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작은물방울 Oct 11. 2021

층간 소음을 이겨낸 아빠의 사과

진심의 중요성

나에게는 거의 띠동갑 차이 나는 동생이 있다. 이 이야기는 동생이 태어날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는 동생을 낳기 위해 친정인 전주로 내려가셨다.


아파트 사진_출처:픽사 베이


아마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일 것이다.


너무 어릴 때여서 어떤 이유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친가 쪽 친척들이 우리 집에 오셨다.

약 20여 명 되는 아니 아이들까지 하면 30여 명 되는 사람이 우리 집으로 방문한 것이다.

그때 우리 집은 성남에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11층에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와 어른 둘이 살고 있는 집이라 평소에는 별소리가 없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아이들까지 잔뜩 온 상황이니 발소리가 10층 집까지 울렸나 보다.

쿵쿵하는 소리가 들리니, 아랫집에 계셨던 할머니 한 분께서 참다 참다 올라오셨다.

화가 나신 듯이 따지러 오셨다.


싸움_출처:픽사 베이


처음에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같은 날만 세 번째 올라오시니 친척분들도 화가 나셨던 것 같다.

“쿵쿵쿵”

서로의 감정이 좋지 않았고, 소리는 그날 밤까지 잦아들지 않았다.

10층 할머니는 정말이지 벼르고 계셨다.

수적으로도 기싸움으로도

그날 우리 집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어른 남자들이 많아서,

안 되겠다 생각하셨는지 그 뒤로 더는 안 올라오셨다.


그 사건이 있었을 때 아빠도 엄마도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전해 듣긴 했지만, 자세한 상황은 모르고 계셨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_출처:픽사 베이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였다. 집에는 아빠와 어린 딸인 나 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해서 아빠와 함께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띵동 띵동

예사롭지 않은 벨소리가 울렸다.

우리 집으로 밑에 집 할머니와 함께 큰 장정 아들 둘이 정말 화난 채 들어왔다.

사람에게는 기운이란 게 있는데, 그때의 기운은 “정말 한판 붙자” 뭐 이런 느낌이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너무 뛰어서 정말 화가 났고,
약간의 겁을 준 것 같아서 내가 두 아들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은 내가 최대한 공손하게 써서 그렇지. 어린 나이의 기억으로는 정말 위화감을 가지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아빠는 그 상황을 전혀 모른 채 할머니와 큰 장정, 세 사람의 화가 쏟아지는 상황을 맞이 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빠는 정말 죄송한 듯이 머리를 90도로 숙이며 사과하시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 자리에 없어서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기 엄마가 아이 낳을 간 동안 친척들이 집에 왔었는데, 다시는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어리둥절했다.


아빠가 평소에 순종적인 성격도 아닐뿐더러, 화낼 때는 정말 불같이 화내실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쉽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할 줄을 정말 몰랐다.


밑에 집 할머니께서 갑자기 두 장정인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지신 듯했다.

쭈뼛쭈뼛하시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분위기가 점자 녹았다.

“사실 그날 너무도 화가 나 내가 두 아들 데리고 오늘 싸우러 왔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라며, 싸움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가는 대화가 오고 갔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아빠가 사과하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 정말이지 진심을 다한 사과였었다.


“내 잘못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이 화가 나 있다면 먼저 사과하라. 이야기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뭐 이런 말씀을 어린 나에게 해주신 것 같다.


사실 원인 모를 상대방의 화를 견뎌내는 것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잘못한 원인도 모른 채 잘못을 시인한다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이런 사과는 정말 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어른이 된 지금에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아빠에게 배울 점 하나를 마음 깊이 새겼던 사건 중 하나이다.


윗집과 아랫집 사이_출처:픽사 베이



이 사건 이후의 사건을 말하자면, 10층 할머니와 우리는 정말 좋은 이웃관계로 지냈다. 지혜로운 엄마는 동생이 태어나서, 아랫집으로 인사드렸고,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인사를 깍듯이 하게 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반갑게 인사드렸다. 10층 할머니는 동생을 많이 예뻐해 주셨다. 집에 맛난 것 있으면 아랫집에 드리곤 했다. 그렇게 만나도 서로 인사하고 좋은 이웃관계로 지났다. 아빠의 마음에 담긴 사과가 좋은 이웃을 만들어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에 남는 사진을 에세이로 정리해봐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