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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Aug 27. 2020

나의 결핍은 '몸무게'

한동안 ‘결핍’이란 단어가 뇌리를 맴돌았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자신의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모자랄 수도 있고, 살아가면서 없어지는 부분일 수도 있다. 특이한 점은 자신의 결핍된 부분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는 점이고, 결핍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살게 되면 금세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핍은 인생의 한 부분이 부족한 현상이다._그림 출처: 픽사 베이



나의 결핍은 몸무게였다. 난 통통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잘 먹었다. 자랄 때는 몰랐는데, 어느 정도 성인이 되어가자,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처음 사람을 만날 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단번에 스캔하는 능력들을 타고난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거나 했을 때의 인사가 거의 외모에 해당한다. “살 빠진 것 같다”, “오늘은 피부가 좋네”, “옷이 이쁘다” 등의 말을 건넨다. 누가 누가 더 예리한 관찰을 하는지 뽐내는 느낌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오랜만에 만났을 때 하는 말은 “어떻게 지냈니?”이다.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런 비교를 하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외모에 집중하는지를 알게 된다.




몸매에 관한 걱정이 항상 있다._그림출처: 픽사 베이


결혼을 하고, 아빠의 임대관리를 맡고 있다. 업무상 친척들과 자주 마주친다. 친정집은 외모에 더 무게를 두는 느낌이다. 아빠나 엄마도 나에게 항상 몸매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오셨다. 이와 반대로 난 타고나게 예쁘지 않다. 그리고, 먹을 것을 좋아해서 통통한 편에 속한다. 조울증이 발병한 이후 약을 먹으면서 체중은 10kg이 넘게 쪘다. 통통했는데 퉁퉁을 넘어 뚱뚱 까지 된 것 같아서 속상하다. 집안 분위기 상 나의 체중은 모두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저렇게 날씬하면 소원이 없겠다.”




송혜교나 김태희처럼 예쁜 연예인을 보거나, 지인 중 몸매도 좋게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면 으레 생각하는 레퍼토리이다. 나에겐 아무래도 살을 빼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기에, 내가 없는 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완벽해 보이기까지 한다. 항상 통통족으로 살아온 건 아니다. 52kg까지 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몸무게는 다시 늘어났고, 순간의 날씬이 주는 짧은 행복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했다. 집착은 심했다. 그나마, 음식을 토하는 행위까지 가지 않은 건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끔 예쁜 친구들을 보면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넌 걱정 같은 거 하나도 없지?”



하지만, 이내 이 질문은 바보 같은 물음임이 밝혀진다. 그 친구도 삶의 무게가 있고 나름의 결핍이 있다는 걸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부모의 관계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남자 친구 때문에 나름의 걱정을 안고 살아갔다. 난 내 마음속 갈증이 더 크고, 깊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행은 그 나름대로 힘겨운 무게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운동을 시작했다. : 그림출처: 픽사 베이



운동을 시작했다. 아직 눈에 띄게 체중이 줄지는 않았지만, 체력은 좋아졌다. 가장 효과를 본 건 자세였다.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해결책을 가지고 나에게 접근하진 않았다. 아빠는 가끔 화가 난 손짓으로 내 어깨를 피려고 노력했고, 엄마는 약간의 신경질적 목소리로 자세 바르게 하라고 말했다. 우연히 운동하게 된 헬스장에서 피티 선생님이 가슴 옆 부분의 근육과 등 근육을 키워야 어깨가 바르게 될 수 있다며, 운동법과 어떤 자세가 바른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난 내 체형이 부끄러웠다. 어떻게든 가리고 싶어서 어깨를 굽게 만들었다. 조금은 내 덩치가 가려질까 해서였다. 내면의 이야기를 하던 중, 피티 선생님은 어깨를 피고 걷는 것과 어깨를 구부리고 걷는 것의 차이를 눈 앞에서 보여주셨다. 바른 자세는 자신감의 표현이 될 수도 있고, 나중에 체형이 못난 모양으로 굳어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는 것 까지 알려주셨다. 아직도 내 퉁퉁한 몸을 가리고 싶지만, 굽은 등을 가지고 싶지는 않아서, 당당하게 걷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정상체중이 된다면, 체형이 예뻐진다면, 내가 가진 몸무게에 대한 결핍은 가벼워지겠지? 그 날을 꿈꾸며, 난 오늘도 러닝머신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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