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자기 앞의 생> 리뷰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의식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사랑’ 없이는 하루를 버틸 수 있지만, 음식이나 물이 없는 하루를 버티는 건 쉽지 않다. 갈증과 배고픔은 그만큼 처절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이라면, 생을 마감하는 눈을 감는 순간에 사람이 가장 갈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온몸의 힘이 하나도 없고, 눈꺼풀을 들기도 힘들고, 숨을 한 가닥 붙잡고 있는 것이 버거울 때, 온 힘을 다해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병원에서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죽음의 앞에서 희미하게 말하는 한 단어는 바로 ‘손’이라고 한다.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갈구하는 것이 ‘손’이라니. 죽음의 순간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따뜻한 사랑의 온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외롭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생의 한가운데에 ‘모모’라는 아이가 있었다. 모모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유태인 ‘로자 아주머니’, 인종차별의 끝에 서있는 아프리카인 ‘왈룸바씨’, 힘없고 늙은 아랍인 ‘하밀 할아버지’, 남성성을 완전히 없애고 여자로 살고 싶어 하는 성전환자 ‘룰라 아줌마’, 버림받은 창녀의 아이들 등 현실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다. 다른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모모’는 외롭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한 나약한 아이이다.
모모는 겉으로 보기에 힘없고 늙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지혜로운 하밀 할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어떻게 배부르게 살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나요? 가 아닌 생의 죽음 앞에서 질문할 수 있을 법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건 참 아이러니했다.
<자기 앞의 생>은 어린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과정을 참 아름답게 표현했다. 사실만 나열하면 이 책은 충격에 가깝다. 모모를 키워주었던 로자 아주머니는 점점 죽음에 가까워진다. 로자 아주머니가 가장 두려워하는 두 가지 죽음의 방식인 ‘암’과 ‘식물인간인 채 병원에서 죽어가는 것’을 막아준다. 비록 거짓말을 하고,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였지만. 사실만 나열하면 죽은 사람의 시체를 그대로 방치하고, 향수를 뿌리 냄새를 없애려 시도하는 등의 일들을 한다. 하지만 모모의 시선에서는 로자 아주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안간힘이었다. 아직 어린 열네 살의 어린아이가 죽음을 향해가는 사람, 그것도 자신을 길러주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대응하는 방법이 슬프지만, 놀랍도록 아름답다. 상대방이 진짜 행복한 걸 해주는 사랑. 모모의 행동에 난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내었다는 점에서도, 이 소설은 의의가 있다. 일곱 살 정도의 모모는 똥을 여기저기에 싸지르면, 엄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싼 똥들. 그 싸는 행위를 본 어린아이들은 금세 따라 한다. 집안 이곳저곳에 똥이 있다. 이 상황을 맞닥드린 로자 아주머니는 그 상황에, 냄새에 힘들어한다. 하지만 모모는 조금 더 자라고, 로자 아주머니는 조금 더 늙는다. 창녀들이 맡긴 아이를 키우며 생활을 영위했는데, 쇠약해진 로자 아주머니를 대신해 모모는 맡겨진 다른 아이들의 똥을 닦아준다. 하지만 모모는 기분이 좋다.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모는 조금 더 자라고, 로자 아주머니는 조금 더 죽음에 가까워진다. 로자 아주머니는 자신의 똥 조차 가리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다. 모모는 그런 로자 아주머니를 씻긴다. ‘똥’은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보살핌과 사랑의 관계를 표현한 가장 원초적인 소재이지 않나 싶다.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만큼 가슴 아픈 사건이 또 있을까?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이별이다. 모모는 우리에게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바로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현실세계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하밀 할아버지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린다고 해도, 그 사람이 내게 전해준 사랑의 온기는 남아있을 것이다. ‘모모’는 자신의 방법대로 사랑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삶은 가까이서 볼수록 슬프지만, 모모는 천진난만하며 아름답게 그 슬픔을 마주해 나간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게 바로 미치도록 슬픈 이야기가,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