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느끼는 '설명절'

다음 명절엔 조금 더 깊어질께요, 감사합니다.

by 작은물방울
설날.png 설 명절, Image by serenaring from Pixabay


"까치까지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린 시절 난 한 손은 엄마 손, 다른 손은 아빠 손을 잡으며, 큰집으로 향했다. 설날은 왠지 모르게 설레고 기분 좋은 날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설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설렘도, 세뱃돈을 받는 것에 대한 설렘들도 겹친다. 집에 차가 없이 가난했었고, 동생도 있지 않았던 그때, 우리 가족은 큰집을 걸어서 갔다. 같은 성남에 있었기에 걸었다. 부자동네를 지나가며, 언젠가 우리도 이런 동네에 살수 있을까 가족이 즐거운 상상을 하곤 했었다.



사실 어린 시절 나에게 설날 하면 세뱃돈 받는 날이라는 뜻이었다. 그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지만, 사촌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자신이 받았던 돈의 액수를 비교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돈들이 얼마나 많은 노고를 들여 번 돈인지. 그리고 세배하는 것의 의미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결혼을 한 뒤 비로소 난 어른이 되었나 보다. 설이나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은행에 간다. 올해는 수협은행과 농협은행에서 명절 봉투를 받아왔다. 예쁜 봉투 안에는 우리가 열심히 번 돈의 일부를 넣어 양가 부모님께 드린다. 이제야 비로소 세뱃돈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받았던 돈의 무게를 느껴본다. 양가 부모님 돈 이외에 마주칠 조카들이나 고모, 이모님들을 위해 여분의 돈도 준비한다. 이제는 진짜 내가 세배를 하고 돈을 드리는 입장에 서 있다. 이 무게감이 싫지만은 않다. 그동안 받은 사랑이 있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거니까.

결혼 후 첫 명절은 괜히 서러웠다. 설거지도 시키지 않는 시부모님들인데도 불구하고도 말이다. 친정 가족들과 떨어지고 사촌들과 만나지 못한다는 게 괜스레 억울하게 느껴졌다. 시끌벅적했던 명절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단촐해졌다. 신랑이 외동아들이어서 시부모님과 우리 내외 넷이서 명절을 보낸다. 그동안 눈치게임처럼 서로 '전'을 해오거나 '음식'을 했었다. 결혼 후 첫 명절 때 시아버지께서 동태전을 부치고 계신 걸 본 게 인상 깊었다. 원래 전을 안부치고 단출하게 지낸 명절이었는데, 며느리를 보니 기분이 좋아서 음식을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우리 모두 아무것도 안하고, '서울 여행'가자고 약속했다. 명동에 가본 지 오래되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명동과 인사동 일대를 돌았다. 명동교자에서 칼국수도 먹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종로 런닝맨 센터에서 런닝맨도 하고, 송해길까지 갔다. 꽤나 걸었더니 지친 기색이 시댁 부모님 얼굴에 역력하다. 그제야 그분들의 나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계단을 내려올때 똑바로가 아닌 손잡이를 잡으며 뒤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시끌벅적한 명절은 아니지만, 시부모님들과의 끈끈함을 쌓아갈 수 있는 명절이 참 감사했다.

설날에 대한 나의 마음은 결혼이란 계기로 왔다 갔다 했다. 어린 시절은 한없이 좋았고 설레었던 설날이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약간 꺼려 했다가, 이제는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는 날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한껏 짜증 내도, 유머로 받아주는 신랑이 참 좋았다. 그만큼 시댁 부모님께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설도 나름 무사히 잘 지나갔다. 다음 추석 때는 조금 더 마음을 담아 시댁 부모님께도, 친정 부모님께도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그 은혜 다 알 수도 없고, 갚을 수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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