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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Aug 04. 2024

빅터의 집 1

카우치 서핑

Copenhagen, Denmark 2011


 코펜하겐 시내와 아주 가깝다고 묘사되어 있던 빅터의 집은 사실 코펜하겐의 외곽에 있었다. 부천 같은 곳일까라고 용서해 보며 기차를 타고 예상보다 조금 더 오래가서 도착한 역에서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상하, 좌우로 모두 나보다 두 배는 큰 사람이았다. 잠수복과 고글뒤에 숨어있던, 얼굴을 처음 보는 호스트는 호쾌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춥다물?”

     “응. 빅터?”

     “응, 반가워 춥다물”


 초등학생 아들, 딸 함께 살고 있다는 그의 카우치 서핑의 리뷰는 300개가 넘었다. 아직은 카우치 서핑에 다른 의미들이 남아있었던 때였다. '좋은 장소를 많이 알며’, ‘친절하며’, ‘유쾌하다’는 빅터는 너의 집에 남는 카우치에 재워 줄 수 있냐는 나의 메시지에 5명 중에 제일 빨리 답변을 보낸 호스트였다. 묻지도 않고 내 가방을 번쩍 들더니 곧이어 오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걸음을 빨리 했다. 여기서 더 간다고? 부천이 아니고 인천인가. 하긴 서울-인천 공항이라고 하니까 하며 뭔가 상쾌하지 않지만 친절이라고 나 자신을 속여본다. 이상하게 마음을 졸이며 들어선 집엔 다행히 살아있는 아이들이 두 명 있었다. 아. 내가 정말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마침내 내가 환하게 웃자, 그는 집을 구석구석 보여주고 오랜 시간 자신이 모아 온 좋은 와인과 주방기기들에 대해 장장 1시간에 걸친 주방 투어를 시켜줬다. 정갈하게 청소된 오븐과 가스레인지, 좋은 도마와 칼, 최근에 구매했다는 최신식 블렌더가 번쩍번쩍 코너에서 빛을 냈다. 자 이제 제발 내 짐을 어디다 놓을지 말해줘.

 

     “거실 소파에서 자도 되지만 아이들 방에 간이침대가 하나 더 있어. 거기서 자면 돼.”

     “아이들 방에? 아이들이 괜찮을까? 난 소파에서 자도 돼.”

 

 오빠의 뒤를 따라다니던 말간 얼굴의 작은 아이가 조용히 웃다가 다시 오빠뒤로 숨었다.

 

     “안녕, 얘들아! 걱정하지 마. 난 여기, 소파, 카우치, 여기에서 잘 거야.”


 두 아이들은 여전히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 억지로 등 떠밀려 들어간 아이들 방바닥에 깔려있는 매트리스가 문을 막고 있어서 방문을 열기가 힘들었다. 그 매트리스 위에는 아이들이 놀다가 흘린 레고 부스러기와 먹다가 잃어버린 과자 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건 꿈일까?


     “미안해, 우리 애들이 놀고 치우지 않았나 봐.”

     “괜찮아! 아이들이 논건대. 그리고 난 정말 소파에서 자도 돼.”

     “네가 나갔다 돌아오기 전에 치워놓을게. 아니면 내 방에서 같이 자도 좋고.”


 나는 그 말을 애써 무시했다. 그때는 그러면 없던 일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빅터가 재밌는 곳이 있다고 알려준 ‘플로팅 아일랜드’는 코펜하겐 시에서 운영하는 홈리스들을 위한 사회 복귀 지원 센터이다. 지붕과 벽, 화장실, 주방이 있는 거대한 창고, 물, 전기, 인터넷과 3일에 한 번씩 식재료가 배달될 뿐, 그곳에 몸을 뉘일 침대를 만들고, 작업실을 꾸미고, 음식을 해 먹고 청소를 하는 것은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세계 곳곳에서 여기까지 떠내려 온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여기는 누구나 살 수 있지만 아무나 살지는 못 해서, 들어가려면 살고 있거나 살았던 사람들의 추천이 필요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운하와 만나는 공터의 버려진 창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까 생각한 최초의 어떤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버려진 대지에 떠내려 온 사람들을 품으면 어떨까 제시한 누군가와, 그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게 지원하기로 결정한 코펜하겐 시. 그렇게 흥미로운 곳이 있어?라는 나의 반색에 빅터는, 거기에 사는 정말 멋진 친구, 조나단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짐을 두고 바로 빅터와 찾아간 그곳에서 만난 그를 만났다. 나는 조나단이라며 악수를 하는 그를, 빅터가 피아노 얘기를 하라고 부추겼다. 멕시코에서 13살에 되던 해, 미국 음악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입학한 후에 '공부하는 음악'이 재미없어져서 15살에 자퇴를 하고 지금까지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넌 어떻게 여기 오게 됐어?”

