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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Dec 20. 2020

회사에서 만난 어른다운 '어른'

나이를 먹는 것이 꼭 어른이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먹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약 10여 년의 회사생활을 돌이켜봐도, 과연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어른다운 어른이 있었나 떠올려보면, 그 얼굴들은 정말 손에 꼽는다. 언제나 배울 수 있는 어른이 고팠지만, 그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다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1. 배움의 자세를 지닌 사람

그들은 정답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유연하게 참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은 항상 조금 더 나은 결말로 흘러갔다. 일방적인 교육보단 나와 당신이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경험치를 공유한다는 면에서
감명 깊은 순간들을 많았다.


2. 책임감을 지닌 사람

'책임은 팀장님이 지는 거 아냐?' 식의 떠넘김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니어도, 시니어도, 리더도 각자의 자리에서 수행해야 하는 책임들이 제각기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은
꼭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었다.


'어른'은 조직 내에서 본인의 위치와 역할을 명확히 인지하고, 기꺼이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밟지 말아야 할 선을 발견하고, 그 선을 함께 지켜나가기 위해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3. 여유가 있는 사람

'어른'은 조바심으로 일을 그르치거나,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 여유의 원천은 각기 다른 것으로 보였다. 사람에 따라 그것은 경험에서, 인덕에서, 내려놓음에서, 양보에서 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오직 '금적전 부'만으로는 '어른'이 될 수 없어 보였다.


 대체로 '어른'은 삶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그것이 올바른 성장과 목표를 위한다 할지라도, 오래 함께 하기엔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어른'은 본인의 여유로 주변까지 에너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었다.


4. 들을 줄 아는 사람

배움의 자세, 여유 등을 갖추었기에 나오는 태도일 수 있겠다. '어른'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없었을까. 그들은 대체로 많이 듣고, 적게 얘기했다.


상황과 사람에게서 많은 정보를 흡수하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신중하게 정제된 것들이었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을 덜 상처 주고, 덜 힘들게 하는 가장 큰 미덕이기도 했다.


5. 공감과 감성을 지닌 사람

기계적으로 일에만 몰입하는 사람들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지, '어른'은 아니었다. '어른'은 주변의 어려움과 마음에 공감해주었다. 일로 만난 사이이지만, 넌 혼자가 아닐 수 있다는 연대의식을 심어주는 사람이었다. 이는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어른'을 의지하고 기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그들은 감정보다는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누구나 감정을 가지고 있고, 때때로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어른'은 그들만이 지닌 감성이 있었고, 그것은 그들을 대체 불가한 고유의 존재로 자리할 수 있게 해 줬다.


상생하고 연대하지만,
본인만의 단단한 무언가 역시 잘 지켜내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 '감성'이었다.


6. 사과와 실패를 하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에도 '어른'스러움은 필요했다. '어른'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었다. 본인도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고, 실수를 했을 때에는 명확하게 사과를 할 시점과 그 방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어른'은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은 실패마저도 배움의 기회로 활용하려 애썼다.


그리고 결국 그 실패를
실패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들어내 버리는 사람들.


누군들 사과하는 것이, 실패하는 것이 쉬울까. 사과하고 싶지 않아서,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애쓰는 사람들은 되려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어른'은 그것마저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10년이라는 직장생활을 하고 난 나에게 '어른'스러웠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주저스럽다.


어쩌면 '어른'은 완성된 무언가는 아닐 수도 있겠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탁 하고 놓쳐버리는 줄처럼, 내가 계속 붙잡고 애써야 하는 태도와 관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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