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당신의 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춥다물 Oct 26. 2023

장과 캐롤라인의 집

엄마가 가장 작은 방을 고를 가능성

Paris, France 2011

 장은 프랑스의 사회, 문화를 주로 다루는 잡지사의 편집장이다. 파리에서 동향의 아름다운 캐롤라인과 만나 사랑에 빠져 그와 꼭 닮은 두 딸을 낳아 그들 중 한 명이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거나, 부부의 고향에 가까운 보르도로 새 삶을 꾸리려 떠나기 전까지 에펠탑이 창밖으로 보이는 이 파리 한복판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캐롤라인은 파리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레아와 마틸드가 점점 커가면서, 그들 중 한 사람의 월급으로 4명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우며 전업 주부가 되었다. 그렇다. 장과 캐롤라인은 내 삼각김밥 중독자 친구, 레아의 부모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나중에 내 집을 지으면 거실에 문을 달고 주방을 너무 크게 만들지 않겠다 다짐했던 집의 주인이기도 하다.

 

 건축을 전공하는 딸의 친구가 한국에서 배낭여행을 왔을 때 흔쾌히 집을 내어 준 장과 캐롤라인은, 'I love kimchi’ 를 시작으로 한국에 대해서 아는 몇 가지를 말하고, 집안을 구석구석 소개해주고, 뭐가 필요한 것이 없는지 오분마다 확인하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앙상떼(반가워), 춥다물. 파리에 온 것을 환영해."

 간결하고 따뜻하게 불어로 인사를 하고 비쥬(뺨에 가볍게 키스하는 프랑스식 인사)를 길게 하고, 외워둔 내 이름을 정확하게 얘기할 뿐 더 이상의 과도한 친절은 없었다. 음식을 내어주지도, 필요한 게 없냐고 먼저 물어봐주지도, 억지 미소를 짓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집에 없었다. 원래 집에 잘 안 계신다고 했다.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 모든 사실들이 내 마음을 너무도 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최고의 환대란 짧은 인사와 방관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내가 혹시 세탁기를 사용해도 되는지, 빨래를 어디다 널지, 마시던 음료수를 냉장고에 어디다 넣을 수 있을지와 같은 집 사용법에 대해서 물어볼 때면 캐롤라인은 웃으며 세탁기나 냉장고 앞으로 나를 데려다줬다. 그러면 항상 나는 충격에 빠지는 것이다. 세탁기가, 냉장고가 너무나도... 조그마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4인가구가 사는 한국의 가정이라고 하면 양개문 냉장고, 드럼 세탁기는 기본이고 김치냉장고, 정수기, 스타일러가 추가적으로 구매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계들은 신제품에 의해 고장 나기 전에 교체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집에는 내 자취방의 냉장고와 같은 사이즈의 냉장고가 있고 세탁기는 심지어 내 것보다도 작았다. 전자레인지도 없었다.

 레아에게 심각하게 이 사태에 대해서 물었다.

    "왜 내가 너네 집보다 큰 세탁기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음. 글쎄... 우리는 필요 없고, 넌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이 아닌 것 같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아."

나는 내 물음에 스스로 답하고 조금 더 깊게 들어갔다. 처음 이 집에 온 날 레아가 집을 구경시켜 줬을 때부터 마음속에서 뭔지 모를 불편함을 심어준 그것, 바로 ‘사이즈'! 그것에 대해 이제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넌 싱글 침대를 쓰고 네 동생은 퀸 침대를 쓰는 거야? 그리고 제일 궁금했던 건 왜 네 부모님이 이 집에서 제일 작은 방을 쓰는 거지?"

 레아가 '그게 왜?'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묻는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는 질문은 보통 쓸데없는 질문인데… 그래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우리 부모님, 아니 한국의 부모님이라면 가장 안쪽에 있는 큰 방을 쓰실 거야. 보통 그렇거든. 그래서 안방이라고 하기도 하고, 암튼 그리고 네가 첫째니까 더 크거나 좋은 것을 가지고. 그리고 더 크고... 그러니까 더 크고. 씨발 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머릿속에서는 확실했던 사실이 입 밖으로 소똥 같은 모양으로 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실의에 빠졌다. 내 헛소리에 레아가 친절히 답했다.   

    "나는 큰 방과 큰 침대가 필요 없어. 난 작은 침대가 좋거든. 반면에 마틸드는 큰 침대가 좋대. 사실

아빠는 마틸드가 쓰는 제일 큰 방을 쓰고 싶어 하셨는데, 엄마가 잠자기엔 작은 방이 좋다고 저길 쓰고 싶다고 했어. 화장실이랑도 가깝고."

 우선권이 주어졌을 때 더 큰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나는 뒤통수가 얼얼했다. 그러면서도 왜 그토록 장과 캐롤라인이 화려하지 않은데 멋이 있는지, 그래서 레아와 마틸드도 항상 꼿꼿한 자세로 여유로운지 이해하면서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도 표시되어 있음

 이 멋진 부부의 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작은 주방이었다. 주방이 모양은 L자형, ㄷ자형 긴 I 자형 그 계획이 다양할 수 있지만 행동반경이 2.5M를 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요리하는 사람이 사용하기 좋은, 주방 설계의 원칙이다. 이 집의 주방은 ㄷ자형으로 1.5M 반경 내에서 모든 것이 해결 됐다. 필요한 식재료만 사서 신선할 때 남김없이 먹는 것이 이 냉장고의 운영방식이라는 것을 캐롤라인으로부터 들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삶의 희열 같은 것이 남이 말해주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가는 것에 있고 그것이 아주 멋있는 일임을 목격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레아와 함께 센 강변으로 술을 마시러 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엠마의 집 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