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억울함, 그리고 감사함
외로운 팽이
어렸을 때 말이에요. 저희 집은 3층짜리 상가주택이 모여있는 골목에 있었어요. 1층에는 한복집도 있고, BYC속옷 집도 있고, 쌀가게도 있고, 문방구도 있었어요. 이런 골목에는 학교가 끝나면, 항상 아이들 소리로 웅성웅성거렸죠. 우리 집은 한복집 2층이었는데, 창을 열면 골목이 바로 보였어요. 그래서 집에 있을 때도, 밖에서 재밌게 노는 소리가 들리면, 이내 창을 열고 보곤 했죠.
놀이에도 유행이란 게 있어요. 때론 무지개 빛 스프링을 가지고 계단에서 튕겼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훌라후프 돌리기에 열중했을 때가 있었고, 구슬치기가 성행할 때도 있었죠. 그때는 한창 '팽이'가 유행했어요. 팽이 아시죠?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면서 빙빙 도는 그 장난감 말이에요. 애들은 신나게 팽이를 돌리고 놀았어요. 너무나 재미있게 보였죠. 뾰족한 꼭지에 끈을 감아서 빙빙 돌린 후에 손에 촥 감기게 했어요. 그러곤 힘껏 땅으로 내던지더라고요. 그 조그마하고 UFO처럼 생긴 물체는 돌기 시작해요. 때론 이기기 위해 상대방의 팽이를 찍는 경우도 있어요. 찍는 건 돌아가는 팽이 위를 저격해서 자기 것을 내리치는 걸 말해요. 전 주로 2층에서 바라봤는데, 진짜 재밌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졸랐죠. 팽이를 사달라고 말이에요.
엄마는 아주 쉽게 가장 좋은 팽이를 사라고 돈을 쥐어주셨어요. 아마 금빛이 나는 팽이 었을 거예요. 가격은 1000원이었죠. 동네 아이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정말 좋은 팽이였어요. 아이들의 얼굴에 부러워하는 눈빛이 살짝 있었지만, 이내 그들의 팽이를 돌리고 노느라 바빴죠.
그런데, 사실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전 팽이를 돌릴 줄 몰랐어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아빠도, 엄마도, 친구조차도....
엄마와 아빠는 돈을 버느라 바쁘셨어요. 밤과 낮이 바뀐 직장일 덕분에 엄마는 낮에는 잠만 주무셨어요. 아빠는 바쁘신지, 집에 잘 안 들어오셨어요. 밤 9시가 되면 엄마는 출근을 하시고, 전 TV와 함께 집을 지켰죠. 돌봄의 결핍은 티가나 죠. 약육강식의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래요. 전 상대적으로 아이들의 세계에서 초식동물의 위치에 있었죠. 이 모든 게 부모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았던 것 때문이었을 거예요. 아이들은 생각보다 약삭빨라서, 눈치가 정말 빠르거든요. 초등학교 때, 전 항상 외톨이었던 것 같아요.
그랬어요.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도 전 약자의 위치였죠. 누구보다 좋은 팽이를 손에 쥐었지만, 돌리지도 못하는 팽이는 금방 싫증 났어요. 저에게 팽이를 쉽게 사준 사람은 있었지만, 그것을 친절히 가르쳐줄 사람은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나 가지고 싶어서 샀는데, 1000원짜리 금빛 팽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요.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놨는지, 팽이를 잘 돌리는 동네 친구에게 줘버렸는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요.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었는데, 그렇게 행방이 묘연해졌죠.
억울한 반장선거
(팽이를 잘 못 돌리는 초등학생 저학년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어요.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전 공부를 꽤나 잘하는 편이었어요. 수업도 열심히 듣는 편이고요. 그런 이유로 저 스스로 반장선거에 나간다고 하지 않았는데, 추천하셨어요. 반 친구들이 아니라 선생님이 말이에요. 그래서 생각 없이 나가게 된 반장선거였어요. 선거에 총 몇 명이 출마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4~5명 정도였던 것 같아요.
