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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Oct 18. 2023

코넬의 집

당신의 집

Warsaw, Poland 2011

예술의 사랑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코넬의 집은 바르샤바, 폴란드의 아파트에 위치해 있었다. 코넬의 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공간은 바로 벽 한쪽이 전부 책인, 내가 잠을 잤던 거실이다. 거기엔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하얀 벽에 듬성듬성 놓여있는 오래 살아온 듯한 식물들만 길게 팔을 뻗고 자라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바르샤바에 처음 도착했던 날, 일을 마치는 코넬을 기다리며 반나절을 걷고 또 걷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내 앞에, 바르샤바 시내에 큰 기타 동상 앞에서 보자고 한 코넬은 천천히 종이 인형처럼 걸어와 섰다.

    "안녕"

    "안녕"

20여분을 걸어서 도착한 코넬의 집은 아주 작은 승강기가 있는 현대식 아파트였다. 혼자 살며 방 두 개에 거실 하나, 욕실, 부엌이 하나씩 있었고 이것에 대해 코넬은 웃음기 없는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꺼야. 난 돈이 없지만 운은 있었어."

 눈을 피하지 않고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목소리가 낮아 내 귀와 눈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집주인, 그 키 크고 곱슬머리의 청년은 나를 거실 소파에 재워주었다. 나는 국경을 넘느라 27시간째 깨어있는 상태였지만 보기 드물게 더 더 얘기하고 싶은 집주인에게 더 많은 폴란드 미술 역사에 대해 들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각성 상태를 유지했다.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코넬의 안방에는 작은 옷장과 프레임도 없이 바닥에 있는 매트리스 한 장뿐이었다. 잠을 푹 자야 해서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방 하나를 그림만 그리는 방 '그림방'으로 쓰고 있었다. 나는 코넬의 그림방에 들어가 그의 그림과 그림얘기들을 하는 그의 날카로운 옆모습을 몰래 번갈아 보면서 약간 슬퍼졌었던 것 같다.


 사진 폴더를 다시 뒤져봐도 저 하얀 벽에 뻗치며 자라나는 화분 외에 이 집에 대한 사진이 없었다. 가장 좋았던 여행이나 시간에 대한 증명이다. 흔들린 사진들만 있거나, 사진이 아예 없거나. 이 집을 떠나는 날 코넬의 집에서 정말 작은 무엇인가를 하나 훔쳐 오고 내가 정말 아끼던 카디건을 일부러 버리고 왔다. 훔쳐온 게 무언 지는, 무언가를 훔쳐오고 싶도록 코넬이 좋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완전히 까먹어버렸다.


 코넬의 집은 이 공간에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을 기억하기 위해 처음으로 도면으로 남긴 집이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내가 목격했으니까 나는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며 더 좋은 공간을 디자인하고 싶어졌다. 두 달간의 유럽여행 후 한국에 돌아와서 기억에서 꺼낸 도면을 그려서 이메일로 보내줬더니 코넬은 자신의 집을 처음으로 줄자로 재어봤다며 답장에 실측 도면을 첨부했다.

 답안지를 받아본 나는 두 장의 도면을 비교하며 코넬과 가장 많은 시간을 나눴던 거실은 어쩐지 조금 커져 있고 주방은 얼마나 정확하며, 제일 적은 시간을 보낸 '그림 그리는 방'은 실제보다 작아져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어떤 이야기와 마음이 공간을 늘리고 줄였는지 궁금해 다른 공간들의 메모와 기억을 토대로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당신의 집'은, 폴란드의 돈은 없지만 운은 있는, 코넬의 집을 방문한 후 파리, 런던, 그라츠, 스웨덴, 이스탄불로 함께 나아갔다.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내가 목격했던 처음 그 집을 떠났지만 그들의 두 번째 세 번째 집들도 같이 볼 수 있게 된 것이 1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천운이 우리에게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집은 없지만 운은 있는’ 우리들이 다음엔 또 어떤 공간안에서 서로의 세계를 마주앉힐지 생각하면 들려 줄 이야기들을 모으며 재밌게 살아야된다고 다시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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