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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Dec 27. 2020

조직 개편

Reorganization

연말이다.

임원인사가 있었다.

새로 임원이 되기 전에 나가야 하는 임원들의 명단이 사원들 메신저들을 통해 먼저 돌았다.

금요일 저녁에 메일이나 전화가 온다고 한다. 그날 아침까지 열정적으로 내년 제품 로드맵을 짜고 독촉했던 임원들이 저녁 전화 한 통으로 집에 가게 된다. 집기들에는 빨간색 스티커가 붙여지고 짐을 정리해서 집으로 보내진다. 요즘은 코로나로 회식도 못하니 그대로 동료, 후배들과 마지막이 된다. 

그리고 사장단 인사부터 상무 인사까지 발표가 되었다.

아는 지인은 아침에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상무가 되었다고... 그리고 10시쯤 사내 인트라넷에 명단이 뜬다.

천둥 번개가 한바탕 지나고 나면 다시 조용한 일상이 시작된다.

마치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게...

 



적게는 수년, 많게는 십여 년 조직에 있으면서 성과를 쌓은 사람이 그 조직에서 임원이 되면 대부분 다른 조직으로 옮겨가게 된다. 친하게 지낸 동료, 후배 또는 선배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도록 한다.

그 다음으로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임원의 계획에 따라 이리저리 자리를 옮긴다. 20여 년 동안 매년 이런 작업이 이루어지니 책상엔 별다른 소지품이 많지 않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간편하게 만든다.

미련 없이 떠나는 이들과 그들을 떠내 보내는 이들은 잠깐의 미소만 있을 뿐 너무나 익숙하게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한다. 20여 년 전에는 팀, 파트라는 소속감이 회사의 기본 토대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담당 업무가 그 사람의 포지션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업무가 잠시 비어 있는 시간대에 조직 개편을 맞이 하는 사람들은 큰 쓰나미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뿌리내리지 못한 잡초들처럼...



나에게도 메일이 한통 왔다.

같이 일하는 팀원 두 명과 같이 다른 파트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새로운 파트장이 보낸 메일..

뭐지? 하는 마음에 현재 소속 파트장한테 다음날 아침 면담을 요청해서 물어보았다.

그러나... 본인도 메일로 통보받았고 자세한 것은 그쪽 부서장한테 물어보란다.

여러 해 겪은 일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이런 문화... 

서류상 조직은 아직 바뀌지 않았지만 새로운 파트로 뭉친 사람들은 일단 몇 번의 만남을 가지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기존에 해 오던 일을 묵묵히 한다. 다만 새로운 파트장의 업무 파악을 위해 자주 불려 다니는 것 말고는 별 차이를 못 느낀다.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있다. 이곳에도 넣어보고 저곳에도 넣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돌아가게 할까 고심하는 이의 손짓에 톱니바퀴는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만약 성능이 다해 이가 빠지면 지체 없이 교체한다. 비슷한 톱니바퀴는 많으므로... 




그리고 생각한다. 이런 느낌이 새로운 것일까?

수백 년 전 이 땅의 많은 이들은 어떤 '조직'에 속해 있었고,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아 팀을 꾸리고 묵묵히 해 오던 무역상들이 실크로드를 건너며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 또한 한평생 무언가를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렸고 나이를 먹었으며, 때론 즐겁게 때론 슬프게 이 "땅"을 살지 않았을까? 승진하는 기쁨도 누려보았을 것이고, 경쟁에 밀려나 은퇴하여 남은 일생 조용히 고향에 내려가 삶을 마무리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도 전염병에 지인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공포에 떨기도 하고 서구에서 넘어온 새로운 문화에 충격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이 "땅"을 살아왔을 것이다. 


2020년 원더 키디가 하늘을 날지는 않았지만 드론 택시를 조만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기대감을 가졌고, 조만간 자율주행 자동차가 거리를 누빌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치료제'와 '백신' 기업의 주식을 사야 하나 고민하는 적극적인 인간들이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2021년을 곧 맞이할 기대를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선조들이 묵묵히 살아왔었고, 나도 살고 있으며, 내 자식들도 살아가게 될 '이 땅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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