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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Nov 15. 2023

루시앙의 집 1

바로크와 카페인우울증

Lille, France 2016


 줄리와 티보의 결혼식 파티 4개월 후, 본식 결혼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프랑스 각지에서 방문하는 친척분들을 맞이하느라 줄리네 집은 빈방이 없었고 나는 줄리의 삼촌, 브누아와 숙모 미셸 집에 묵게 되었다. 줄리가 미안해하며 그 소식을 전했을 때, 지난번 방문했을 때 너무 아름다웠던 집이라서 나는 사실 정말 기뻤다. 티보가 상하이로 발령이 나서 결혼식 하고 한 달 후 상하이로 이사 간다는 얘기를 들으며 브누아아저씨와 미셸 어주머니의 집에 도착했다. 내가 언제 도착하는지 몰랐던 그들은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그 맛있는 냄새는 도미 구이와 버터 감자였다. 결혼식 준비로 정신이 없는 줄리는 바로 떠나고 나는 빠르게 프랑스 가족의 저녁에 초대되어 둘째 젠과 남자친구 얘기와 셋째 르젠의 회사생활, 막내 마들렌의 학교생활까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주방의 원형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던 오른쪽 거실(livingroom1)에서 나의 런던 생활과 젠과 알렉시의 런던 생활을 함께 겹쳐보았다. 다른 시간대의 런던을 이야기하며  브누아아저씨가 디저트로 요거트에 딸기시럽에 굵은 설탕을 조금 뿌려서 주셨는데 이 보잘것없는 것이 왜 그리 달고 맛있던지.


 오래 전 릴이 벨기에에 속해 있을 때 만들어진 이 집은 큰 공사 없이 대대손손 자식들이 보존하여 쓴 저택이었다. 그래서 벽난로뿐만 아니라 마구간(Mews) 자리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큰 앞마당을 지나 들어 서면 양쪽으로 잘 정돈된 정원이 있고 정원사이로 현관 문이 나타난다. 오른쪽에 큰 거실,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주방을 지나면 조금 더 사적인 두 번째 거실이 광활하게(정말) 나타난다.

1층/ 사진을 찍은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

 그중에서도 이 집에서 가장 굉장했던 것은 바로 집 내부에 곳곳에 비치된 가구의 역사에 있다. 집뿐만 아니라 내부의 의자, 탁자, 주방기기까지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윤을 내고, 고치며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책에서나 보던 18세기, 19세기 빈티지 가구들이었다. 이게 실제로 조상들이 쓰던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에게 브누아아저씨는 이때다 싶어 이 집의 역사적인 가치와 가문의 자랑스러움을 피력했다. 그럴 때는 그는 항상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물론 건축을 전공한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하지만 나는 그저 남성적인 바로크, 여성적인 로코코라는 교과서적 묘사에만 머물러 있는, '예술사를 글로 배운' 바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가구 박물관' 관람을 옆에서 보고 있던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 집의 둘째 젠이 덧붙였다.

    "물론 너도 알겠지만, 보다시피 이 다리가 부드럽게 곡선인 의자는 로코코 때 의자고 이 직선형의 의자는 바로크 시대 가구야. 아빠, 맞지?"

    "맞아. 그건 고고조 할아버지 때 쓰시던 거야. 이 바로크 의자는 18세기때 만들어진 거지. 루시앙이 오면 잘 설명해 줄텐데, 얘가 오늘 늦게야 도착한다네."

 학교에서 작은 사진으로, 영화의 소품들로 봤던 가구들을 이 집의 4명의 아들, 딸들은 기어 다니면서 손에 닿는 나무로, 혀에 닿는 씁쓸함으로, 발가락을 부딪힌 아픔으로 저 로코코를 배웠을 것이다. 숨바꼭질할 때는 고딕양식의 키 큰 의자 등받이 뒤로 숨으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에 나는 이 집에서 묵고 런던에 돌아와, 내 것인 적이 없었던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 빠졌다. 나는 내가 집을 그리워한다는 걸 며칠 동안 라면만 먹다가 깨달았는데 더 웃긴 건 한국의 집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릴에 있는 남의 집 그리워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를 더 비참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집, 4명의 형제가 서로 아끼며 따뜻한 모습으로 안아주는 집, 대대손손 아름답고 좋은 가구들을 물려주는 집. 그것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에게 큰 실망과 배신감도 들었다. 가짜 향수병인 것 같았다. 후에 사람들이 이것을 '카페인 우울증(타인의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보며 박탈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라는 부른다는 것을 알고는 이게 이름이 있는 슬픈 감정이라는 것이 더욱 기가 찼지만 내가 미쳐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 안도했다.

 

 내가 느껴야 할 진짜 향수병의 모양은 이랬다. 서로가 얼마나 어설픈지 지적하며 애정을 나타내는 집, 서로 얼마나 못생겨졌는지 얘기하며 많이 보고 싶었다고 대신 말하는 집. 옛날 것은 지긋지긋하다고 다 버려버리라고 핀잔을 주며 신형 냉장고를 선물하는 집. 그러나 이 '가짜 향수병'에 빠져서 나는 매일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와 아빠가 품에 고이 넣고 와서 집안의 식구들을 다 모이게 한 뒤 짜잔 하며 내 보이던 자연산 송이버섯, 그것을 방앗간에서 짠 참기름과 소금에 찍어 먹던 맛을 기억해 내려고 했다. 엄마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버리라고 했던 증조할아버지가 만들었던 싸리빗자루에 쫓기던 말린 고구마를 훔쳐먹는 고양이도 생각났다. 이 '가짜 향수병'이 한국에 가서 마당 구석에 서 있는 싸리빗자루를 보면 바로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자 모두 다 조금씩 우스워졌다. 그러나 드라마 킹덤을 보던 젠에게 저 주지훈이 쓴 멋진 모자 '갓'이 우리 할아버지가 생전에 쓰고 다니셨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그게 아직 우리 집에 있으며 그게 얼마나 뻣뻣한 지 나는 안다고 자랑하고 싶어, 다시 만나기를 마음 한쪽으로 나는 아직도 고대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2층에서 내려왔을 때 주방에서 어제 없던 목소리가 들렸다. 주방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곱슬머리의 콧수염이 있는 청년이 일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은 파란색 셔츠였다.

    "안녕. 나는 루시앙이야. 얘기 많이 들었어 춥다물. 릴에 온 걸 환영해"

 루시앙. 지난 4개월 전에 왔을 때부터 브누아아저씨가 노래를, 노래를 부르던, '베를린에 혼자 사는, 건축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나의 첫째 아들'할 때 그, 루시앙이었다. 인사를 간단히 마치고 내 앞으로 가염 버터와 본 마망 스트로베리 잼을 다정하게 밀어주고 다시 수학계의 노벨상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로 돌아가 대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루시앙을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나는,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브누아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사레가 들렸고 브누아는 흐뭇한 얼굴로 자신의 잔에 차를 더 따랐다.


-다음 화에 2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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