     “난 함부르크에서 오는 기차표를 샀어"


 다행히 다 같이 웃었다.


      "난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이고 2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 중이야. 오늘 코펜하겐에 도착했고 여기서 살려고 온 건 아니야. 빅터가 소개해줘서 구경 왔어."

     “빅터? 흠. 암튼 환영해. 플로팅 아일랜드에 온 아시안은 네가 처음이야.”


 빅터가 저녁에 집에서 보자고 하고 먼저 떠난 뒤, 멕시코에서 온 조나단, 포르투갈에서 온 호날두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시내 곳곳을 다녔다. 우리는 한 손에 맥주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자전거를 타며 거리의 음악 페스티벌을 찾아갔다. 코펜하겐의 여름엔 매일 그런 게 있다고 했다. 모두 지난하고 어두운 겨울을 견뎌왔으니까. 자전거를 타던 중에 앞에 있던 누가 한 손을 높이 먼저 들거나 뒤에서 '잠깐'이라고 외치면 다 같이 멈춰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한 명이 길가에서 소변을 갈기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봤다. 그렇게 처음 만난, 멕시코와 포르투갈에서 온 아이들과 코펜하겐 시내 멀리멀리 나가봤던 초 여름, 저녁 6시 갑자기 호러 영화의 전반 10분쯤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다 젖고도 괜찮다고 자전거를 타고 빅터네 집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호날두와 조나단이 극구 말렸다. 그렇게 플로팅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왔다. 조나단과 호날두가 여기 잘 곳이 있으니 여기서 자라고 자신들이 목재로 프레임을 만들고 길에서 주워 온 매트리스를 깐 침대를 내줬다. 호스트와의 약속을 어기기는 싫었지만 태풍을 동반한 비라는 것을 날씨 앱으로 확인한 나는 수건으로 손만 먼저 닦아내고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빅터. 거기도 비가 많이 와? 여기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아까 네가 플로팅 아일랜드에 데려다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여기 잘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비가 그치면 갈게. 혹시 내일 밖으로 나갈 건지 알려주면 시간 맞춰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고마워!!!!!

바로 전화가 울렸다. 로밍을 하지 않아서 곤란했지만 그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안녕, 빅ㅌ”      

      “춥다물. 너 지금 당장 집으로 와야 해.”

      “빅터, 무슨 일 있어?”

      “나 지금 애들 데리고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가야 돼. 그러니까 지금 당장 돌아와.”

      “갑자기?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자전거 타고 못 가. 어쩔 수 없지. 그럼 다녀와. 네가 다녀오면 내가 내일 갈게.”

      “오늘 가면 며칠 있다가 와서 지금 밖에 시간이 없어. 자전거는 거기 두고 지금 집으로 와.”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혹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 무슨 일인지 얘기를 해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에 못 간다는 게 그렇게 길게 나눌 얘기가 아닌 것을 알아챈 조나단이 말을 끊었다.

 

      “왜 그래?”

      “잠시만 빅터.”


 한 손으로 핸드폰의 마이크를 막고 조나단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빅터가 지금 당장 돌아오래. 어디 가야 한대.”

      “열쇠를 발 매트 밑에 두고 가라고 해.”

      “열쇠를 발 매트 밑에 두고 가.”

      “그건 너무 위험해.”


조나단이 내 어깨를 톡톡 치고 자신의 가슴팍을 툭툭 쳤다. 내가 전화기를 건넸다.

    

      “이봐, 빅터, 나 조나단이야. 무슨 일 있어?”

      “아 지금 일이 생겨서 2시간 안에 출발해야 해. 춥다물한테 우리 집까지 오는 버스 좀 알려줘.”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잠시 말랐던 손이 다시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조나단은 어떤 추리를 시작한 듯이 나와 호날두를 번갈아 가며 봤다.

      “안 되겠다. 나랑 같이 가자.”

      “무슨 소리야, 지금 가면 넌 어떻게 돌아오려고? 빅터가 너까지 재워줄 수 있을까?”

      “너 지금 홈리스가 귀가하는 게 걱정되는 거야?”


옆에 수건을 두르고 담배에 불을 붙이던 호날두가 큰 소리로 웃었다.


 장대비가 내리는 지붕 없는 정류장에서 3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갔다. 나는 호스트를 기다리게 해서 너무 미안하긴 한데, 이게 내가 미안해야 되는 게 맞아 타령을 계속했고 조나단은 그 답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이 없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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