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물방울 Oct 16. 2023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드레스룸을 대하는 자세  


욕심을 냈다. 아니, 욕심이 났다.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고, 공간이 넓어지자, 드레스룸에 대한 욕망이 커져갔다. 모든 공간은 깔끔해야 하고, 내 마음에 쏙 들어와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은 나의 옷장과 신랑의 옷장에 까지 번져갔다. 완벽한 드레스룸을 갖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꿈이자 목표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드레스룸이란, 스스로 아끼고 좋아하는 사계절의 심플한 옷들이 잘 정돈되어 있는 걸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아직 완벽한 드레스룸을 가질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그것은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이란 걸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사실 예전에는 쇼핑을 많이 하지 않고, 싫어했다. 꺼려했다는 말이 더 적합한 듯하다. 어려서부터 아껴야 한다는 아빠의 은근한 강박관념이 나에게도 있었다. 매일 후줄근하게 입고 다녔는지, 짠돌이 아빠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결혼식도 가고, 장례식장도 갈 수 있고, 면접도 볼 수 있는 옷을 구입해 보지 그래." 그때의 나로서는 아빠의 말이 이해가 안 갔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 면접장의 결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옷으로 살 수 없다 생각했다. 고민고민 하고 있던 그때,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옆집 아주머니의 조언이 굉장했다. "그냥 좋은 옷 비싼 걸로 한벌 사~ 아빠가 사주신다는데 이럴 때 장만해야지."




안목있는 쇼핑을 잘하는 친한 언니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 그전까지는 백화점에 있는 여성의류 코너에 가본 게 드문 것 같다. 그때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니트, 그리고 정장 바지와 치마를 샀다. 한 벌정도 되는 옷을 샀는데, 금액은 백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카드 긁힌 것을 보고 아빠가 한 마디 하셨다. 다음엔 조금 저렴한 것으로 사라고. 뭐, 그때 거의 단벌숙녀(?)로 잘 입고 다녔다. 진짜 괜찮은 옷은 사람을 품격 있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건을 뒤로 나는 좋은 옷을 사는 기쁨을 알아버렸다. 쇼핑하는 게 즐거워졌다.




아빠와의 옷사건으로 나는 심플하고, 고급진 옷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런 삶은 옷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내 삶 전반적인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여기에 단점이 있으니 "나의 몸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통통하다.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늘었고, 그 뒤 고정되어 있다. 느는 과정이 있고, 줄었던 시기도 있으나, 다시 늘어있다. 이 말인 즉, 옷이 몸무게 별로, 체형별로 있다는 말이다. 살 빠질 거를 대비해 버리지 못하는 옷이 한 보따리이다. 저 옷은 내가 참 좋아하는 옷이어서 못 버리고, 이 옷은 살 빼질 거를 대비해서 못 버리고, 그렇게 한 아름 옷을 가지고 있다. 완벽을 추구할 때는 몸도, 옷장도 모두 갈아엎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냄새 풀풀 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살이 잘 빠지지 않았고, 완벽한 옷장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완벽해줄 수 없다는 것을...




때론 완벽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몸의 체형이란 건 삶의 전반적인 습관과 닿아있어서, 한 순간에 가르고 정리한다고 정돈되는 것은 아니다. 옷장은 사실 몸의 체형과 관련된 공간이고, 그것은 삶 전체와 맞닿아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180도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오늘 주어진 한 끼니를 건강한 야채를 추가한다던지, 계란을 기름에 프라이 해 먹는  대신 쪄서 먹는 다던지, 자동차를 타고 가는 거리를 걸어서 간다든지 하는 미세한 방식의 차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나의 몸이 완성되어 간다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완벽한 드레스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완전히 새삥(요즘 힙한 말로 표현하자면)한 느낌의 드레스룸을 가지고 싶지만, 나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오늘 저녁의 음식부터 바꿔 나가 봐야겠다.



나의 드레스룸



이전 18화 버리는 미니멀리즘 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