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나타내는 행위
어딘가로 이동하는 시간이거나, 나만의 여유시간이 생기면, 어김없이 노오란 카톡창을 열어본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던 창을 기웃거린다. 그마저도 다 보았거나, 대화하는 창이 없을때면 카톡 친구목록을 훑을때가 종종있다. 친구목록을 찬찬히 내리며, 난 그들을 생각한다.
친구목록은 총 574명.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많은 편인지 적은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핸드폰 연락처에 저장된 친구가 500여명이 넘는다는 소리이다. 그 중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은 고작 몇 명 되지 않는다. 거의 대다수의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다. 이건 아마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용건없이 연락을 자주하는 편이다. 톡을 하는 이유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크다. 그 사람이 잘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는 열손가락안에 아니 다섯손가락안에 꼽힌다. 처음에는 톡을 먼저 연락했던 사람이 꽤 되었다. 하지만, 일방향적 소통만 계속되어 나중에는 카카오톡 친구목록에서만 보는 사람도 여럿이다. 그당시에는 가까웠던 사람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얼굴을 봤던 사이도 있지만, 이제 그 사람들과의 간극이 심해졌다. 세월의 강이 이리도 사이를 멀어지게 했나보다.
카톡의 친구목록을 훑는건 어쩌면, 나의 외로움을 반영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 친구를 클릭해서 말은 걸지 않지만, 최근 사진을 보며, 친구의 근황을 유추해본다. 결혼을 했구나, 행복해보이네, 이제 둘째도 곧 태어나는구나 등의 짐작을 해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깜깜무소식은 관계가 흐려졌음을 의미하지않을까? 이제 연결될 수 없는 사람의 연락처를 지우지 않고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 또한 나의 외로움을 지우기 위한 방어책일까?
오늘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훑다가 문득 생각이들었다. 난 너를 추억하며, 일상을 잘 살아내라고 기도해본다. 비록 연락은 하지 않을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