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냈다. 아니, 욕심이 났다.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고, 공간이 넓어지자, 드레스룸에 대한 욕망이 커져갔다. 모든 공간은 깔끔해야 하고, 내 마음에 쏙 들어와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은 나의 옷장과 신랑의 옷장에 까지 번져갔다. 완벽한 드레스룸을 갖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꿈이자 목표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드레스룸이란, 스스로 아끼고 좋아하는 사계절의 심플한 옷들이 잘 정돈되어 있는 걸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아직 완벽한 드레스룸을 가질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그것은 천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이란 걸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사실 예전에는 쇼핑을 많이 하지 않고, 싫어했다. 꺼려했다는 말이 더 적합한 듯하다. 어려서부터 아껴야 한다는 아빠의 은근한 강박관념이 나에게도 있었다. 매일 후줄근하게 입고 다녔는지, 짠돌이 아빠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결혼식도 가고, 장례식장도 갈 수 있고, 면접도 볼 수 있는 옷을 구입해 보지 그래." 그때의 나로서는 아빠의 말이 이해가 안 갔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 면접장의 결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옷으로 살 수 없다 생각했다. 고민고민 하고 있던 그때,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옆집 아주머니의 조언이 굉장했다. "그냥 좋은 옷 비싼 걸로 한벌 사~ 아빠가 사주신다는데 이럴 때 장만해야지."
안목있는 쇼핑을 잘하는 친한 언니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 그전까지는 백화점에 있는 여성의류 코너에 가본 게 드문 것 같다. 그때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니트, 그리고 정장 바지와 치마를 샀다. 한 벌정도 되는 옷을 샀는데, 금액은 백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카드 긁힌 것을 보고 아빠가 한 마디 하셨다. 다음엔 조금 저렴한 것으로 사라고. 뭐, 그때 거의 단벌숙녀(?)로 잘 입고 다녔다. 진짜 괜찮은 옷은 사람을 품격 있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건을 뒤로 나는 좋은 옷을 사는 기쁨을 알아버렸다. 쇼핑하는 게 즐거워졌다.
아빠와의 옷사건으로 나는 심플하고, 고급진 옷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런 삶은 옷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내 삶 전반적인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여기에 단점이 있으니 "나의 몸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통통하다.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늘었고, 그 뒤 고정되어 있다. 느는 과정이 있고, 줄었던 시기도 있으나, 다시 늘어있다. 이 말인 즉, 옷이 몸무게 별로, 체형별로 있다는 말이다. 살 빠질 거를 대비해 버리지 못하는 옷이 한 보따리이다. 저 옷은 내가 참 좋아하는 옷이어서 못 버리고, 이 옷은 살 빼질 거를 대비해서 못 버리고, 그렇게 한 아름 옷을 가지고 있다. 완벽을 추구할 때는 몸도, 옷장도 모두 갈아엎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냄새 풀풀 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살이 잘 빠지지 않았고, 완벽한 옷장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완벽해줄 수 없다는 것을...
때론 완벽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몸의 체형이란 건 삶의 전반적인 습관과 닿아있어서, 한 순간에 가르고 정리한다고 정돈되는 것은 아니다. 옷장은 사실 몸의 체형과 관련된 공간이고, 그것은 삶 전체와 맞닿아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180도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오늘 주어진 한 끼니를 건강한 야채를 추가한다던지, 계란을 기름에 프라이 해 먹는 대신 쪄서 먹는 다던지, 자동차를 타고 가는 거리를 걸어서 간다든지 하는 미세한 방식의 차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나의 몸이 완성되어 간다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완벽한 드레스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완전히 새삥(요즘 힙한 말로 표현하자면)한 느낌의 드레스룸을 가지고 싶지만, 나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오늘 저녁의 음식부터 바꿔 나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