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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아 Dec 30. 2021

같이 사니 사람 사는 것 같다

서울 1인 가구 10년차가 바라본 호스텔 살이의 요모조모

내가 느낀 집으로서의 호스텔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사람 사는 것 같다


서울에서 친한 회사 선배가 결혼 생활에 대한 만족을 표하며 이렇게 말을 했다. "혼자 사는 건 좀 뭐랄까, 비인간적인 것 같아. 누구랑 같이 사니까 훨씬 좋아."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결혼을 적극 추천했다. 단지 누구랑 같이 살기 위해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1인 가구의 나는, 그 말에는 어쩐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혼자 사는 건 편하다. 내가 선택한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내게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물건들을 배치하고, 나의 생활 스타일대로 산다. 어느 누구의 방해나 간섭도 받지 않을 수 있다. 말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있다. 그런데 혼자 사는 건 때로 너무 적막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대화도 없고, 내가 움직임을 내지 않으면 방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특히나 아파서 집에 혼자 있어야 할 때 어느 누구도 나를 돌봐주거나 내게 '괜찮니?'라고 물어봐 주지 않는다. 가벼운 날씨 이야기나 점심에 있을 미팅 이야기를 하며 아침을 시작할 수 없다. 내가 의욕을 갖고 활동하지 않으면 혼자 사는 집은 늘 가만히 있는다. 마치 기분을 풀기 너무 어려운 잔뜩 화난 상사처럼, 혼자 사는 집에서 활력을 만들어 내려면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해야한다.


그런데 호스텔 쉐어하우스는 조금 다르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곳곳에 활력이 넘친다. 로비에는 언제나 나시에 반바지를 입고 자기 키 만큼 큰 가방을 멘 여행객들의 에너지로 넘친다. 해야할 일과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들의 의욕과 열정이 있다. 친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풍기는 다정함이 있고, 애정이 있고, 금요일이나 토요일 같은 날 지하 바에서 놀다가 친해진 연인들이 나누는 설렘도 있다. 실제로 나는 로비에서 몇 십분만 앉아 있어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침부터 축 저지는 날에도 화장실을 오가거나 로비를 지나치는 와중에 누군가의 반가운 인사를 받고, 생기에 넘친 사람들을 보며, 신기하게 발걸음에 좀더 힘이 들어갔다. 여행객들이 베낭을 매고 나갈 때, 출근하는 사람들이 구두를 신고 출근할 때, 나도 그 틈에 끼어서 같이 호스텔을 나서면 그날 하루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하루 종일 어둑하거나 비가 오는 날에, 원룸이었다면 약간 쳐지고 기운이 없었을 텐데 호스텔 객실이나 로비 곳곳엔 흐린 날에도 생기가 있었다. 누군가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부엌과 주방에서는 늘 사람들이 요리를 하거나 먹고 있었고 그런 모든 삶의 소리와 냄새들이 '사람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2.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


4~7평 원룸에서 이동하는 거리라고는 싱크대에서 식탁, 침대에서 화장실 정도의 길이다. 몇 발자국 안에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다 닿는 공간에서 활동 반경은 좁아진다. 고시원은 대체로 방 안에서 눕거나 앉거나 서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세계 집값 1위인 홍콩의 '케이지 홈(닭장 아파트)'은 침대 한 칸이 방의 전부여서 눕는 자세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오래 원룸 생활을 하다가 넓은 호스텔에서 사니 좁은 열차에서 내려 탁 트인 동네에 막 도착한 것처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심지어 뛰어다닐 수가 있다! 팔을 쭉 펴고, 걷고, 뛰고, 눕고, 모든 자세를 다 취하며 이동할 수 있는 넓은 활동 반경에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주거문제가 심각한 세계 1위 집값의 홍콩, 'cage home'이라 하여 침대 하나가 방이자 집이다. |  사진출처: International Alliance of Habiats

3.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다.


