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춥다물 Aug 07. 2024

네 번째 면접

안소장님께

소장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메일 보내요. 제가 떠난 회사는 잘 안 돌아가야 할 텐데 당연히 잘 돌아가겠죠? :)


저 며칠 전에 면접 봤어요 ㅠㅠ.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다가 한 달 전에 이미 다른 회사에서 면접보고 낙방을 한 터라 인터뷰할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애플와치에서 심박수가 너무 높다고 번쩍번쩍 알림이 오더라고요. 그걸 인터뷰 도중에 확인하고 한 손으로 애플워치를 가리고 이를 꽉 물었었어요.


 면접은 두 명의 시니어 디자이너들과 진행됐어요. 캐서린과 헤리엇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면접을 진행했는데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두 담당자 모두 너무 전문적으로 인터뷰 전에 이 회사, 내가 맡을 역할, 프로젝트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해 줬어요. 마치 나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듯이요. 너무 딱딱하지는 않았지만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고, 내가 물어보려고 적어갔던 질문들을 미리 안 것처럼 친절하게 다 답변을 해주더라고요. 묻기도 전에 말이죠.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도 너무 멋졌고. 이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면 정말 좋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도 점점 제 페이스를 찾았어요. 그러고 나니 이제 좀 말이 편하게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좋아하든 말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오늘 다 하고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다 했어요. 속이 다 후련했어요.

 그리고 정말 뭉클했던 건 바로 면접 끝나고 면접관 캐서린이 해준 말이었어요.


    "면접결과를 기다린다는 건 정말 숨 막히는 일이지? ㅎㅎ 우리 모두 다 겪어봤으니까 숨기지 않아도 돼. 다만, 회사가 커서 의사 결정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근데 답변이 없다고 면접에 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하지 말고, 에이전시에 전화해서 꼭 확인해. 우리도 에이전시를 통해서 면접자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중간에 의사소통이 안돼서 잘 안된 경우가 있거든. 확실한 답변을 받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마."


 한 시간 좀 넘게 했던 이 면접은 내가 했던 면접 중에 만족스러운 면접이었어요. 이렇게 편안하게 면접을 이끌어주는 면접관들이 있구나 하고 놀라기도 했고요. 저도 언젠가 누군가 면접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이끌어줘야겠다 다짐도 했어요. 근데 끝나고 회사 사옥 투어를 시켜주더라고요? 이전에 면접 봤던 회사에서 투어를 해주고(보통 잘 안 함) 제가 이거 그린라이트 아니냐며 정말 기대했었다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어서 너무 들뜨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집에 왔어요. 사옥도 멋있고, 다양한 인종의 멋진 디자이너들이 정말 멋져 보였어요.


 집에 와서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라면을 끓여 먹었어요. 그리고 다시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날이 다시 시작된 거예요.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 구인사이트를 보고, 또 봤어요.


 이틀 후였나 봐요. 연결시켜 줬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생각보다 너무 일찍이요. 그래서 불안했어요. 안타깝지만이라고 시작할 것 같았거든요.

 근데 여기에서 나를 채용하고 싶어 한다고. 인터뷰를 본 건 나 하난데 나를 뽑기로 결정했다고 들뜬 목소리의 리크루터가 소식을 알렸어요. 너무 기뻐서 속으로는 소리를 질렀지만 최대한 덤덤한 척, 대답했어요. 그렇냐고, 잘 됐다고. 일 시작일은 내가 정할 수 있대요. 다음 주부터 나와도 되고 한 달 후에 나와도 된다대요? 그리고 연봉은 내가 요구한 연봉 범위의 딱 중간을 주겠다더라고요.

 이 정도 들으니 서브권이 나한테 넘어와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그래서 일단 잘 됐다고 근데 그전에 한 군데 더 면접본 곳이 있어서 그 담당자랑 확인 전화해 보고 내가 다시  연락 준다고 했어요. 저 존나 멋있죠? 그랬더니, 리크루터가 잠시 멈칫하더라고요. 그리고 알겠다고, 정말 잘 했다고 축하한다며 전화를 끊었어요.


 그래서 남편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쁜 소식을 알리고 영국인으로서의 그의 생각을 물어봤어요. 근데 그도 이제 내가 결정권자가 된 게 맞는 것 같다는 거죠. 급하게 사람이 나가서 필요한 상황이었으면 바로 일을 시작하라고 했을 텐데 내가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하라고 한 것, 400명이 있는 큰 회사에서 결정이 하루 이틀 만에 나는 것으로 보아 나를 상시 모집으로 뽑은 것이고 면접관들의 결정권이 큰 것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그 둘이 너를 정말 마음에 들어 한 거라고 그리고 회사는 네가 얼마나 맘에 들든 네가 달라고 한 만큼만 줄 거라고도 하더라고요. 모두 내가 생각한 것과 맞아 떨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게임을 시작합니다.


-다음 화에 계속

이전 15화 세 번째 면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