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소설 같지 않은 소설 #2_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쓴 소설

by 작은물방울
당신을 처음 보자마자, 당신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가 나에게 건네었던 첫마디였다.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어 그날은 출근을 일찍 했다. 그래서 건물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1층입니다" 문이 열리자, 한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얼굴에 뭐 묻었나? 아침인데 화장이 번졌을 리는 없는데?' 란 생각에 엘리베이터 거울을 살짝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그 남자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가 바로 사랑고백이었다. 마음이 쿵쾅거렸다.


5층에서 문이 열렸고, 부동산 컨설팅회사 로고가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내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고, 그는 다시 한마디 건넸다. "제가 곧 찾아뵈도 될까요? 예린 씨?" 서둘러 명함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10층입니다." 기계음이 들렸고, 난 어색하게 명함을 받고 서둘러 내렸다. 마음이 콩닥콩닥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스토커인가? 누구지?라는 두려움과 의심의 마음에서 결국 내가 예쁘게 생겼나? 첫눈에 반할 외모인가?라는 자아도취적인 마음까지 여러 생각이 오갔다. 하지만 이내 회사일은 몰아쳤고, 생각할 겨를 없이 몰입하게 된 일 덕분에 난 깊은 생각 하지 않고 그날을 보내고 있었다.


"예린 님 맞으십니까?"


택배 기사가 내 자리로 장미 100송이가 든 꽃바구니를 들고 왔다. 기쁨이 우선이었지만, 남자 친구도 없는 나에게 누가 꽃을 보냈는지 도저히 예상 가지 않았다. 꽃바구니에는 명함과 함께 짧은 메모가 있었다. "이 건물 스타벅스 2층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퇴근 후에 봬요." 그때 살짝보고 주머니에 넣었던 명함이 떠올랐다. 재빨리 꺼내서 이름을 확인해보았다. 일치했다. "위바이 컨설턴트 대표이사 위 준" 위바이는 우리 건물 5층에 위치한 부동산 컨설팅 회사였다.


그날 난 고백을 받았고, 건물 전체에 그 소문이 퍼졌다. 6층부터 10층까지는 내가 다니는 의류회사였고, 5층은 그의 회사가 있었다. 난 사실 연애는 그냥 무조건 '고' 였기에, 그 남자와의 사랑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다. 게다가 회사의 대표이사라니 하늘에서 굴러 떨어진 복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남자와의 연애는 꿀이 달았다. 연애에는 서툰 것 같았는데, 워낙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배려가 세심했다. 사귀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가 우리 집 앞에 차를 끌고 왔다. 우리는 나란히 차 앞좌석에 앉았다. 조명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빛이 내 얼굴을 비칠 때마다 한마디를 반복했다. '딸깍' 예쁘다. '딸깍' 예쁘다.


그때 그는 떨리는 손을 내 얼굴에 갔다 대었다.

'딸깍' 예쁘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떨리는 첫날밤이 되었다. 나의 절친한 친구들은 호들갑을 떨며, 첫날밤에 입을 속옷을 건네주었다. 검은색에 씨쓰루 느낌이 나는 하늘하늘한 속옷이었다. 나는 두근거렸다. 우리는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아름다운 별들이 쏟아지는 해변에 위치한 풀빌라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검은 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졌을지 안 떨어졌을지는 난 모르겠다. 그는 피곤했는지 내손을 꼭 잡은 채 그냥 잠이 들어버렸고, 우리의 진심 첫날밤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 날 우리는 신나는 바다 액티비티를 했다. 스노클링도 하고, 수영도 하고, 스쿠버 다이빙도 하고, 정말 꿈만 같았다. 그의 눈에서는 꿀이 떨어졌고, 사랑한다는 말도 나의 귓가에 해주었다. 난 다시금 진짜 첫날밤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그날 밤 그는 피곤했는지 내 손을 꼭 잡고 꿈나라로 갔다. 그렇게 5박 6일의 몰디브 신혼여행이 끝이 났고, 그는 항상 내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1년 뒤 난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절대 뽀뽀 이상의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내가 여러 차례 도발해 보았지만, 그는 절대 선을 넘지 않았다. "난 너에게 출산의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이 힘든 세상에 나의 유전자를 남겨두고 싶지 않고. 난 그냥 너 자체로만으로도 만족하거든" 그가 나에게 성욕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항상 내 손을 꼭 잡고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잠이 들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임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난 그에게 참을 수 없는 존재였고, 매번의 유혹의 대상이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선을 넘은 적이 없었다. 혼후 순결 주의자였던 것이다. 절대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이런 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인가? 그는 삶이 무거워 행동 하나에도 무거운 책임을 느꼈던 것이었다.





* 소설 내용이 다소 황당할 수 있습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써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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