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린다. 2020년 진짜 겨울을 알리는 하늘의 신호이다. 우산 없이 맞이한 눈은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내 눈을 피해 지하철을 타고 보니, 첫눈의 설렘이 다가왔다. 부랴부랴 눈과 어울리는 음악을 재생해본다. 장나라의 snowman부터 핑클의 white까지 듣는다. 음악이 내 귀를 즐겁게 하니, 첫눈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가슴 따뜻한 작년의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snowflake_출처: image by jill wllington from pixabay
작년 11월 말쯤 내린 첫눈. 그날은 서울역에서 약속이 있었다. 낮 12시쯤 집을 나왔는데, 현관 밖의 세상은 이미 새 하얗게 변해 있었다. 더 이상 눈이 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세상에 충분한 눈이 있는 듯 보였다. 사실 텔레비전에서 서울과 경기 대부분의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했다. 기상예보를 들었던 신랑은 짐 근처 역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난 신랑의 호의를 당당히 뿌리쳤다. 첫눈의 설렘을 만끽하고 싶었다. 뽀드득 거리는 흰 발자취를 남기고 싶었다. 정말 호기로웠다.
처음에는 참 좋았다. 현관 밖을 나오자 펼쳐진 눈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잔뜩 좋아졌다. 아파트 앞에 한 어린이는 손에 장갑을 끼고 눈사람을 만들며 놀고 있었다. 아, 오늘은 패딩을 처음으로 꺼내 입었다. 첫눈, 그건 내가 패딩을 입어도 된다는 허락의 표시였다. 날은 생각보다 포근했다. 패딩 덕분인지, 눈이 내려 날씨가 더 포근해진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근처 지하철 역 가지는 약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살짝 버스시간표를 검색했지만, 배차 시간이 뜨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당당히 걸어가자. 처음에는 좋았다. 눈길을 걷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나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어른이 된 나에게 눈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았다. 걸어가는 길이 미끄러워 넘어질 뻔도 하고, 살 얼음이 얼어있어 바닥인 줄 알고 물웅덩이에 발이 푹 담기기도 했다. 차도 옆이어서, 차가 싹~가며 내 신발에 물을 튀겼다. 지하철 역 까지 거의 반이상을 가자 내 신발은 몽땅 물어 젖어버렸고, 발이 얼 것 같이 차가웠다. 양발까지 홀딱 젖었다. 이대로 서울역으로 출발했다가는 발이 난리 날 것 같았다. 난 도움이 필요했다. 급하게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지하철역 가는길, 길가가 젖어있다.
"큰일 났어!"
"왜, 무슨 일 있어?"
나간 지 10분 정도 만에 이런 전화를 받으니 당황스러웠을 법도 한데, 신랑은 정말 걱정 한 가득 담긴 소리로 답했다.
"아니 신발이 정말 젖어버렸어"
도움을 받지 못해도 싸! 너무 호기롭게 호의를 거절했으니까.라고 생각한 나에게 아주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대답.
"내가 신발 들고 있는 곳으로 갈 테니 거기서 기다려"
이건 정말 뜻밖의 말이었다. 기존 우리 집(친정) 분위기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떻게 내 신발과 양발을 챙겨서 나에게 올 수 있는가? 정말 따뜻한 마음 아닌가? 감동이 밀려왔다.
신랑을 기다리는 지하철역
난 나머지 반조 금 안되게 남은 길을 걸어 지하철 역에 왔다. 길 중간에서 기다리는 게 더 애매했다고 판단 해성. 신랑은 적정한 시간에 나에게 왔고, 작년에 산 부츠 신발과 함께 양말을 챙겨 왔다. 난 지하철 역에서 젖은 양말과 신발 대신 뽀송뽀송한 양말과 신발로 갈아신었다. 마음까지 포근해진 느낌이었다.
서울역 모임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신랑에게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랑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아빠라면, 아마 신발 사라고 했을 거야. 이렇게 바로 가져다주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야. 고마워"
신랑은 멋쩍었는지 이렇게 답한다.
"오빤 새로운 신발을 또 사줄 능력이 안돼서, 하긴 지하철 역에는 신발 살 곳도 없잖아. 하하하"
나에게 첫눈의 기억은 씁쓸하고 웃픈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난 첫눈에 대한 좋은 기억을 하나 얻었다. 비록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지만, 첫눈을 통해 생각난 작년의 에피소드가 날 따스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