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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Apr 30. 2017

한글로 중국어 배우기

알파벳 발음기호(병음)가 불편하다

기회가 되어 한 달간 중국어 합숙교육 과정에 들어갔다 왔다.

온라인으로 간단한 중국어를 안 상태로 교육과정에 들어가서 처음 배우는 사람보다는 좀 더 여유 있게 공부를 했지만, 역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매일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9시까지 강행군을 하면서 시험에 자주 나오는 패턴을 암송했다.

중국이 G2로 성장하면서 주변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중국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출장도 많이 가게 되어 중국어는 어느덧 제2 외국어의 지위를 얻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중국어는 현대식 교육이 이루어지기 전에 한민족에게는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고, 유교적 사상을 배우는 첫걸음이었다.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의 성리학 논쟁은 자유자재로 한자를 사용하면서 그 깊은 뜻의 의미를 가지고 사상 논재을 한 우리의 소중한 지적 문화유산이다. 그러한 문화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느덧 낡은 것, 구시대적인 것으로 취급당하기도 하고, 민족주의의 부각으로도 한글의 우수함 속에서 사라진 것도 일부분 사실이다.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마법 천자문' 만화책을 통해 다시 한자 배우기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너무나 편한 '천지인' 자판을 사용하는 엄지족들이 늘면서 한자 사용은 더 줄어든 것 같다.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민족이 중국과 인접해 수천 년간 문화교류를 하면서도 고유한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고, '세종대왕'이라는 언어 천재를 통해 '한글'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라기 보기엔 너무나도 대단한 복으로 느껴졌다.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우선 병음이라는 알파벳 발음기호를 배워야 한다. 기본적으로 중국어가 뜻글자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읽는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병음 체계가 만들어진 것이 최근 수십 년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중국 정권이 들어선 1949년 중국의 문맹률은 놀랍게도 80%에 달하여 기술자들은 기계의 조작에 큰 어려움으로 과학 방면의 애로로 고민한다

이에 사태의 심각성으로 중국 정권은 주음 부호 방안을 가장 먼저 연구하기 시작하고 중국문자개혁협회를 세우고 1951년 모택동은 문자개혁으로 병음 방안을 연구하라 지시하고 스탈린에 병음 문제를 유일하게 질문한다

스탈린은 중국은 인구대국으로 자신들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자 모택동은 수긍했다 한다

1952-1954년 사이에 한자 필획식으로 민족 특색의 병음 방안을 연구하고 소련은 슬라브와 문자개혁을 완성한다

몽고도 슬라브화로 문자개혁에 동참하고 소련도 중국문자개혁을 슬라브와 하길 바란다

소련은 부총리를 보내 외교부장 진의와 면담하고 이 방안을 적극 희망하는데 해외의 화교들이 많아 슬라브화는 곤란하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1955년 10월 15일 전국 문자개혁회의를 열고 모주석은 자모 창조를 중지하고 라틴 자모의 채용을 표명한다      

결국 1958년 2월 11일 전인대 5차 회의에서 오옥장이 안건을 상정하여 병음 자모 병사방안이 법정 병음 방안으로 통과된다

1977년에야 국제표준화 회의에서 표결 후 중국의 법정 방안이 9년 만에 인준을 받는다      

[출처] 중국어 병음의 역사|작성자 박기수


1980년 2월 유소기(劉少奇)의 사후 복권이 있었을 때 중국문자개혁위원회 부주임 엽뢰사는 1950년 2월 유소기가 육정일과 호교목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미공개 편지의 사본을 공개하였다

아직까지 중국문자개혁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 몽골, 조선, 베트남은 이미 문자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그들의 어문 개혁은 우리보다 앞섰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들은 우리의 한자를 들여가 사용했으나, 그중 조선의 한글은 이미 오랫동안 쓰여오기도 했습니다. 조선 대사 이국원은 (한자 대신) 한글만 사용해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점을 우리가 유의해야 된다고 봅니다. 우리의 어문 연구자들이 조선의 문자개혁 경험을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학생들이나 학자들을 이들 나라에 보내 배우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자개혁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여기에서 1950년 중국 대표단은 1950년 상반기에 북한과 베트남을 진짜로 방문하였다. 그 결과 파견된 사람들은 두 나라의 문맹 타파율에 높이 감명을 받아 중국도 문자개혁을 해야 한다고 건의한다. 이때부터 중국은 한자의 간화(Simplification)가 급격히 추진된다. 이 같은 역사는 바로 중국이 역사적으로 거의 전 국민이 문맹인 상태에서 극소수의 엘리트들만의 글자인 한자에 대한 오랜 고민을 혁명시켜보겠다는 용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1956년 1월 공산당중앙위원회가 지식인 문제를 다루었을 때 모택동 주석의 비공식 연설문이 지난 1980년에 공개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엄밀하게 검토해보면 결국은 외국 자모를 채택하는 것이 낫다. 오 옥장 동지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한다. 라틴 자모는 숫자가 적다. 라틴 자모는 숫자가 적다. 20여 개에 불과하며 간단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자는 견줄 바가 아니다. 따라서 한자가 그다지 좋다고 볼 수가 없다. 교수 몇 명이 내게 한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표의문자이며 절대로 바꾸어서는 안 된 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웃음) 라틴 자모를 중국인이 발명했다면 그것은 별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외국인이 만들었고 중국인이 베낀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아라비아 숫자를 써오지 않았는가. 라틴 자모는 로마에서 생겼다. 이제 전 세계에서 대다수 나라가 쓰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상용하면 나라를 팔아먹는 것처럼 의심을 받아야 하는가. 내 생각에는 배신이 아니다 (웃음)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이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보탬이 된다면 우리는 연구하고 심사숙고해서 그것을 소화시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상 한나라와 당나라가 그렇게 했다. 한과 당은 풍요롭고 막강한 왕조였다. 그들은 외국의 것을 흡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좋은 것이라면 받아들였다. 태도와 방법이 옳다면 외국에서 들어온 좋은 것을 모방하는 것은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다


