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의 인력 회전율이 빠른 데다, 소규모 회사들이 다양하게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는 탓에 나는 생각보다 빨리 회사에서 팀장 직책을 달게 되었다. 사내 최연소 팀장으로, 다른 팀의 팀장님들과 많게는 7~8살까지도 나이차가 났다. 완전히 새로운 세대에서 발탁된 팀장이었기에 사내 잡음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팀장 직책을 맡아 8명의 팀원을 리드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많은 팀장님들을 경험했고, 함께 일하며 각기 다른 점들을 배워나갔다. 하지만, 내가 팀장이 된다는 것은 아예 차원이 다른 성장을 요구했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으나, 몸소 체험하며 깨달은 것들이 더 많았다.
회사에서 감정을 채우거나 소비하려고 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여기서의 외로움은 회사 내에서의 포지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팀장은 의사결정자 중 한 사람, 사내 주요한 아젠다가 띄워지면 때때로 임원 / 동료 팀장 / 팀 내 등에서 의견 대립의 중심에 서게 되는 직책이다. 갈등을 싫어하는 나는 종종 이런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괴로웠다. 적당히 타협하고 관계를 위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성격인지 나는 결국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성향의 팀장이었다. 그럴수록 때때로 더 외로운 입지에 서게 되기도 했다.
정의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팀원일 때는 때때로 다수의 의견 속에 숨어버릴 때도 있었다. 굳이 갈등의 최전선에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장이 되고 나선 왠지 더 이상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결정자는 올바른 생각과 가치를 지켜나가야 하는 정예 부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책임감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든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팀장이 되고 나서 많은 축하 연락을 받았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승진이라는 '명'과 함께 따라오는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라는 '암'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승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회사원 월급이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고 빠른 나이의 승진은 당장 빛나 보일지 몰라도, 빠르게 소비될 가능성도 함께 내포했다. 내게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은, 'Role change'. 역할의 변화였다. 내가 팀원일 때 바라본 대다수의 팀장들은, 팀장이라는 직책과 타이틀에 취해 본인들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도태되어가는 경우의 수가 참 많았다. 팀장이 된 다는 것은 회사의 '얼굴 중 하나'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을 의미했다.
팀원들을 거느리고 노하우를 설파하며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안으로는 살림이 잘 돌아가게 만드는 동시에, 방향키를 움켜쥔 선장이었다. 동시에, 사내는 물론 사외로 주변을 샅샅이 살펴야 했다. 정보 습득, 동향 파악, 산업과 경쟁자들의 움직임, 새로운 비즈니스의 가능성 포착, 새로운 파트너 물색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이 많았다.
팀의 성과와 매니징을 책임지는 팀장은 그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허브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이러하니, 팀장 이상의 직책을 맡은 자들이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의 스킬을 보유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겠는가. 좋은 일로만 팀장을 찾는 것은 아니다. 팀에 문제가 생길 때에도, 에이전시의 불평을 들어야 할 때도, 회사에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할 때도. 모든 것은 팀장이 소통의 중심이 되어 해결할 일들이었다.
관리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양 자체가 늘 뿐 아니라, 난이도 역시 증가한다. 팀원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 위에서 해결이 껄끄러운 과제들 등 팀장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대부분 1-2번의 난관에 봉착한 이후 찾아오는 것들이다.
더욱 세련되고, 고급진 스킬을 갖추기 위해 치열해져야 했다.
90년대생이 밀려온다며 꼰대 세대에 합류해 세대갈등을 설파하려는 것이 아니다. 팀장 업무의 9할은 조직관리라고 해야 할 정도로 팀원들의 개별 성과, 비전, 고민, 감정 등에 대해서 면밀히 고민해야 했다. 그러려면 시시때때로 팀원들을 관찰하고 각 팀원이 원하는 업무 성과는 무엇인지, 그것을 함께 달성하기 위해 나는 어떤 미션을 부여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너랑 나랑 우리 한 번 잘해보자'식의 친목다짐으로 팀원과의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았다. 명확한 비전과 역량 발전을 위해 내가 팀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팀장이 되고 제일 먼저 한 것은 팀원들 앞에서 'PT'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팀의 목표, 로드맵, 비전. 그리고, 내가 각 팀원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개인 역량 개발, 공동의 목표 등에 대해서 브리핑을 했다. 어떤 방향으로 이 팀을 리드하려고 하는 것인지 함께 아는 것이 필요했다.
팀장이 봐야 하는 눈치는
팀원들의 비전, 목표, 고민까지 세세히 파악해야 하는 일이었다
'넌 이제 팀장이잖아. 그러니까 다 견뎌야지.'식의 시선이 때때로 부담스러웠다. 팀장도 결국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선택에 직책에 걸맞은 권한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는 직원일 뿐이었다.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에 취해 그간의 스트레스와 성과에 대한 보상만을 원했다면, 나 역시 도태될 뿐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었음을 인식하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내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팀장도 역시 사원과 별 다를 바 없는 회사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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