혼자 살다 보면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따로 연락을 하지 않거나 연락이 오지 않아서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은 날이 있을 것이다. 호스텔에서 살다 보면 꼭 특별한 용건이 없더라도 오며 가며 누군가와 한 마디 말을 가볍게 할 수 있다. 하물며는 '여기 세탁기가 어디 있죠?'라고 누군가가 말을 건네기도 한다. 물론 언어 장벽이 있거나 낯을 많이 가릴 수도 있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면 대화를 할 수 있는 작은 '기회'가 곳곳에 있다. 날씨에 대한 얘기가 되었든, 오늘 할 일과, 호주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이 되었든 가벼운 주제의 '스몰 토크'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매 순간 있다. 가벼운 대화들은 윤활유처럼 상대방과 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완화해주고, 대화를 하며 자연스레 웃다 보면 나 스스로 타지 생활을 하느라 갖고 있는 긴장감도 조금은 풀어진다. 또 혹시 길을 가다가 갈매기 똥을 밟았거나 엉뚱한 광경을 봤다거나 한 일이 있을 때 누군가가 얘기를 들어주면 감정이 풀리기도 한다. 사소한 일상적인 소통 속에서 비록 혼자 여행/체류 중이더라도 고립감을 넘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호스텔이라는 공간 안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작은 대화들이 일으키는 이러한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은, 일자리를 구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활동 들을 감당할 수 있는 약간의 용기와 힘도 준다.  


4. 누군가가 청소를 해준다


서울 내 방을 청소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매일 매일 새로운 먼지가 쌓이고, 새로운 못 보던 작은 쓰레기들이 바닥에서 굴러 다니며, 곰팡이가 호시탐탐 화장실을 노린다. 월화수목금 출퇴근으로 바쁜 와중에 꼭 주말이나 하루 시간을 내서 청소를 해야 하고, 틈틈이 대청소도 해야 한다. 분리수거도 해야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야 하며, 쓰레기 봉투가 다 떨어지지 않도록 미리 미리 사놓아야 한다. 이불도 빨아야 하고 청소기, 물걸레 등 각종 도구로 허구한 날 방을 치워야 한다. 방 청소는 끝이 없다. 그런데 호스텔에서는 무려 청소를 내가 안 해도 된다. 또 이불이나 침구도 교체해준다. 화장실 청소도 안 해도 되며 쓰레기통도 누군가가 비워준다.  


5. 건조기가 있다.


원룸 중에 채광이 좋고 환기가 잘 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건물이 다른 건물과 바싹 붙어 있어 창문이 막혀 있거나, 해가 들어오지 않는 곳은 습도를 관리하는 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일주일 빨래를 방에 널어 놓았다간 곰팡이가 필 우려가 있다. 반지하는 특히 더 습도에 취약해서 젖은 옷이 한 두개라도 있으면 곧장 방 전체가 눅눅해진다. 어쨌든 빨래는 해야 하므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인근 빨래방에 가거나, 집 안에 제습기나 건조기를 들여 놓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건조기가 보통 세탁기 크기 정도 되다 보니 4~6평 원룸에 놓기에 공간이 부족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빨래방은 빨래 한 번에 5~6천원, 건조기 한 번에 3~4천원 정도 되는데 한달에 최소 2~3번 빨래를 한다고 해도 금액이 부담될 수가 있다. 또 매번 빨랫감을 들고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말이다. 호스텔에서도 돈을 내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쓸 수 있었는데 건조기가 굉장히 편리하고 좋은 물건이라는 걸 알았다. 옷에서 좋은 냄새가 나고, 옷이 뽀송뽀송해졌다. 건조기에서 꺼낸 다음 바로 개서 옷을 정리할 수 있기에 원룸에서처럼 하루 이틀 혹은 그 이상 빨랫대에 걸어놓은 다음 다시 옷들을 개야 하는 귀찮음을 두 번 하지 않아도 되었다. 


6. 수압이 엄청 나쁠 수는 없다


살 집을 고를 때 수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두피가 시원해질 정도로 물이 세게 나오는 샤워기로 씻어야 개운하다고 했다. 사우나나 온천 같은 곳에서 마사지 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의 물줄기를 대부분의 원룸에서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세대수가 많은 오피스텔의 경우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또는 건물 지상에 음식점 등이 있다면 수압이 매우 낮아진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쓰는 피크 시간대엔 말이다. 이에 대해 관리인 등에게 얘기를 해도 쉽게 고쳐지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3년의 유랑 생활 동안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번도 수압이 나빴던 적이 없었다. 내가 운이 좋았던걸까? 아니면 혼자 살 때와는 다르게 수압이 나쁘다고 다 같이 아우성을 칠 여행객/투숙객들이 아주 많아서일까? 무튼 서울에서 수압이 낮은 집들을 마주쳤던 것에 비해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의 수압은 매우 준수했다.


