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첨물 Dec 02. 2018

범인을 찾아라

엔지니어와 형사의 닮은 점

"발생 시기는 언제라고 생각해?"
"사건 발생 장소는 어디지?"
"누가 범인일까?"


한 회의 시간에 나는 팀원들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사건 발생 이후 결과는 있지만 도저히 원인을 찾지 못하고 헤매면서

그동안 발견한 증거들을 나열해 보았다.


형사들이 모여서 범인을 찾는 회의 모습 같지만 사실은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불량의 원인을 찾는 회의 모습이다.  회의는 1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불량이 생기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자. 주범은 A 재료이고, 공범은 B의 투명 전도막이고 그 둘이 반응을 일으킨 것은 열처리 공정과 전류를 흘려보내는 검사 공정이다."
"일단 이렇게 시나리오를 만들고 각자 좀 더 증거를 찾아봐. 분석 기술팀에 의뢰해서 TEM, SIMS 분석하는 것은 ㄱ 엔지니어가 맡고, ㄴ은 관련 논문이 있는지 뒤져보고, ㄷ은 공정 진행 이력 정리해 봐"


오늘 저녁은 이 정도만 하고 일단 회의를 끝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상사에게 보고할 자료를 한두 페이지 만들러 자리로 왔다. 다른 팀원들은 퇴근시키고 늦은 야근은 내 몫이다. '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일 아침 상사에게 어떻게 범행 시나리오를 설명할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표와 화학식, 그리고 숫자들을 정리해본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





엔지니어로 십여 년을 살다 보면 내가 물질세계가 아닌 인간 세계의 범인을 잡는 검사나 경찰이 되었어도 잘할 수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형사는 범인을 잡아 감옥에 넣지만 엔지니어는 대책을 마련하여 불량을 제거한다.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보다 인간 세계가 더 복잡하고 심리적인 것까지 고려해야 하지만 단순화시켜보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요즘은 빅데이터, 머신러닝 기법이 생겨 공정 중에 나오는 엄청난 데이터를 손쉽게 다루어 유의차가 있는 인자들을 찾아내는 방법도 불량 해결하는데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이때도 현장 엔지니어의 '직관', '관련 지식'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엔지니어가 사용하는 것은 회귀식이다. X축과 Y축을 두고, X가 어떻게 변화하면 Y 가 바뀌는가를 고민한다. 1차 식이 아니라 2차식으로 나오면 최적화 점이 어딘지 찾는다. 변수가 하나가 아니고 둘 이상이면 어떤 인자들끼리 교호효과 (두 인자들이 독립적일 때는 반응하지 않다가 조합이 이루어지면 반응이 극대화되는 효과)까지 있는지 찾아본다. 


이러한 분석법에 통계적 숫자 처리를 한다. 하나 두 개의 데이터가 아니라 평균과 산포, 이상점을 분리해 내고, BOX PLOT이나 시계열 그래프를 그려서 유의차가 나는 인자들을 찾는다. 유의차 검증도 해서 95% 신뢰 수준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한다.

물질세계에 사는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프로젝트마다, 불량이 발생될 때마다 반복하며 살아왔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


조직 생활이다 보니, 형사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보고' 절차가 필요하고 이때 여러 가지 시나리오와 범인을 잡을 대책을 마련하고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미궁에 빠지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형사들과 제조 현장의 엔지니어들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지 않을까 하며 왠지 모를 동질감에 웃음을 지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LCD 디스플레이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