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세련된 뉴욕의 1938년, 젊음

‘우아한 연인’을 읽고

by 고라니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시대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기원 전의 고대와 동서를 막론한 15-16세기, 그리고 20세기 초의 시간이다. 이 책은 미국 뉴욕의 1938년을 그리고 있다. 그 복잡하고 막막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꿈꾸고 욕망하던 청춘 넷을 통해 찬란했던 한 시절을 그려낸다. 진부하지 않고 세련되며 구구절절하지 않다. 의역한 한국 제목이 거슬릴만큼 소설의 필체와 전개는 깔끔하고 우아하다. 묘사와 설명이 박식하고 다채로워 문장 하나 평범치가 않다. 작가가 그 시절을 살아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써낼 수 있었을까 궁금해 작가에 대해 찾아봤을 정도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시대의 기억에 뉴욕 맨하탄의 젊음이 추가되어 기억될 책이었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몰입도가 높아 페이지 터너 소설로 손에 꼽힌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어느 날 밤, 내가 아버지의 침대 옆 에 앉아서 기운을 좀 복돋아 드리려고 멍청한 직장 동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느닷없이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나 맥락에서 벗어난 이야기라서 나는 아버지가 헛것을 보시는 줄 알았다.

아버지는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다쳐도, 아무리 풀이 죽고 기운이 빠져도, 자신이 언제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고대하는 한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해준 조언이었음을 깨달았다.

타협을 모르고 목표를 추구하는 자세와 영원한 진리를 향한 탐구는 고귀한 이상을 지닌 젊은이들에게 확실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람이 일상적인 것, 그러니까 현관 앞 계단에서 피우는 담배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먹는 생강 쿠키의 즐거움과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쓸데없는 위험 속에 몸을 담갔다고 보면 된다.

그때 아버지가 당신 인생의 결말을 앞두고 내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이 위험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는 찰스 디킨스의 책들이 아버지의 커피 한 잔과 같은 역할을 했다. 소외계층에 속하면서도 용감한 책 속의 젊은이들과 아주 적절한 이름을 지닌 악당들에게 조금 짜증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은 솔직히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우울할 때도 디킨스 소설을 읽다가 정거장을 지나칠 만큼 책에 몰입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210



테이트가 조종간을 잡은 <고담>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노력의 결과가 시간과 기온의 인질이 되기 때문에 계절을 상대로 모호한 싸움을 벌이는 농부의 일과는 달랐다. 허름한 곳에서 계속 같은 동작 으로 바늘을 찌르고 또 찌르다가 나중에는 바늘땀 속에 자신의 멀 정한 정신마저 넣고 꿰매버리는 바느질꾼의 삶과도 달랐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몇 년씩이나 자연과 맞서 싸우다가 나이 들고 약해진 몸으로 돌아와 보면 주위 사람들이 이미 그를 거의 잊어버린 탓에 키우던 개만 반겨주는 뱃사람의 삶도 아니었다. 우리의 작업은 파괴 전문가의 일과 비슷했다. 우리는 건물의 구조를 세심하게 연구한 뒤 건물 기초 주위에 폭약을 설치하고, 미리 잘 조정된 순서대로 그것을 터뜨려 건물이 자신의 무게로 폭삭 주저앉게 해야 했다.

그래서 그걸 보는 사람들이 경외감으로 얼빠진 표정을 짓게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한껏 고양된 목적의식을 갖는 대가로 우리는 잠시도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일을 멈췄다가는 손등을 자로 얻어 맞았다. p.301



그건 인생이 일부러 마련한 아이러니인 것 같다. 우리가 그런 모습의 자신을 결코 볼 수 없다는 것. 우리는 깨어 있을 때의 자기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깨어 있을 때의 모습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항상 안절부절못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젊은 부모들이 곤히 잠든 아기를 홀린 듯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모 르는 것도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른다. p.344



딸이 죽으면 엄마는 딸이 결코 누릴 수 없게 된 미래를 생각하며 슬퍼하지만 딸과의 그 친밀했던 추억 속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딸이 부모에게서 달아났을 때는 그런 다정한 추억들이 잠들어버리고, 멀쩡히 잘 살아 있는 딸의 미래도 해변에서 물러가는 파도처럼 엄마에게서 물러나버린다. p.353



"처음 봤을 때부터 나한테는 당신 안의 차분함이 보였어요. 사람들이 책에 써놓았지만 실제로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은, 내면의 고요함 같은 것. 그래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죠. 저 여자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그러다가 저건 후회가 없는 사람만이 가능하 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결정을 내릴 때... 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 그게 나를 멈칫하게 했죠. 그래서 그걸 다시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p.371



공이 아니다. 그들은 역사의 여명기에 처음 확립된 복잡한 도덕적 평형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대개 그런 보편적인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풍부한 증거와 맞닥뜨린다. 수레를 끄는 말처럼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시야를 제한하는 가리개를 찬 채 주인의 물건을 끌며 터벅터벅 걷는다. 그러면서 주인이 먹여줄 각설탕을 끈기 있게 기다린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가 약속하는 정의가 어느 날 갑자 기 우연하게 실행될 때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삶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우리의 상속녀들과 정원사들, 우리의 목사들과 보모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정체를 숨긴 채 파티에 늦게 도착한 손님들. 그렇게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이번 주말이 다 가기 전에 이 모든 사람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거나 받게 될 것임을 알 게 된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우리는 자신도 그들 중 한 명으로 함께 헤아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p.403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한 것보다 원하는 것이 더 많아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필요한 것이 원하는 것을 능가하는 사람들이에요." p. 414



거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나는 밸을 사랑한다. 내 일도 사랑하고, 나의 뉴욕도 사랑한다. 내가 이것들을 택한 것이 옳았다는 생각에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는 올바른 선택이란 원래 인생이 상실을 결정화시키는 수단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그 버릇도 인생이라는 것에 슬그 머니 밀려났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그러다가 아주 가끔 그의 이름을 부르는 식으로 변하다가 나중에는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p.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