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발달된 주거공간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열심히 자산을 일구었다. 그 내 집의 예로써 아파트가 대다수였다. 꿈의 보금자리였다. 아파트는 삶의 공간을 뛰어넘어 부의 교환 수단이 되었다. 특히, 아파트는 환금성-자산을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 이 뛰어나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과도하게 투기의 대상으로 과열되는 양상이 보인다. 제네시스 박의 부동산 절세 강의를 듣고, 주변 아파트 투자하는 분들의 분위기를 보면, 아파트는 정답이 정해진 객관식 같았다.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오게 된 건 여러 우연의 일치였다. 꼭 남녀가 연애하는 듯이 나와 신랑은 집과 사랑에 빠졌다. 첫눈에 반하게 된다는 게 집에도 해당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으로 집을 결정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아파트와 같이 정형화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가격 때문에 여러 번 이사하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성향상 이사를 자주 하지 않았다. 강남 입성이 삶의 가장 큰 꿈으로 자리 잡기보다는 집이 진정한 보금자리로서의 의미를 다 하기를 바랐던 마음이 컸다.
아파트는 한 층에 거실, 안방, 방, 부엌, 화장실 등이 있는 것과 대비적으로, 우리 집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대적으로 공간 분리가 잘 되어있다. 지하에 차고가 있고, 1층에 정원과 테라스가 있다. 집 내부로 들어가면, 부엌과 다이닝 룸이 있고, 조그마한 게스트 룸이 있다. 2층은 마스터 룸(안방)이 있고, 한 켠에 드레스 룸이 있다. 세탁실이 조그마하게 있고, 작은 멀티 룸이 있다. 3층은 나만의 작업실 서재가 있다. 3층 테라스는 덤이다. 우리 집에는 총 4개의 화장실이 있다. 1층에 1개, 2층에 2개, 3층에 한 개다. 화장실이 4개나 필요할까 싶었는데, 두루 잘 쓰고 있는 편이다.
많은 공간 중 나의 최애 공간을 꼽으라면, 다이닝 룸을 꼽고 싶다. 보통은 소파와 티브이, 식탁을 두는 거실의 공간으로 쓰이는 곳이다. 우리는 심플하게, 큰 우드 슬랙 테이블을 두었다. 텔레비전을 놓아두지 않은 건, 사람에 집중하고 싶은 공간이 되길 바라는 나의 마음 때문이었다. “우리 집의 꽃은 사람이다.” 나의 슬로건 중 하나이다. 집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내용의 문구이다. 실제로 집에서 추억을 하나씩 쌓아나가고 있다.
호텔에서 먹는 애프터 눈 티 세트를 집에서 차려서 먹은 적도 있고, 장어구이를 해서 친정 부모님과 함께 한 적도 있다. 시댁 부모님도 며칠 정도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많아졌다. 신랑 친구들도 나의 친구들도 종종 방문해서 추억을 만들고 간다.
아파트에 살 때에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씻고 부리나케 나갔다. 약속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마치 집을 기숙사처럼 이용했다. 지금의 집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와 함께 모닝 페이지를 쓴다. 꽃과 식물이 있어, 손길을 보내기도 하고 인사를 나눈다. 목이 마르지 않은지 살핀다. 가끔은 정원으로 나가 하늘을 볼 때도 있고, 잔디가 얼마나 자랐는지 살필 때도 있다. 주말에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손님이 오실 때도 있고, 그냥 집을 즐기기 위해 머무르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집을 바라보고, 처음보다 더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있다.
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 고등학교 친구가 “주택이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장점이 많아”라고 말했었다. 주택은 잔디도 관리해야 하고, 손님도 자주 와 집을 청결히 만들어 놔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나의 손길이 신랑의 손길이 집에 닿는 순간들을 집을 사랑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가꾸는 만큼 예뻐지고, 정드는 만큼 사랑에 빠진다.
가끔 아파트가 가진 환금성이라든지, 자산이 증식되는 게 부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품고 신랑에게 이런 말을 했다. “타운하우스 가격이 오르려면, 사람들의 집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러자 신랑은 단호히 답변했다. “집값이 많이 안 올라도, 우린 행복을 얻었잖아."
맞다. 우리 집은 카멜레온 같다. 때론 커피와 디저트가 있는 카페가, 바비큐가 나오는 식당이, 친구들이 와서 놀 수 있는 펜션이, 편안한 침구가 존재하는 호텔이 되기도 한다. 난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추억을 많이 쌓아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많이 쌓아나갈 예정이다. 난 집값을 포기하고, 살(living) 집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