결국 마오쩌둥(모택동)의 결정이  1955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중국은 병음 발음기호로 한자를 배우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로마자(알파벳)이라 하더라도...

과연 실사구시의 위대한 결정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상당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심했고, 논쟁이 있었고, 그 가운데 소련의 슬라브 언어 유혹도 있었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알파벳 병음으로 중국어를 배웠다. 그런데 불편했다. 소리글자를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알파벳 발음기호로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조선 시대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중국어를 잘 했을 텐데... 어떻게 배웠을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때 가졌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던 중 최근에 나온 논문들에게 '정음'과 '언문'의 의미에 대한 논문 및 책들이 있어 살펴보았다.


[출처]

김영미. (2015). 훈민정음·정음·언문의 명칭 의미. 인문과학연구, 44, 211-233.


우선 훈민정음 서문을 보자



논문의 저자는 말한다. 세종대왕은 '한자의 발음기호인 정음'과 '당시 사용하던 백성들의 말을 글로 표현하는 언문' 두 종류로 만들었다고...

그것이 위 서문에 보면 알 수 있다고...

즉, 한자 아래에 적혀 있는 한글은 '정음'이라는 발음 기호이고, 한자가 아닌 곳에 적어 놓은 것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인 '언문'이라고... 그래서 발음기호로만 있는 자음이 실제 조선 백성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고.. 위 글자 중 流 아래 적혀 있는 류 아래 받침을 ㄹ과 ㅁ을 세로로 적는 것은 오로지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 발음기호라는 것...

그리고 보면 우리가 배웠던 영어에도 영어와 다른 발음기호가 있었다. sh 발음이나 th 발음 등을 표시하는...

영어 알파벳으로 사용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심지어 영국과 미국의 발음기호는 조금 다른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결국 세종대왕과 그 왕실 중심으로 언어학 연구 실적의 결과물로 나온 발음기호인 정음과 실제 조선의 언어를 글로 표현한 언문은 대단한 발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나는 다시 알파벳으로 중국어(한자)를 읽고 배우게 되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중국어 발음에 대해 연구한 것이 없었을까?

역시 있었다. 그것도  유명한 '도올 김용옥' 교수의 제안으로부터 처음 시작하였다.(1985년) 대만에서 석사를 하고, 하버드에서 박사를 했고, 그 부인 최영애 교수가 중국어 음운학자였기 때문에 더 고민이 많으셨으리라...

그다음 해에 김-최 부부가 제안한 것과 다른 정부안이 발표되었고, 그 둘의 단점이 보완된 제3의 표기법이 1996년 엄익상 교수에 의해 제안되었다.


김용옥-최영애 교수안


엄익상 교수안... (총 404개 발음)


둘 다 보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f 발음과 sh, ch, zh 발음이다. ㅍ, ㅅ, ㅊ, ㅉ으로 표현했지만 p, s/x, q, j/z로 표현되는 발음기호와 구별하기가 어렵다. 옛 고어에서 사용하던 걸 차용하면 좋겠지만 현재 사용하지 않은 자음이니... 어쨌든 한글을 이용하여 중국어를 쓰고 배우는 것이 훨씬 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 없을까? 한글로 가르치는 중국어 선생님은?

역시 있다. 최근에 생긴 YBM 비트 중국어... 성조 표시까지 재밌게 표현하였다.


누군가 이렇게 한글로 쓰면 자동으로 중국어로 변환하는 어플(키보드)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현재는 알파벳 병음으로 중국어 한자를 찾아서 쓰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위에서 얘기한 헷갈리는 발음이 자꾸 겹쳐서 찾기가 어렵다. 일단 엄익상 교수안으로 만들 수 있는 키보드 어플이라도...




이왕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으니, 중국 문화, 역사, 한시 등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중국어 발음기호인 병음 익히기가 어려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는데...

그리고 그 병음을 만든 사람이 올 1월에 타계했다는 기사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화를 외치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으로...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준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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