희정(가명)이란 친구였어요. 이름도 기억나요. 작고 예쁘장하게 생기고, 쇼트커트을 했던 친구죠. 저는 1 분단 3번째 줄, 그 아이는 1 분단 2번째 줄에 앉았죠. 그녀는 뒤를 돌아서 저를 바라보며, 아주 상큼한 제안을 하죠. "우리 각지 자기 이름 쓰기 그러니까, 서로의 이름을 써주자" 솔깃한 제안이었어요. 사실 투표용지에 자기 이름 쓰는 거 민망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전 다른 사람이 안 보이게 잘 가리며, 희정(가명)이란 친구의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썼어요.
개봉이 시작되었어요. 한 친구가 접힌 종이를 펴고, 써진 이름을 부르면, 다른 친구가 칠판에 '바를 정'자를 표시해나가죠. 개표가 끝날 때까지 긴장했어요. 제가 받은 투표수는 0표!! 친구의 배신을 눈으로 확인한 날이었죠. 굴욕적으로 말이에요. 충격받았어요. 미안한 눈빛으로 절 돌아보던 그 친구의 눈빛을 잊을 수없네요. 복도에서 5학년 때 친구를 보자마자, 전 엉엉 울고 말았어요. 인생에서 처음 맛본 배신이었거든요.
감사한 이쑤시개
약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전 어떨까요? 사실 외롭게 생활하는 거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늘은 고깃집에 가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고 왔거든요. 거의 혼자 밥 먹기의 끝판왕인 곳이죠. 눈이 휘둥그레 지셨죠? 사실을 말하면, 신랑이 점장으로 있는 고깃집에 가서, 목살 먹었어요. 혼자긴 하지만, 밥도 계란찜도 서비스로 받았죠.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근처에 2시까지 하는 카페로 갔죠. 신랑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려고요. 걱정 마세요. 심심할 틈은 없어요. 책도 읽어야 하고, 생각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니까요.
근데 아까부터 손발이 비비꼬이게 하는 게 있었어요. 바로 어금니와 사랑니 사이에 낀 음식물이에요. 주변 사람들 모르게 혓바닥으로 최선을 다해 보지만, 고기 조각을 빼기에 혀는 너무 뭉툭하니까. 실패했어요. 화장실에 가서 손톱을 이용하기도 휴지를 돌돌 말아서 뾰족하게 만들어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 스트레스받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카페에는 올바른 도구가 없어 보였죠. 신랑에게 몇 시에 오냐고 톡을 보내며, 나에게 절실했던 '그것'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어요.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었는데, 내 앞에 갑자기 쓱 나타난 물건. 하얀 포장에 담겨있는 얇고, 길고, 뾰족한 그 물체. 맞아요. 이쑤시개였어요. 전 슬쩍 옆을 보니, 신랑이 와있었죠. 빠르게 포장을 뜯고, 내내 거슬렸던 부분에 물체를 집어넣었죠.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어요. 3시간 넘게 이빨 사이에서 나를 불편하게 했던 음식 덩어리가 분리되는 순간 말이에요. 고마운 신랑, 감사한 이쑤시개.
마무리
사실 좋은 팽이보다 더 중요한 건 친절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반장선거에서 제가 필요했던 건 제 이름이 적힌 단 한 장의 투표용지였을지도 모르죠. 저에게 절실했던 건, 오늘처럼 '이쑤시개' 한 개였을지도 몰라요.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나에게 정말 필요한 그 무엇. 모르는 거 투성인 나에게, 붕 떠있는 듯한 나에게 차분히 세상에 이륙할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외로운 금 팽이도, 억울했던 반장선거도 과거일 뿐이에요.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신랑에게 제가 쓴 글을 깔깔거리며 읽어주었어요. 저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이쑤시개 하나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별거 아니어 보이지만, 그것 덕분에 마음이 꽉 찬 기분이 들었어요. 오늘 밖은 추웠지만, 왠지 마음만은 따뜻하네요.
* 참고로 2019년 1월에 쓴 글을 퇴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