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22년 5월 8일 어버이 날 이었다.
요즘 잦은 야근으로 힘들었던 나는 2층 홈씨어터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통해 대리 해방을 느끼고 싶었나보다. 그 동안 못본 회차수가 있어 내리 3시간 넘게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문을 열고 2층 홈씨어터룸을 나오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향이 난다.
'이게 무슨 냄새일까?'
아래쪽에서 나는 것 같아서 내려가 보았다. 계단을 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향은 더 진해졌다. 점차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1층에 있는 부엌에 도착하니 시아버님이 웃는 얼굴로 말하셨다.
"기름이 다 떨어졌는데, 이 기름이 있길래 이걸로 전 부쳤어."
시아버님이 보여주신 기름은 반 이상이 없어졌고, 내가 아끼는 트.러.플.올.리.브.오.일 이었다.
평소에 트러플 향을 좋아하고 올리브오일도 워낙 좋아해 샐러드에 살짝 뿌려서 먹었던 그 올리브오일이었다.
오늘은 시부모님께서 오신지 열흘 넘게 지났다. 시부모님이 오시면 이내 2층이나 3층에서 생활한다. 참고로 우리집은 3층짜리 단독주택이다. 시부모님이 오셔서 오래 계시면, 여러 감정이 섞인다. 사실 내가 사랑하는 신랑을 키워준 부모님이기도 하고, 나를 아껴주시는 분들이기도 해서 감사한 마음이 있다. 특히 요즘에는 야근이 많아서 키우는 강아지를 잘 돌봐주시니 좋기도 하다. 부엌일도 내가 거의 안하게 되니 이점도 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액젓향이 온 집안을 채울 때, 근처 산에서 채집해오신 쑥이 비닐 채로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그릇들의 위치가 바뀌어 있을 때 왠지 모를 감정이 들기도 한다. 삐뚤빼뚤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소심하게 2, 3층에 기숙해 사는 느낌으로 있는다.
생각해보면, 가끔 이런 이벤트는 좋다. 복댕이(반려견)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늦게까지 어디서 놀수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가보다.
집이 시골쪽에 속하는 편이라 멀리 백화점에 가서 사온 식재료인데, 전부치는데 쓰셨다고 하니 순간적으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표현하지 않고, 2층으로 살짝 올라왔다. 이런저런 생각하다 일단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1층에 내려가 마스크를 챙기자 아버님이 나에게 말을 거셨다.
아버님: "저녁 먹고 나가~"
며느리: "이따가 먹을께요. 잠깐 나갔다 올께요. 금방와요."
라고 말을 남기고 밖으로 향했다.
일단 걸었는데, 딱히 갈곳이 없어 집근처 마트로 향했다. 걸으며 생각했다.
' 시어머니께서 잠시 밖으로 나가계셨고, 배고프신 시아버지가 요리를 직접하신거구나.'
' 기름이 없었으니, 집에 있던 유일한 기름인 올리브오일을 쓰셨던 거구나.'
'뭐 트러플 올리브오일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사지도 않았던 것 같고, 생각해보니 그리 화낼 일도 아닌 것 같구나.'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졌다. 마침 어버이날인데, 시아버지께 그리 화낼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마트에 가서 떨어진 기름이나 사와야겠다. 가볍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