7. 놀 거리가 많다


혼자 사는 작은 원룸에서 노는 방법엔 뭐가 있을까.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영상을 보거나, SNS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 방법이 있다. 또 혼술을 할 수도 있다.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대체로 놀려면 누군가와 약속을 잡거나,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거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원룸 안에서 놀 게 별로 없다.


호스텔에선 놀 거리가 많다. 일단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 세계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매 순간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고, 가방에서 신기한 물건을 꺼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눈만 뜨고 있어도 잠시도 지루하거나 심심할 틈이 없다. 놀 수 있는 공간도 많다. 내가 묶었던 시드니의 호스텔 지하에 아주 커다란 바(Bar)가 있었다. 얼마나 넓냐면 사람 100명이 넘게 들어가서 춤을 춰도 될 만한 곳이었다. 중간에 바텐더들이 술을 파는 곳이 있고, 삼삼오오 앉을 수 있는 테이블들이 벽면을 둘러 싸고 있다. 5시 같은 오후 시간대엔 여행, 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작은 이벤트들이 열렸다. 해가 지면 쿵쿵거리는 음악과 번쩍 번쩍 조명이 나오는 클럽으로 변신했다. 그곳의 이름은 사이드 바(Side Bar)였는데 알고 보니 동네에서 꽤 유명해서 호주 현지인들도 자주 놀러왔다.

 

바는 주7일 오후 5시에 오픈해서 밤새 열었다. 저녁마다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렸는데 어떤 날엔 영화 이름 등을 맞추는 퀴즈 게임을, 어떤 날엔 '사일런트 디스코'(헤드셋을 끼고 춤을 추는 것), 어떤 날엔 탁구를, 어떤 날엔 야광 페이스 페인팅 행사를 여는 식이었다. 술을 주문하든 주문하지 않든 자기 자유였고 호스텔에 묶는 자는 누구든 그 공간을 누릴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든 혼자든 그 공간에서는 어느 누구도 어색하지 않았다. 왜냐면 다들 이곳이 낯설었고, 대체로 혼자서 온 여행객이나 같은 객실에서 온 무리들이었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밤 같은 때에 특별히 약속을 잡지 않아도, 하루를 마감한 늦은 저녁 가볍게 맥주를 마시거나 혹은 그저 재밌게 놀고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을 수 있는 건 적막한 원룸에서 느끼지 못했던 굉장히 유쾌한 일이었다. 


8. 주말에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삶에선 기본적으로 1인 단위로 움직인다. 누군가와 일정을 공유하거나, 매일 매일의 대화 없이 스스로 그날의 스케줄을 정한다. 주말에 평일의 일상과는 다른 어떤 일을 하려면 역시나 날을 잡고 약속을 잡거나 해야 한다. 그런데 호스텔에 있다보면 주말에 누군가와 밥 한끼를 먹거나, 혹은 같이 장을 보러 가거나, 혹은 근처 산을 오르거나 하는 행위들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일정 속에 들어오게 된다. 너무 하루를 밖에서 다 쓰지는 않아도 될 만큼, 하지만 주말을 혼자 보내지는 않아도 될 만큼의 가볍고 편한 시간들을 쉽게 만들 수 있다. 로비에서, 바에서, 객실에서 오며가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캐쥬얼하게 약속을 잡게 될 기회들이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로 살면서 주말을 다채로운 활동으로 채우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들 (어떤 것을 배우거나, 동호회 등의 활동에 가입하거나, 취미 어플 등을 이용하거나 등)에 비교했을 때, 여러 활동들에 좀더 쉽고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기분 전환이나 삶의 활력 보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호스텔의 장점을 쓰다보니 서울 원룸 살이에서 어떤 것들이 더 채워질 수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다음 편에서는 집으로서 호스텔을 고려할 때 여러 단점들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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