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은 전혀 아니었다. 부모님 덕분에 작지 않은 키와 짧지 않은 팔다리를 가졌음에도 운동에 재미를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학창 시절 했던 유일한 운동은 수영이었다. 경쟁심도 딱히 없는 성격이라 누굴 이기거나, 따라잡겠다는 욕심 같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땀이 나지 않고 시원해서 재밌었다. 중학교 시절 했던 수영이라는 운동 덕분에 어깨가 완전히 벌어지고 넓어졌다.
그런 내가 정확히는 퇴사를 하기 1년 전 즈음부터 운동에 차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술과 외부 모임을 줄이기 시작하는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어느 순간부터 남의 말에, 평가에 귀 기울이는 회사생활이 너무나도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생각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마음 한편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언제나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우선순위에 밀리고 밀렸다. 만나야 하는 사람, 참석해야 하는 회식, 관리해야 하는 인맥, 신경 써야 하는 자리, 챙겨야 하는 일 등등에 밀리고 밀려 나는 나를 다독일 시간을 줄이고 아꼈다.
운동을 하게 된 시점은,
정확히 '나'와 '내가 아닌 것' 중에서
우선순위를 완전히 뜯어고치겠다고
마음먹은 뒤부터였다.
꾸준한 운동은 언제나 매년 나의 To do list에 있었지만 습관화되지 못하고 실패 목록으로 들어가기 일수였다. 우선순위를 조정한 이후부턴 조금씩 운동이 내 삶에 들어왔다. 나는 '운동'을 선택했다기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선택하며 운동을 만났다.
약 20년 동안 같은 몸무게를 유지했다. 복 받은 체형인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마시고 싶은 대로 마셔도 더 찌지도 빠지지도 않았다. 그런 몸무게가 회사생활 9년 차 즈음 갑자기 10kg이, 나도 모르는 사이 불어났다. 거울 속 내가 한심해 보였다. 회사에서 성장하는 만큼, 나는 망가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 최초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온갖 운동법, 다이어트법 등에 대한 정보를 섭렵하자 다양한 방법들 속에서 몇 가지 패턴과 법칙들이 보였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5kg, 3주 만에 10kg을 감량했다. 확실한 식단관리가 중요했고, 운동의 일상화가 포인트였다.
한번 운동의 효과를 보고 나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제는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05화 회사 다니면서 3주에 10kg 빼기 (brunch.co.kr)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을 지속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공복 유산소뿐 아니라 근력 운동, 등산, 클라이밍, 다이빙 등 평소 가졌던 관심과 흥미를 바탕으로 운동을 접목시켰다. 어떤 운동은 혼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떤 운동은 사회생활의 연장선으로, 어떤 운동은 친목 활동으로. 운동이라는 하나의 매개체와 수단을 통해 다양한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의
운동 패턴, 종류를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만 꾸준히 오래 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근력 운동에 재미를 붙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가 없었다. 인상을 박박 쓰며 무언가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행위에서 어떤 쾌감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운동을 일상 속에 꾸준히 채워 넣은 지 약 1년 즈음되었을 때, 몸짱까지는 아니어도 탄탄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처음엔 기초 체력 자체가 없었다 보니 근력 운동을 하는 것에 큰 부담과 무리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운동을 일상에 접목시키면서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난이도를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다이어트를 처음 시작할 때도 딱 1주만 확실히 해보자. 딱 1주 확실히 해서 효과가 안 보이면 그만두자 생각하고 시작했고, 1주일 만에 5kg이 빠지자 스스로 재미를 느꼈다. 근력 운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 1주일만 해보자. 1주일 후에도 재미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다시 한번 온갖 근력 운동법과 원리에 대한 콘텐츠들을 섭렵하고, 내 생활 패턴에 적용할 수 있는 운동법으로 30분을 구성했다. 헬스장에 가는 것 마저도 귀찮아서 집에 있는 철봉, 푸시업 바, 밴드, 덤벨 등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운동들로 구성했다.
