저는 칼같이 정확한 이동 점수도 보고 싶지 않고, 냉철한 커트라인을 원망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이제야 고백하자면, 불평하려고 글을 시작했어요. 생각해보니 답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