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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Oct 26. 2023

장과 캐롤라인의 집

엄마가 가장 작은 방을 고를 가능성

Paris, France 2011

 

 건축을 전공하는 딸의 친구가 한국에서 배낭여행을 왔을 때 흔쾌히 집을 내어 준 장과 캐롤라인은, 'I love kimchi’를 시작으로 한국에 대해서 아는 몇 가지를 말하고, 집안을 구석구석 소개해주고, 뭐가 필요한 것이 없는지 오분마다 확인하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앙상떼(반가워), 춥다물. 파리에 온 것을 환영해."

 외워둔 내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고 간결하고 따뜻하게 불어로 인사를 하고 비쥬(뺨에 가볍게 키스하는 프랑스식 인사)를 길게 할 뿐 더 이상의 요청하지 않은 친절은 없었다. 음식을 내어주지도, 필요한 게 없냐고 먼저 물어봐주지도, 억지 미소를 짓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집에 없었다. 원래 집에 잘 없다고 했다.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 모든 사실들이 내 마음을 너무도 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최고의 환대란 짧은 인사와 무관심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내가 혹시 세탁기를 사용해도 되는지, 손빨래한 속옷을 어디다 널지, 마시던 음료수를 냉장고에 어디다 넣을 수 있을지와 같은 집 사용법에 대해서 물어볼 때면 캐롤라인은 웃으며 세탁기나 냉장고 앞으로 나를 데려다줬다. 그러면 항상 나는 충격에 빠지는 것이다. 세탁기가, 냉장고가 너무나도... 조그마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4인 가구가 사는 한국의 가정이라고 하면 양개문 냉장고, 드럼 세탁기는 기본이고 김치냉장고, 정수기, 스타일러가 추가적으로 구매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계들은 신제품에 의해 고장 나기 훨씬 전에 교체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집에는 서울의 내가 혼자 사는 원룸의 자취방에 있는 사이즈의 냉장고가 있고 세탁기는 심지어 내 것보다도 작았다. 전자레인지도 없었다. 우리 엄마는 전자레인지를 싫어한다고 레아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일까? 처음 들어보는 주어와 목적어와 동사의 조합을 곱씹었다. 눈알을 굴리며 레아에게 심각하게 이 사태에 대해서 물었다.


    "왜 내가 너네 집보다 큰 세탁기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음. 글쎄... 우리는 필요 없고, 넌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이 아닌 것 같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아."


나는 내 물음에 스스로 답하고 조금 더 깊게 들어갔다. 처음 이 집에 온 날 레아가 집을 구경시켜 줬을 때부터 마음속에서 뭔지 모를 불편함을 심어준 그것, 그것에 대해 이제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넌 싱글 침대를 쓰고 네 동생은 퀸 침대를 쓰는 거야? 그리고 제일 궁금했던 건 왜 네 부모님이 이 집에서 제일 작은 방을 쓰는 거지?"


 레아가 '그게 왜?'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묻는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는 질문은 보통 쓸데없는 질문인데… 그래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우리 부모님, 아니 한국의 부모님이라면 가장 안쪽에 있는 큰 방을 쓰실 거야. 보통 그렇거든. 그래서 안방이라고 하기도 하고, 암튼 그리고 네가 첫째니까 더 크거나 좋은 것을 가지고. 그리고 더 크고... 그러니까 더 크고. 씨발 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머릿속에서는 확실했던 사실이 입 밖으로 소똥 같은 모양으로 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실의에 빠졌다. 내 헛소리에 레아가 친절히 답했다.   


    "나는 큰 방과 큰 침대가 필요 없어. 난 작은 침대가 좋거든. 반면에 마틸드는 큰 침대가 좋대. 사실

아빠는 마틸드가 쓰는 제일 큰 방을 쓰고 싶어 하셨는데, 엄마가 잠자기엔 작은 방이 좋다고 저길 쓰고 싶다고 했어. 화장실이랑도 가깝고."


 우선권이 주어졌을 때 가장 큰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내 눈알은 2배속으로 굴렀다. 동시에 왜 그토록 장과 캐롤라인이 화려하지 않은데 멋져 보이는지, 그래서 레아와 마틸드도 항상 꼿꼿한 자세로 여유로운지 마침내 이해가 됐다. 친구의 가족을 만나는 일은 이렇게 맞지 않는 퍼즐이 맞춰지는 진귀한 경험이기도 하다. 레아 쟤가 왜 이렇게 어린데 어이없게 멋이 있는지, 그 멋이 단기간에 내가 따라 걸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퍼즐을 다 풀리자 이 집의 평면이 머릿속에 천천히 그려졌다. 나중에 기억 속에 그려진 도면을 한국에 돌아와서 그렸다. 어떤 부분은 과장되어 크게 그려 지고, 어떤 공간은 작게 그려져 있는 것이 재밌어서, 내가 지내봤던 사람들의 집 중 기억에 남는 집을 도면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도 표시되어 있음

  이 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바로 내가 본 4인 가정의 주방 중 가장 작았던, 주방이었다. 주방의 모양은 L자형, ㄷ자형, ㅣ자형으로 필요나 계획에 의해서 다양해질 수 있다. 그러나 행동반경이 2.5m를 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요리하는 사람이 사용하기 좋은, 주방 설계의 원칙이다. 이 집의 주방은 ㄷ자형으로 1.5m 반경 내에서 모든 것이 해결 됐다. (1.5m 이상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조리가 복잡하지 않은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먹을 만큼만 사서 신선할 때 남김 없이 먹는 것이 이 냉장고의 운영방식이라는 것을 캐롤라인으로부터 들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삶의 희열 같은 것이 남들이 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에 있고, 그것이 아주 멋있고 의미 있는 일임을 목격했다. 동시에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정확히 알았다. 새로운 세상의 충격과 내가 방금 발견한 인생의 희열에 뒤통수가 얼얼한 상태로 레아와 함께 와인을 가방에 찔러 넣고 센 강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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