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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Feb 20. 2020

머리를 잘랐어.

스타일리스트와의 줄다리기

머리를 잘랐어. 실연의 아픔 같은 거창한 이유는 없었지. 그냥 1년여 전부터, 단지 머리를 가볍게 하고 싶었어. 단골로 다니는 헤어숍의 스타일리스트분께 여러 번 내 의견을 말해왔었지. 그런데, 다양한 이유로 단발로의 변신을 거절해왔어. 그날도 마찬가지였지.

머리 자르고 싶어요.

긴 머리가 너무 아깝다며, 이번에 c컬로 레이어드 스타일로 잘라보는 건 어떠냐 권유했어. 내 주장을 소신 있게 펼치지 못한 난 또다시 긴 머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꼭 이럴 때 난 우유부단 해지거든. 분명 머리카락을 짧게 만들고 싶었는데, 스타일리스트 말에 홀랑 넘어갔어. 진짜 다듬기만 하더라. 그렇게 머리는 계속 길어지기만 했어. 머리가 길어지는 속도가 다듬는 순간보다 더 빨랐지.

머리 잘라주세요.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은 미용실. 내 의지를 더 확고히 하고 갔어.  이번엔 훨씬 철두철미했지.  사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다짐했는지 몰라, 이번엔 기필코 자르리라 하고 말이야. 그렇게 긴장되게 난 말을 꺼냈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바로 이거였어. 



펌 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깝지 않아요?

이런 말과 함께 지금의 헤어스타일 예쁘다는 뉘앙스까지. 마음이 살짝 흔들렸어. 원래 여자는 예쁘다는 소리 들으면 흔들려.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도, 액세서리를 살 때도, 심지어 스카프 하나를 살 때도 기준은 하나지. 바로, 예뻐 보이는 것. 하지만, 난 다시금 미용실 들어가기 전의 굳은 의지를 상기시켰어. 오늘은 꼭 머리를 자르고야 말겠다는 나의 꽂꽂한 마음. 그러고 나서 필살기를 뽑아 들었지.

사진 가져왔어요

맞아. 싹둑 머리를 자르지 않는 단골 미용사를 설득할 비장의 무기는 바로 사진이었어. 혹여나 송혜교 단발머리나 고준희 단발머리 같은 사진을 들고 가면 안 잘라줄까 봐, 당당히 '내 사진'을 들고 갔지. 일종의 방어작전이랄까? 솔직히 송혜교의 단발 사진은 나에게 너무 현실감 없잖아. 그냥 핸드폰을 뒤져서 예전에 내가 단발머리로 다니던 시절의 사진을 찾아갔어. 사진이 특별히 이쁘게 나오거나 하진 않았어. 평범했지. 뭐, 봐라 나 단발머리 잘 어울린다. 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어. 그렇게 난 비장의 사진을 보여주었지.

남편분이 허락하셨어요?


역시 한 번에 넘어오진 않으시는 분. 나의 의사가 확고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신랑의 의견까지 확인하는 철저함. (우리 부부는 같은 헤어 스타일리스트에게 머리를 맡겨.) 그리고, 남자들은 긴 머리 더 좋아하나? 진심 나에게 적용되지 않은 반전의 말이었다. 머리 자르는데 신랑의 허락까지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사실 우리 신랑은 긴 머리를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 나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 난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단호히 말했지. 그동안 계속  말했었다고, 나의 의견을 알아달라고.

웃으시면서, 드디어 가위를 들더라. "진짜 자릅니다." 한번 더 확인하더니, 일단 대충 싹둑싹둑. 가위질이 시작되었다. 귀에 들리는 가위소리가 날 간지럽히며, 묘한 흥분감을 주었어. 이제 당분간 돌아갈 수 없는 긴 머리스타일. 아쉬움과 반대로 '머리가 가벼워진다.' 기분 좋은 느낌도 들었어. 뿌리 염색을 진행하고, 다시 심혈을 기울여 자르시더라. 나의 숙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어. 싹둑싹둑!

'뚝뚝' 머리 뭉텅이가 바닥으로 떨어졌지.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보다 훨씬 무게감 있게 떨어지더라. 미용실의 찬 바닥으로 눈이 향했는데, 예쁘게 씨컬이 된 끝부분이 보이더라. 진짜 아주 살짝, 눈 꿈벅할 정도로 잠깐의 시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

앞머리로 또 하나의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어. 스타일리스트는 옆으로 넘기는 앞머리 스타일을 권했지. 하지만 난 뱅으로 잘라달라 요구했어. 이번엔 체념한 듯 쉽게 잘라주더라. 그렇게 내 머리스타일을 쟁취해나갔어. 내가 원하는 대로. 추천과는 다른 스타일로.




마음에 들듯 들지 않는 나의 모습


염색과 컷이 다 끝난 후 거울을 보았어. '예쁘지 않아!' 절망스러웠어. '잘 못 자른 건가?' 후회가 밀려왔지. 역시 얼굴 불변의 법칙인가. 드라이를 하면 좀 나아질까 기대하는 모습으로 기다렸어. 혹여나 마음이 들킬까 일부러 더 미소 지었지. 산뜻한 느낌의 예쁜 단발을 기대했는데, 무언가 투박한 단발의 내가 거울 속에 있더라. 다시 한번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았어.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 이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스타일리스트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더라. "지금까지 머리 한 것 중 가장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진짜 내 맘을 모르시더라. 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미용실을 나왔어. 머리가 한결 가벼웠지만, 마음은 더욱 무거웠지.



 

'일단, 카페로 가자.' 기분전환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건 카페인이었으니까. 일단 정신 차리고 어떻게 수습할지를 고민했어. 그러다 내 사진을 절친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여자들은 맘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거나 화장법을 바꾸면, 사진을 교환하며 평가를 내려주거든. 이미 내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있다는 걸 아는 절친에게 난 사진을 보내기로 했어. 


'찰칵!'


'카톡' 빠른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명쾌한 소리. 친구에게 돌아온 카톡의 내용은 바로 이거였어. '단발이 훨씬 낫다.' 우리끼리 입에 발린 소리 하지 않는 스타일이거든. 친구는 진짜 머리 예전에 비해 훨씬 낫다며, 왜 마음에 안 들어하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였지.


두근거리며, 내 변한 스타일을 보여줄 신랑. 친구의 카톡 내용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내 머리에 아니 내 모습에 자신이 없었어. 신랑과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차에 올랐지. 옆 눈짓으로 살짝 날 보더니 이러더라.


머리 스타일 예쁜데?

신랑의 반응도 역시 좋았어. 집에 도착해서 바로 화장실로 직행. 그리고 다시 거울을 찬찬히 바라봤지. 내 모습이 어떤지 보려고. 맞아, 화장실 거울을 선택한 이유는 그곳 조명이 예쁘게 보여서야. 일단 머리스타일을 다시 확인하고 나니, 나의 입가에 웃음이 잔잔히 퍼지더라. 그러고는 조용히 혼자 생각을 했지.


'맞아, 난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려!' 



아, 이 얼마나 힘들게 쟁취한 머리스타일인가!

이 얼마나 가볍고 산뜻한가!


1년이 넘도록 못했던 짧은 머리의 매력에 빠져보았어. 본판 불변의 법칙이지만, 그래도 예쁘게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해보았어.





소심하게 올려보는 머리스타일 사진. 모자이크 했어요. 난 소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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