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거나, 다음 경로를 확정하기까지는 언제나 빈 시간들이 생긴다. 사회 초년생 때는 무작정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 여행 등으로 시간을 활용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생긴 다음부터는 이 시간의 여유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고 싶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요식업에 종사하는 몇몇 친구들과 우리끼리 재밌어서 하는 (하지만 장사도 잘되는) 식당 하나를 운영해보면 너무 좋겠다며 꿈같은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었다.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또 회사생활을 오래 할수록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내입으로 들어가는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만 갔다.
1. 단순 알바를 하며 용돈벌이나 시간을 때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장관리/키친/캐셔 등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함께 경험하며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2. 이에, 체인점이나 대규모 식당이 아닌
1인 오너 세프 형태로 운영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탐색했다.
3. 이런 곳일수록 여러 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 서브가 필요하기 때문에 숙련된 경험자를 원하지만,
동시에 매우 빡세기 때문에 오래 진득하게 일해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니즈가 강렬하다.
4. 식재료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지식과 관심이 없어도 요식업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갖춘다면 굉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굉장히 많다.)
또한 그것은 '요리', '음식'에 대한 꾸준하고 근본적인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5. 엄청난 수준의 체력이 필요하다.
내 무릎은 이제 없어졌다. 고 생각해야 할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
6. 엄청난 수준의 노동강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진득하게 서포트를 해줄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극심한 인력관리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7.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본인만의 재미를 찾지 않으면, (그것이 요리든, 식당 운영이든, 고객 응대든)
먹고살게 없고 막막해서 일단 시작한 요식업은 나에게 오히려 지옥 같은 공간이 될 수 있다.
8. 하지만 역시 1인 세프 경영도,
다른 업계의 소규모 기업/조직들과 마찬가지로 리더 스스로 객관적인 문제점 분석과 수정이 매우 어렵다.
(모든 세프는 또라이인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거나, 어린 후배들만을 욕하며 꼰대 짓을 하는 리더들.)
9. 요리는 달인 일지 몰라도,
경영과 관리 면에서 미흡하면 식당 운영에 큰 리스크나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10. 결국 레스토랑 역시 하나의 조직, 기업과 마찬가지다.
명확한 타깃, 트렌드와 경쟁자 파악, 강력한 레시피, 고객 접점에서의 섬세한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을
체계적으로 갖추지 않으면 허둥지둥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수밖에 없다.
11. 입지, 상권에 대한 분석과 좋은 건물주를 만나는 운(?)은
레스토랑의 지속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12. 상권에 따라 그에 걸맞은 컨셉의 요식업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면밀한 파악이 필요하다.
(배달업인지, 찾아오게 만들 것인지, 자주 싸게 먹을 곳인지, 가끔 오지만 정통인지 등)
13. 상권에는 오너들끼리의 조합, 그룹이 존재한다.
그 묘한 텃세와 알력 싸움에서 적응한다면 크거나 사사로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14. 메뉴는 이 식당을 어떤 시간에, 어떤 타깃을 공략해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
마진은 '음료/주류'에서 매우 높기 때문에,
음료 및 주류 메뉴에 대한 구성을 다양하게 해두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15. 트렌디한 레시피는,
결국 또 다른 트렌드에 밀릴 수밖에 없다.
16. 1인 세프 레스토랑도 결국 1인 창업가, 프리랜서 등과 비슷한 고민들을 할 수밖에 없다.
나를 대신할 좋은 인력을 찾지 않으면, 키친에서 나올 수 없고 이는 사업 확장과 세심한 관리운영에 한계를 준다.
17. 단골을 만들어 레스토랑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을 얻을 창구를 만들면,
이는 레스토랑 사업 영역의 확장이나 문제 수정에 아주 중요한 판단 근거들이 될 수 있다.
나는 경험 신봉자이다.
관심을 가지게 되는 영역이 생기면, 일단 부딪혀 경험하고
그 경험 안에서 내 안에서 생기는 관심, 의욕, 호기심, 능력 등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다양하게 섞여,
그다음 내가 무언가를 새롭게 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 능력치, 네트워크 등이 된다.
경험과 그 안에서 몸소 부딪혀 배워내는 것들의 힘을 믿으며
경험의 기록들을 브런치에 함께 담아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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