정확히 1주일 후,
나는 이번에도 재미와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운동을 하면, 어떤 근육이 눈에 띄게 커져간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하고 직관적인 원리인데, 그걸 몸소 체험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노력한 만큼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니, 점점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딱 1주일만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1달, 2달을 이어져갔다.
음식과 생활 패턴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해야 하는 적절한 시간, 매일 운동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체력의 성장, 근육을 키우기 위한 적절한 식단과 휴식법. 결국 근력 운동은 단순히 푸시업을 몇 개 했느냐를 넘어서서,
얼마나 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시간 관리, 식단 관리, 체력 관리)을
구축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로 이어졌다.
얼마나 좋은 변화인가.
운동이 재밌기도 했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 힘든 걸 이 악물고 했는데, 떡볶이나 치킨 등으로 날려버린 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자연스럽게 아무거나 먹지 않게 되었다. 최대한 단, 짠, 맵 메뉴는 식탁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가급적 양념이나 조미료 등을 넣지 않고 요리하는 레시피를 찾아 응용했다. 그냥 찌거나, 익히는 등 가미 없이 먹는 음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단 게 당기면 생과일을, 우적우적 씹고 싶으면 생야채를 먹는 식이었다.
물론 나는 프로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못 참겠을 땐 엽떡과 교촌을 즐겼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런 음식을 먹은 다음날엔 반드시 공복 유산소 운동을 빡세게 돌렸다.
대회를 나가려고 시작한 운동도 아니었기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만큼만 하자는 다짐을 지켰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체력과 근력이 성장하면서 운동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양과 시간으로는 더 이상 근육이 자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운동은 데일리 습관으로 내 삶에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고, 점진적으로 운동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한 개라도 철봉을 더 하거나, 한 개 더 하기가 어려우면 같은 개수를 하더라도 그 시간을 단축했다.
일상성, 점진성은 근력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속성임을 깨닫게 되었다.
원래도 체격이 좋은 편이라 운동하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지만, 운동으로 관리한 몸은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보지 못한 가슴, 어깨, 팔, 배, 다리 근육들이 하나씩 장착되기 시작했다. 큰 덩어리 근육을 만들고, 그 주변의 작은 근육들을 함께 키워나갔다. 전체적인 모양을 잡은 뒤 세밀한 묘사를 시작하는 그림 그리기와도 비슷한 방법이었다. 운동을 하는 만큼 정직하게 근육이 발달하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확인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사회에서 해왔던 노력은
종종 이 명제가 틀렸음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운동은 달랐다.
제일 좋은 건, 이전엔 느끼지 못한 재미와 쾌감을 운동 덕분에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평생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드는 생각은 지금까지 내가 싫다고 생각했던, 혹은 경험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 중에서도 내가 즐기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새롭고 다양한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잘하고 좋아한다고 믿는 것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나는 더 큰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이런 것이 운동을 통해 얻게 되는
긍정적인 사고와 활력이라면,
운동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평생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갑자기 한달만에 복근이 생겼다고 얘기한다면 드라마틱한 계기나 방법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성장의 흐름을 쭉 돌이켜 보면 반드시 작은 시작이 있다. 한 번 해볼까 라는 생각에서, 힘들지만 낑낑해보는 처음으로 이어지고, 지루한 꾸준함 속에서 적응이 되어가고, 성장을 원하게 되는 시점을 맞이하고, 성장의 원리와 이유를 이해하면서 그 작은 성장을 계속 반복하기까지. 이 패턴은 운동 뿐 아니라, 내가 시도해왔던 많은 것들에서도 그대로 적용했던 흐름이었다.
수많은 자기 계발 콘텐츠들이 늘어 놓는 '당신도 할 수 있다!'라는 사기꾼 같은 소리를 나 역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평생 운동을 싫어하던 나 같은 사람도 복근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도 '누구든 할 수 있다.' 는 소리다. 그것이 비단 운동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걸, 나는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