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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Apr 09. 2023

강아지에게 배운 것

현대인들은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물론 물리적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일과 개인의 삶 간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퇴근 후 포근한 집에 와서도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속박되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아이러니하게 퇴근하는 삶을 살게 된 건 집에 있는 강아지 덕이 크다. 갑자기 강아지이야기가 나와서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라.


복댕이~ 앉아!


지금, 여기


 강아지는 항상 나를 반겨준다. 내가 집에 도착하면, 방긋 꼬리를 흔들며, 나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간식을 주면, 나에 대한 집중도는 최고조에 이른다. 아니 사실은 간식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간다. 앉아~라고 말하면, 바로 앉아서 나를 뚜렷이 쳐다본다. 강아지에게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단지, 지금 여기 현재만 있을 뿐이다. 여러 번 간식을 주며, 난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하는 현재를 살고 있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차츰 나도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에 지나가고 나서야 그때가 행복했는데, 후회할 때가 있다. 너무 허황된 미래만을 꿈꿔도 현재의 행복을 놓쳐버릴 때가 있다. 지금 현재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니, 난 집에 와서는 어려운 회사문제들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댕이댕이 복댕이~



개멍, 시간이 훌쩍 간다.


멍 때리는 것에 대한 정의는 집중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 무의식적인 생각에 잠기는 상태를 말한다. 일종의 휴식이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과정이다. 현대인들은 여러 멍을 경험한다. 불을 쳐다보며 아무 생각하지 않는 불멍, TV를 쳐다보며 아무 생각하지 않는 TV멍,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멍을 때리는 꽃멍 등. 요새 내가 하는 멍은 개멍이다. 우리 집 강아지가 씩 웃는 것 같다. 마음이 뿌듯해진다. 연애 때 연인이랑 아무것도 안 하고 서로 교감하는 시간을 가질 때, 시간이 훅훅 가는 것처럼, 강아지와의 시간도 그렇다. 별거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훅 가있다. 예전에는 생산적이지 않은 이 시간이 아깝다 생각했는데, 요새는 지금의 시간이 참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강아지를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밥 먹을 때 개도 안 건드린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고 강아지 똥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와 강아지에게 사료와 물을 주었다. 우리 집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맛의 사료를 한 그릇 떠서 강아지 밥그릇에 넣는 순간 실수로 사료를 쏟고 말았다. 반은 강아지 그릇에 반은 바닥에 쏟아진 상황.


딴에는 강아지를 생각한다고, 떨어진 사료를 밥그릇에 여러 번 옮겨 주었다. 한두 번은 가만히 있었는데, 자꾸 밥 먹을 때 건드리다 보니 강아지가 짜증이 났는지 나에게 '앙' 이빨을 드러내며 경고를 했다. 순간 놀라면서 아차 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 난 그만 밥 먹는 강아지를 계속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또한 배운 점이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일수록 먹을 때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전까지는 참 예쁘고 잘 따르는데, 먹을 거 앞에 있을 때는 약간 다르다. 반은 농담이지만, 누가 내가 밥 먹고 집중하고 있을 때, '앙' 강아지처럼 해봐야겠다. 그것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확실한 노력울 해야 하는 때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훌쩍 커버린 복댕이



자연의 풍경을 더 즐기게 되었다.



강아지를 통해 배우점 중 하나는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강아지 자체가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해서 예전에는 그냥 걸어서 지나쳤을 정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끈을 던지면서 놀기도 하고, 강아지와 뛰놀기도 하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쉽게 놓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끔은 붙잡고 살 수 있다는 거. 내 삶에서 경험하는 대단한 축복이다. 정말이지 환상적인 순간들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거 참으로 행복이다.


2022년 어느 여름날 일출



 강아지를 처음 키울 때는 거룩한 부담감이 많았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신중해야 하니까. 강아지는 인간에 준하는 동물이니까,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딸꾹질도 하고, 재채기도 하고, 사레도 들리고, 토도 하고, 방긋 꼬리를 흔들며 웃기도 하고, 가끔 오줌도 지리는 참 다양한 행위를 하는 생명체니까. 거룩한 부담감이 가슴속 깊이 일어났다. 꽃도 키워봤고, 식물도 키우지만, 이런 식물들과는 다르게 더 리얼한 생명체니까. 내가 강아지를 키운다고 생각했지, 강아지가 나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강아지로부터 배운 게 훨씬 많은 것 같다. 



사랑한다, 복댕이~
나에게 사랑을 줘서 고마워


시고르자브종 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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