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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Oct 27. 2023

토마스와 크리스티나의 집

붙박이장이 절대 있으면 안되는 위치

 Graz, Austria 2011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혼자 여행할 때는 혼자 음악 페스티벌을 가고 혼자 맥주를 마시며, 혼자 길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천천히 미술관을 돌며 지나가는 행인들과 몇 마디를 나누고, 호스텔에 가서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각자의 얘기를 했다. 3일 동안의 홀로 여행하는 배낭객의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사는 그라츠에 도착해 토마스가 2시 30분에 도착한다는 역에 미리 나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나는 말해 버렸다.

    "토, 토, 토마스으!“

이렇게 끔찍하고, 격하게. 방금 뭐야?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토마스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춥다물. 다시 봐서 정말 반갑다. 잘 지냈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토마스를 따라 크리스티나는 교환학생 대신 인턴쉽 자리를 구해서 함께 왔다. 둘 다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었고 똑똑하고 사려 깊은 커플이었다. 그 커플이 한국에서 여행을 갈 때나 표를 예매할 때 '춥다물이 그런 거 잘 알고 잘 도와준다'라는 말을 레아한테 전해 듣고 설계실로 나를 찾아왔다.

    "안녕 난 옆반의 토마스라고 해. 미안하지만 나를 좀 도와줄 수 있어?"

그렇게 나는 기차표를 예매해 주고 제주도의 맛집 또는 할인받는 방법들을 알려주면서 고맙다고 맥주를 사겠다는 토마스와 그리고 크리스티나와 조금씩 친해졌다.

    "우리 전주에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

그렇게 함께 여행도 하고 맛있는 한식당에도 동행하게 되면서 토마스와 티나는 항상 한 가지를 믿을 수 없어하며 고마워했는데 그것은 내가 이렇게 뭘 하자고 하면 어디든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여행을 우리는 왕왕했다. 그러다가 나에게 당연한 것들에 토마스와 티나가 신기해하고, 그동안 당연했던 것들이 나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걸 깨달았다. 타인의 시선과 내 시선을 서로 포개어 놓고 세상을 보는 것은 이토록 재밌는 일이다. 우리는 건축과 문화에 대한 여러 방향의 생각과 이론을 공유하며, 또 한편으로는 새까맣게 그을린 구들방의 장판과 등은 뜨거운데 코만 차가운 한옥의 겨울, 그리고 군밤, 군고구마 먹을 때 검댕을 서로의 얼굴에 묻히는 당연한 수순, 구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모양의 굴뚝 연기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들과 방귀를 더 최악으로 만드는 것은 지금 우리가 먹는 김치인지, 막걸리 인지에 대한 논의로 한옥스테이에서의 밤을 지새웠다.   

    "춥다물, 그라츠에 꼭 놀러 와. 우리가 너의 가이드가 되어 줄게."

 다음 해 어디든 따라가는 사람인 내가 토마스와 티나가 사는 곳, 그라츠에 정말로 나타났을 때 그들은 친구들을 총 동원해,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그라츠를 떠나는 날에야 나에게 보여 준 티나의 수첩에는 2페이지에 달하는 '춥다물과 함께 할 일'이  빼곡히 적혀있었고 1,2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목록에 가로줄이 그어져 있었으니까.


 토마스, 티나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20개가 넘는 일정을 소화했던 그라츠는 세계에서 단위면적 당 학생이 제일 많이 살고 있는 '대학도시'이다. 그래서 유럽의 작은 도시이지만 젊고, 활동적인 기운이 넘쳤다. 토마스와 티나가 함께 살 집을 구할 땐 시내와 가깝지만 조용하고, 작더라도 외부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이 집은 그런 그들의 바람에 100% 부합했던 곳이다.

사진을 찍은 위치가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단층으로 지어진 이 합동 주택은 ◁로 표시 된 공동 현관으로 출입하는데, 그 안으로 들어오면 총 4세대가 공유하는 공동의 정원이 있다. 이 정원에는 각자가 조금씩 꾸며 둔 낮은 담장 역할을 하는 식물들 사이사이에 한 세대씩 소유하고 있는 다이닝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다. 토마스와 티나의 집은 이 공동 정원을 통과해야 나오는 가장 안쪽에 위치한 집이었다. 가장 안쪽의 그들의 정원 테이블은 뭔가 좀, 수상했다. 항상 자신을 지나쳐 ◀︎로 표시 된 현관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멱살을 잡고 끌고 나와 앉히고는 술을 먹게 유도하는 것으로 우리의 하루를 떡실신으로 마무리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루도 그 수상한 테이블에게 당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비록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이 온통 보이는, 평소에 내가 지양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이 집이 편안했던 이유는 공동 현관을 지나, 공동 정원을 지나서 천천히 통유리의 거실이 눈에 들어오는, 그 '한옥적 시간'에 있었다. 대문을 열고, 돌이었던 바닥이 흙으로 바뀌고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는, 양쪽으로 배치된 다른 공간들, 사랑방, 마구간, 그리고 다시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대청마루와 그 뒤로 보이는 작은 마당 같은, 일련의 공간적인 시간말이다.

 커다란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는 처음 저 텅 빈 거실 소파 베드에서 잘 잠들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매일 떡실신 테이블에서, 토마스와 티나 그리고 그들의 그 친구들과 마신 술들 덕분에 그 걱정은, 아침에 꿀잠에서 깨어나는 나를 약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침실이었다. 거대한 공용공간이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방음도 잘 되고 제일 안쪽에 아늑하게 위치한 침실이 아니었다면 토마스와 티나도 아무리 좋은 가든 테이블이 있어도 이 집에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했다. 나도 완전히 동의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집 평면의 방 왼쪽에 위치한 붙박이장은 주택 설계 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이다. 외벽에 접한 창고나 붙박이 장은 외기-내기의 흐름을 방해해서 벽장과 벽사이에 곰팡이가 피게 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인데,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패시브 건축에 대한 이론을 모르면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다. 그러나 패시브 건축이 굉장히 발달한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이렇게 설계할  수 있었던 건, 붙박이장의 문을 환기가 잘 되는 갤러리문으로 마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한국 패시브 건축협회 실무자 과정을 수료하고 얻은 가장 충격적인 깨달음 중에 하나였다. 이 집은 그래서 ‘한옥적 시간‘과 ’오스트리아적 패시브 하우스‘의 통찰을 가진, 굉장히 '토마스-티나'적인 집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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